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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의 삶과 신학 관련 도서 세트(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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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 니이호리 구니지,박찬규,김교신,서정민, 그 외 1명/김정옥,KIATS  |  출판사 : 갓피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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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이 책은 일본 도쿄 YMCA 원장인 니이호리 구니지(新堀邦司)가 일제하의 한국인 김교신의 신앙과 저항의 일생을 전기의 형식으로 쓴 것으로 일본의 신교출판사(新敎出版社)에서 지난 2004년 발간되었다. 당초 니이호리 구니지는 일본의 신앙잡지 <미루토스>에 우치무라 간조가 한국에 영향을 준 인물을 연구하며 김교신의 생애를 추적하다가, 점차 김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흥미를 가지게 되어 예정과는 달리 20여 회에 걸쳐 장기간 연재하게 되었다. 그사이 한국에 다녀와 김교신의 생가터와 양정고보가 있던 곳을 방문하는 등 김교신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의 존재를 한국에서 알게 된 김교신 선생의 넷째 딸인 김정옥은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몸소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이 책을 번역했다. 한국 기독교의 선각자 김교신 선생의 생애가 일본인에 의해 추적되고, 또 그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 출판사 리뷰
이신순, 안중근과 같이 압제 당사자였던 일본인에 의해 존경받는 한국인 김교신

도쿄 YMCA 원장인 니이호리 구니지에 의해 조명된 한국의 기독교인 김교신의 생애를 전기 형식으로 엮었다. 일본 근대사의 거목 우치무라 간조와의 관계를 통해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인 김교신이 어떻게 참된 기독교인으로써 한 시대를 살다 갔는지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을 압제하였던 나라의 후손인 일본인에 의해 조명되고, 또한 그 정신적인 면이 높게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인 니이호리 구니지는 2001년 한국을 방문하여 김교신 선생의 장녀인 김진술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였다. 또한 1930년대 당시 정릉리에 있었던 김교신 선생의 집터와 양정고보의 교사가 있었던 만리동을 직접 방문하는 등 김교신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이 글을 집필하였다.

야나이하라 다다오, 구로사키 고기치 등 일본 자료 인용으로 김교신에 대한 입체적 접근

이 책은 국내에서 발행된 김교신에 관한 자료들에서는 볼 수 없는, 당시 일본의 정황과 일본에서 발간된 자료를 잘 인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1940년 당시 김교신이 기획한 구로사키와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조선에서의 강연이 진행된 전후 사정을 보다 상세히 살피고 있다. 이들의 신앙잡지인 <영원한 생명>, <가신>에는 이들 각자의 일기가 실려 있어 일본 자료가 인용되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조선 강연에서의 사진 같이, 국내에서 입수할 수 없었던 사진도 실려 있다.
그리고 경성 YMCA와 황성 YMCA와의 관계와 같은, 당시 조선 총독부의 기독교 관련 정책으로 인한 이들 기관의 미묘한 관계와 같은 부분도 세밀하게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김교신이 남긴 공개 일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장 한국적인 기독교인으로 남은 김교신

김교신이 어떻게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아주 자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그 결론으로 한국의 기독자로써의 김교신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혹자가 말하는 김교신의 ‘일본적 기독교’ 색채에 대해 부정하며 저자는 “교신은 우치무라에게서 애국을 배웠지만 그 중심은 조선 사람에게 적합한 것으로 바꾸어 살았다. 거기 조선 무교회주의의 뼈대가 있다. 교신은 틀림없는 조선 무교회주의자였다”라고 평가한다. 김교신이 단지 일본의 어떤 인물과 연관이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김교신 자체로 충분히 조망될 가치가 있는 숭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된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일제하 성서조선을 발행하는 잡지의 주필로서, 또 양정중학교에서 박물을 가르친 이땅을 사랑한 교사로서, 민족주의와 기독교정신을 고취시켰던 김교신 선생의 일기를 엮고 생애를 해설하였다. 류달영, 손기정, 윤석중 등 위인들의 스승으로 후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또 함석헌 선생의 둘도 없는 친구로 그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모티브가 되었던 김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는 만 10년간 『성서조선』에 「성조통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그의 일기 중 약 4분의 1을 선별하였으며, 엮은이가 각 장마다 시기별 김교신의 주요 행적을 해설하였다. 책에는 김교신 전집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비공개 일기도 일부 수록하였으며, 그간 미공개되었던 사진도 20여장 실려  어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특히, 기존 전집에 실린 김교신의 일기는 1930년대의 고어를 그대로 옮겨 일반이 쉽게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고어와 어려운 한자어를 풀어 적어, 김교신의 생애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김교신은 누구인가
알 만한 이는 모두 아는, 그러나 많은 이들과 기독교인들에게조차 베일에 가려진 인물 김교신. 그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로 그 문하에서 7년을 사사받으며, 서구의 조직화되고 인간화된 기독교를 비판하며 성서대로의 개혁을 주창한 우치무라 간조의 개혁정신에 영향을 받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교신은 교사로 재직하며 일생동안 『성서조선』을 발행하며 한국 기독교사의 독특한 한 획을 긋는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또 극렬할 정도로 치열하게 일제하를 살았던 김교신은 주변인들에게 무수한 정신적 영향을 끼쳤고, 또 그 문하에서 배운 수많은 제자들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허위와 불의에 극히 단호했던 김교신은 항상 사직서를 품고 교직에 임한 교사였으며, 『성서조선』을 통하여 교권의 부패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1942년 일제는 ‘성서조선사건’을 일으켜 잡지의 독자들과 동인들을 모두 검거하였고, 이에 김교신을 비롯한 13인은 1년여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출옥 후 김교신은 흥남일본질소비료회사에서 5천여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4월 25일 서거한다. 김교신은 지난 2010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교류하였던 인물로는 『성서조선』의 동인이었던 함석헌, 송두용을 비롯하여 다석 류영모, 남강 이승훈, 춘원 이광수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가 교류하며 영향을 미친 기독교계 인물로는 시무언 이용도, 우원 이호빈, 성산 장기려, 손양원 목사, 밝막 이찬갑 등이 있으며, 사후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다.

