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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성경기획

이덕주 교수 저서 세트(전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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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덕주  |  출판사 : (주)갓피플
  • 판매가 : 81,000원72,900원 (10.0%, 8,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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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의 멘토용 교재(mentoring text)로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멘토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쳐 읽겠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1 독자는 바로 나이다. 그래서 가급적 그분이 직접 기록하신 자서전 내용에 손을 대지 않고 요즘 말로 옮기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나의 해석이나 평가를 절제하고 그분의 말씀과 음성을 직접 듣고자 노력했다. 이런 나의 노력과 의지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평가에 달렸다. 다만 몇 명이라도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이 책을 읽다가 교훈과 답을 얻는 목회자들이 나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 머릿글 중에서

성서를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만나 대화를 시작하다!
새로운 역사를 향한 나눔과 평화의 이야기들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로 순수했던 초기 교회의 ‘처음 사랑’을 말했던 이덕주 교수가 이번에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을 펴냈다. 한국 교회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더구나 사회주의자도 아닌 그가 어떠한 연유로 이런 제목의 책을 펴내게 되었을까?
 저자는 세 번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면서 통일과 통일 이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절감하고, 교계와 신학계에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통일 이후 한반도 신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기 위해 먼저 성서를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어 보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출애굽기의 만나 이야기, 레위기의 안식년․희년 사상, 예수님의 천국 비유 등에 균등 분배를 실현하려는 사회주의적 이상이 담겨 있음을 보여 주는데, 이것은 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 우리의 성서 읽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게 한다.
 오늘날 안팎으로 비판에 처해 있는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경쟁과 지배’의 자본주의 논리가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기독교 사회주의의 원리임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의 성서 해석과 우리 옛 선조들의 문화를 통해 역설한다.


- 저자 인터뷰

1. 감신대 한반도평화통일신학연구소 소장으로 계십니다. 어떻게 연구소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세 번 북한을 방문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 너무 긴박하고 강렬해서 만든 연구소입니다. 한마디로 “통일은 낭만이 아니고 현실이다”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통일은 거역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막상 통일과 그 이후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통일의 마지막 단계가 될 정신적․종교적 화해와 일치를 위해 교계와 신학계에서 뭔가 해야 할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고 나부터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뜻으로 동료 교수들과 ‘통일 이후(post-unification) 한반도 신학’을 모색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반도평화통일신학연구소는 그런 배경에서 설립한 것이고 매년 무크지 <통일 이후 신학 연구>를 내고 있습니다.

2. 한국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교수님께서 이번에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을 발간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이것 역시, 세 차례 방북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실제로 북쪽에 가보니 말로만 들었던 사회주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것은 엄청난 충격과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쪽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란 나로서는 북쪽 사회주의 체제와 문화가 아주 낯설게, 그리고 거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현실이었습니다. 그걸 현실로 받아들일 때 대하는 방법은, 배척하고 타파하거나 대화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후자를 택한 것입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 배치되고 이질적인 것이 많지만 상대방의 실재를 인정하고 대화하면서 공동선과 공유가치를 모색해보자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런 작업은 제가 처음 하는 것은 아니고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이 있어왔고 지금도 많은 유럽의 사회복지 국가들이 이런 철학적, 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정치 체제를 운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3. 기독교 사회주의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 한국 교회에 기독교 사회주의가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을지요. 여전히 통일은 요원해 보이는데 ‘통일 이후 신학’이 분단된 한반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요.
 제가 말하는 기독교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나 레닌의 과학적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와 출발을 달리합니다. 공산주의가 물질과 인간에서 출발한다면 기독교 사회주의는 하나님과 성서에서 출발합니다. 성서와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많은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실현한 인류 사회’의 이론적 바탕을 기독교 사회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독교 사회주의를 ‘통일 이후’ 한반도 신학의 하나로서 그 가능성을 본 것은 첫째, 통일 과정이나 그 이후 (자본주의만 경험한 남쪽과 달리) 사회주의만 경험하고 사회주의 이론에 익숙한 북쪽 사람들과 대화를 해나갈 때 사회주의 개념을 갖고 대화를 시작하면 대화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사회주의를 공동 관심사로 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둘째, 통일 이후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북쪽 사람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 사람들도 변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자본주의 얼굴과 마음을 가지고 북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혼돈과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 그리고 통일 이후를 위해 남쪽 사회, 특히 남쪽 기독교인들의 정신과 자세가 바뀌어야 합니다. ‘경쟁과 지배’의 자본주의 논리가 아닌 ‘나눔과 섬김’의 기독교 사회주의 논리로 나아갈 때 평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4. 책에서 오순절 성령 공동체나 만나 공동체 등을 사회주의적인 관점으로 읽습니다. 또 땅따먹기며, 까치밥이며, 옛 초대 교인들의 문자적 성서 적용에서도 평등과 자발적 나눔에 대한 사회주의적 이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과 협력’이라는 상반된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 그리고 성서의 기록과 기독교 역사 속에는 자본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자본주의에 유리한 대목도 있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자본주의 논리로 성서를 읽고 기독교 역사를 서술하는 데 익숙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성서와 역사를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만 살던 사람들과 통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시대적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성서를 읽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자본주의 쪽에서 읽었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말씀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금까지는 성서를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으로만 본 것입니다. 이제 두 눈 모두 뜨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서에 담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옛 문화, 땅따먹기, 까치밥 같은 것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 역사와 문화 전통에도 사회주의적 나눔의 전통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지요.