주목할 점
그간 김교신에 대한 주목은 주로 그의 무교회주의, 즉 기독교에 대한 개혁적인 조망에 집중되었다. 그러한 사상적인 면도 중요하겠으나, 김교신은 또한 한국 개신교사의 기독교인으로서 유례없이 독실하고 충실한 청교도적 생애를 보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한 조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교신의 일기에는 그의 일상, 가정사와 학교에서의 일들을 비롯하여 일제하에서 출판물을 발행하며 겪는 일, 사회적 정황 등 모든 일들에 그의 깊은 신앙적 태도가 묻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인적인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어떻게 시대를 해석하며 또 태도를 취하고 살았는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요즘처럼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경멸당하는 시대에 김교신은 기독교의 참 모습과 그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듯 보여준다.

김교신에 대한 평가와 회고
오늘에 와서 그를 생각함이 더 간절하다. 그날에는 단순히 기쁜 생각에 그랬지만 오늘에 그를 그리는 생각은 그 의미가 다르다. 오늘에는 사람이 그리워서다. 이 나라를 위해서 산 사람이 그리워서다. 기쁨의 날이 지난 이후 2년에 이 소위 해방이 됐다는 나라의 미치는 꼴을 보고, 썩는 꼴을 보고, 생명의 말씀을 가진 참 찬 인물이 그리워서다. 그로 하여금 오늘날 이 나라에 있게 하라. 있어서 말씀하게 하라.
- 함석헌 (전 『성서조선』동인, 전 『씨알의 소리』주필)

이 때 김교신이란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선교사 주도의 경건한 피안적 신앙의 보수주의적 본거지인 황평, 영남의 교권자들을 공격하면서 소위 반구미적 기독교의 조선화에 힘썼고 아울러 철저한 애국적 신앙으로 시종 반일의 반골로 남아, 알알이 민족 기독교의 찬란한 이미지를 굳히고 그 수확을 보면서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다들 전향하던 날에도, 영구한 민족의 운명과 거기 주어진 하나님의 섭리 그 소재에 불멸의 희망을 빛나도록 밝히고 떠난 김교신은 민족 교회사의 정상에 서 마땅한 신실한 성도이다.
-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장)

어쩌면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인생의 지도자가 될 사명을 띠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니 선생님이 계시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무엇이 저절로 배워지는 것 같은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김교신의 제자)

1945년 8.15의 날에, 미칠 듯이 기뻤던 그날에 누구보다도 우리들은 선생님을 생각하고 울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든 분들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시기 한 달 전까지 나는 함흥에서 선생님을 한 방에서 모시고 지냈었다. 그 무렵에 나는 잠시 개성에 갔다가 거기서 갑자기 병이 나서 복부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선생님 별세의 전보를 받게 되었다. 참으로 세상이 깜깜하였다.
- 류달영 (전 서울대 교수, 김교신의 제자)

김교신 씨는 참 조선인이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 민족을 사랑하고, 조선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애는 고루한 배타적인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온유, 근면 등 조선인으로서의 생래의 도덕이 그에게는 믿음에 의해 한층 순화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애국을 삼았다. 조선인의 영혼을 새롭게 살리고 이를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백성되게 하기 위하여 그는 그 귀한 일생을 바친 것이었다.
- 야나이하라 다다오 (전 동경대 총장)

김교신은 초 비상적인 생활을 했다. 아니 그야말로 그가 그렇게 눈부실 정도의 비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언가 그에게 비결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 김교신은 남이 모르는, 또 소위 동인이라는 다른 5인이 가지지 못한 지혜와 비상한 용기와 우수한 능력을 갖고 생활한 데는 분명히 어떤 놀라운 힘이 그에게 작용한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 송두용 (전 『성서조선』동인)

졸업식 제자들의 김교신에 대한 헌사에서
말하고 말해서 한이 있겠는가. 이 정도로 멈추는 것이야 말로, 도리어 선생의 존엄을 높이는 까닭일 뿐이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 스승의 은혜에 조그마한 정성을 표하여 조품을 증정하려고 하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행위가 어찌 이로써 다 할 것인가. 아니 사은에 대한 감사의 길은 달리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무엇이냐, 과거 5년간의 교훈을 실행하는 일 이것이다. 스승이여 이 조품을 받으소서. 그리고 우리들이 스승의 교훈을 지킬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크게 기뻐하시라. 이로써 감사의 말씀을 대신함.
(1938년 3월 양정 제22회 갑조 대표 낭독)

10,000 → 9,000원 (10.0%↓) 소득공제도서정가제500

홍성사에서는 한국고등신학연구원(‘키아츠’,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이 기획한 “믿음의 유산” 시리즈로서 목회자와 신학자를 포함한 성직자의 설교를 묶은 “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가운데 《길선주》 《김익두》 《이성봉》(이상 2008년 1월) 《주기철》(2008년 4월)에 이어 다섯 번째 책인 《김교신》을 내게 되었다.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은 한국 교회가 낳은 탁월한 교육자이며 기독교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교단의 중심적인 목회자는 아니지만 그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왜 기독교여야 하는지, 기독교가 주는 능력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제대로 누리면서 한 세상을 두려움 없이 아름답게 살다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뇌하고 증거하다 간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신앙과 삶을 대변하는 중요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그가 주필主筆로 있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에 실린 것들이다. 각 글의 끝에는 발표된 날짜와 제호를 밝혀 두었다. 원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본문의 성경 인용은 가급적 그가 사용한 그대로 옮겼으며, 한자나 옛말의 경우 가급적 원문 그대로 남겨두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를 추가하거나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선 기독교에 관해 논한 글들을 ‘참기독교’라는 주제로 모았으며, 다음으로는 김교신의 삶과 신앙의 궤적에 대한 글들을, 끝으로 그가 ‘민족과 신앙’이란 주제를 어떻게 연결하였는지 보여주는 글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신앙과 삶의 치열한 고뇌의 진정성과 그가 증거한 복음의 능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 ‘참기독교’
이 장에 실린 글들에서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가 처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통해 김교신은 ‘생명 없는 형식의 껍질’과 ‘세속주의’의 양극단에서 방황하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불신자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또 기복신앙에서 비롯한 신기한 술수를 기독교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심각한 오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참기독교인이란 허위의 평안 중에 안심하기보다는 불안 속에서 수척해질 수 있는 자이며, 마비된 채로 덧없이 살기보다는 각성 중에 깨어 고민하며 깨어 있는 자여야 한다. 또 늘 역사에 책임을 지고 사는 자이며, 평화와 정의, 자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자이다. 가장 어두운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머리를 들고 전진할 수 있는 자이며, ‘세상에서 망하게 되면 안심하고 망할 수 있는 자’이다.

2. 삶과 신앙
유교의 수신修身과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비교하며 고뇌하는 정황,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와의 만남,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천착 등 김교신의 신앙과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무교회주의의 본질적, 보편적 정신과 일본적 형식을 준별하고 그것을 조선 기독교인으로서 주체적으로 계승하고자 한 그의 신앙과 사상의 치열한 주체성을 읽어낼 수 있다,

3. 신앙과 민족
이 장에서는 조선의 정신적인 전통을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고자 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성서조선> 창간사’와 ‘<성서조선>의 해解’에는 그의 역사관과 맞물린 신앙관의 핵심이 잘 드러나며, <조선지리소고>에서는 지리학을 공부한 그의 한반도에 대한 자연지리적, 인문지리적 이해와 지정학적 위치를 토대로 짚어낸 우리 민족과 문화의 미래상이 돋보인다.

그는 서구 종교인 기독교를 ‘전통에서의 탈출과 배제를 위한 매개’로서가 아니라 전통을 내재적으로 초극하는 매개로 파악했다. 기독교는 그에게 주체적인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힘이었다. 또 ‘약자의 자존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하심을 바라며 그것을 역사 속에서 형상화하고 증거하도록 조선의 역사를 변화시켜 가는 창조적 역사 형성의 힘이었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도 매순간 주어진 상황을 뚫고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무소불위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8,500 → 7,650원 (10.0%↓) 소득공제도서정가제420
소수자의 좁은 자리에 있는 존재라고 김교신을 폄하하는 의견이 있음에도, 민경배 선생은 한국 교회사의 한 줄거리고, '성서' 와 '조선' 을 '커뮤니온' 적으로연결시킨 한 유형으로, 1930년의 입장 균형이 곤혹스러운 그때에 '반 선교사, 반서양' 하면서도 '친일' 하지 않고, 회후까지 성서 위에 민족을 세우고자 한, 민족 신앙과 그 사상의 담지자로서 김교신을 설파해왔다. 이 책은 이미 언급한 대로 학술적이 연구가 아니다. 김교신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되도록 널리, 많은 신앙인들이나 일반인들에게까지 읽혀 알게 하고 싶은 '보편적 목표' 의 글이다. '조와' (弔蛙)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이룬 곳에 널찍한 바위가 하나 물 속에서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아주 좋은 자연의 예배당이다. 이 바위 위에서 때로는 작은 소리로 때로는 큰 소리로 기도하며 또한 찬송하고 있노라면 앞뒤 좌우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것은 웅덩이 속에서 바위 색깔로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라도 생겼는가 하는 표정으로 새로 찾아 든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이 때로는 5, 6마리, 때로는 7, 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연못 표면에 얇은 얼음이 얼기 시작하자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나날이 둔하여 지더니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얼어 연못 속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된 후로는 기도와 찬송 소리가 개구리들의 귓가에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알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끊긴지도 어언 몇 달이 지났을까.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 속의 얼음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소식을 살피고자 연못 밑바닥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연못 끝에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해 보면 지난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작은 연못의 밑바닥가지 얼어서 이런 슬픈 일이 생긴 모양이다. 다른 해 겨울에는 얼지 않았던 데가지 얼어 붙은 까닭인듯,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땅에 묻어 주고 보니 연못 밑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성서조선」제158호 1942년 3월호
11,000 → 9,900원 (10.0%↓) 소득공제도서정가제550
성서 조선의 꿈,
이책을 통해 다시 살아나다!


한국교회가 가라앉고 있다. 이는 타이타닉호에나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한국 교회에 대해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꼭대기 VIP Room은 고급 음식과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라고 통탄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할 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자리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교회를 보면 김교신이 생각난다. 일제강점기 김교신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를 통해서만 온다고 외쳤다. 그는 부패한 교회를 향해서는 날카로운 화살을 날렸다. 당시의 한국 교회와 오늘의 한국 교회는 변한 게 없다. 변한 게 있다면 더 풍요로워졌고, 복음은 더 변질되었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라. 조선인에게 성서 만을 주라”
니이호리 구니지

(新堀邦司 1941- )

1941년 2월 사이다마현 출생. 1963년 중앙대학 법학부 법률학과 졸업. 도쿄 YMCA학원 원장. 과거에 있어 참된 신앙적 관계를 맺었던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인 김교신과 우치무라 간조를 소개하고자 붓을 들었다. 이 책은 김교신의 저항의 생애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그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정적 신앙의 근원을 구명한 이야기이다. 일본의 신앙잡지 <미루토스>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박찬규
아주대학교 국문학과 중퇴,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아주대학보 편집장, 전국대학신문기자연석회의 대표, 연세대학교 학생신앙운동(SFC)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도서출판 익두스 대표.
김교신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다 함흥보통학교를 거쳐 1919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투영어학교에 입학했으며,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가르침 아래 기독교에 입신하면서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이 조국을 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22년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1927년 양정고등보통학교, 경기중학교, 송도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1927년부터 월간지 <성서조선>의 간행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하지만 1942년 3월호(제158호)에 실린 권두언 '조와(弔蛙)'가 조선의 민족혼을 찬양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성서조선>은 폐간되고, 신앙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동안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이다. 출옥 후에는 흥남의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에서 5천여 조선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진력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불과 넉 달 앞두고 1945년 4월 25일 타계했다.
서정민
1956년 출생 연세대학교 신과 및 대학원 일본 도시샤대학 및 동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원 기독교문사 편찬부장 역임 현재,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소 연구위원 저서: 「교회와 민족을 사랑한 사람들」「한국 기독교의 역사 Ⅰ·Ⅱ (공저)」「일본 기독교의 사론적 이해 (역)」「한국 교회 논쟁사」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니이호리 구니지 / 도서출판 익두스
가격: 10,000원→9,000원
박찬규 / 도서출판 익두스
가격: 13,000원→11,700원
김교신 / 홍성사
가격: 10,000원→9,000원
서정민 / 말씀과만남
가격: 8,500원→7,650원
전인수 / 삼원서원
가격: 11,000원→9,900원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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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김교신의 삶과 신학 관련 도서 세트(전5권)
저자니이호리 구니지,박찬규,김교신,서정민,전인수
출판사갓피플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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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12-11-12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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