5.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는지요?
 세 부류의 독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은 도발도 되고, 도전도 되고, 도움도 될 것입니다. 첫째, 과거의 전쟁 경험이나 주입식 반공교육에 의해 사회주의를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여기고 불신과 증오감을 갖고 극보수 우익에 서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은 도발이 될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 이론이나 서술이 역겹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들과는 논쟁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상호 존중해 주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둘째, 자기 경험이나 이념의 포로가 되기보다 신앙이나 성서 전통에 보다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들, 성서와 기독교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찾아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는 분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성서 읽기와 역사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오늘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분들,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한국 교회의 자본주의 논리와 문화를 극복하고 ‘모두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새로운 신앙공동체 문화를 추구하는 분들, 그리고 한반도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하며 현실에서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발이 되든, 도전이 되든, 도움이 되든, 이 책이 한국 교회의 본질 회복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 책 소개

1. 왜 기독교 사회주의를 말해야 하는가? - 하나 될 한반도를 위해 낯설지만  꺼내야 하는 이야기
70년 가까이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된 이 나라에 교회는 책임이 없을까? 화평케 해야 할 교회가 분단의 현실 앞에, 그리고 분열된 한반도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저자의 물음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한반도가 이렇게 분단 상황이 된 것에는 교회의 책임도 있다. 화해와 평화를 추구해야 할 한국 교회 지도자들 중 많은 수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상황에서 편향적인 ‘보수 우익’ 입장을 취하면서 분단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이 뼈아픈 반성을 통해 앞으로 교회는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그 해답을 찾는 중 기독교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실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차치하고 그 용어부터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 교회사에서 그동안 기독교 사회주의가 어떤 위치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1920-30년대에 등장한 사회주의에 대해 기독교계는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삼거나,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인식하고 비판하거나,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 협력을 모색하거나, 이 세 가지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 중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 협력을 모색했던 부류는 소수이기에 한국 교회사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의 역사는 단편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또 미국식 자본주의 신학 교육과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는 분단 상황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 사회주의는 개인의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보수 신학에 맞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적’ 신학으로서 역사적 맥을 이어왔다.
세 차례 평양을 다녀온 저자는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제3의 이념으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쪽 모두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기독교 사회주의를 연구하게 되었고, 바로 그 기독교 사회주의에서 남과 북이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2. 성서, 사회주의 관점에서 읽다 - 새로운 역사를 향한 우리의 성서 읽기
기독교 사회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성서를 기독교 사회주의 관점에서 읽어 본다. 먼저 출애굽기 16장 17-18절의 만나 이야기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하루치의 만나를 내려 주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올 때 많이 거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거둔 사람과 적게 거둔 사람의 소득 격차가 분명히 존재할 텐데 어떻게 부족함이 없이 모두 균등하게 배분되었을까? 이것은 ‘한 사람이 하루에 한 오멜’이라는 만나 규칙 때문이었다. 즉 더 많이 거둔 사람도 내일 또 하루치의 만나를 내려 주심을 믿고 얻은 물질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는’ 과정에서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오멜”이라는 균등과 평등이 만나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 레위기 25장 8-12절 희년 규례도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안식년(제7년)을 일곱 번 지내고 난 다음 해, 즉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한다. 희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기 땅을 팔고 남의 집에 가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이 자기 땅을 되찾고 가족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희년 제도는 땅값의 산정 기준이 되어 희년과 가까워질수록 땅값은 싸진다. 땅을 파는 사람도 능력만 있으면 언제든 무를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하더라도 희년만 되면 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땅을 산 사람도 어차피 희년이 되면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기에 정도 이상의 땅을 얻고자 욕심 부리지 않는다. 결국 희년의 의미는 “가난한 자에겐 희망을, 부요한 자에겐 나눔을”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잘 보여 주는 비유는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다. 이른 아침부터 온 사람이든 해 질 무렵 온 사람이든 포도원 주인은 똑같은 일당을 주었다. ‘일한 만큼 받는다’는 성과급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자는 이것을 만나 공동체의 신약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만나 공동체에서 율법으로 이루어진 균등 분배가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이 한 오멜”과 같이 “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사회주의 관점으로 성서를 읽어 보려 한다. 이런 시도는 그동안 우리가 자본주의적으로만 성서를 대했던 것을 반성하고, 남과 북이 함께 성서를 읽을 통일의 날에 우리의 성서 읽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게 한다.

3. 부자와 가난한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 포기할 수 없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비전
이렇듯 성서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비전이 제시된 구절들이 있다. 한 사람이 한 오멜을 갖는 만나 이야기,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는 희년 이야기, 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천국 이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에서 안식년이라든지 희년 규례가 그대로 구현된 적은 없다.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런 이스라엘 공동체를 책망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이유를 삶 속에서 빈민 구제와 빈곤 문제 해결을 외면했던 종교인들의 위선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멸망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예언자들은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메시아를 기다렸다. 사회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릴 통치자를 염원한 것이다. 이사야는 그 비전을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장면으로 묘사했다(사 11:6-9). 이것은 과연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인가? 권력층과 부유층, 소외계층과 빈곤층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을 실현할 법과 종교가 있었음에도 실패한 이스라엘을 보고도 가능하다 말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기독교 사회주의는 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상극이지만, 이 둘이 공존과 협력을 이루어 나눔과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꿈, 그 꿈은 사회주의 실험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바로 그 꿈인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일맥상통하다.

4. 사람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힘으로 가능한 공동체 - 내 것을 나누고 먼저 희생하는 기독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기독교가 언제부턴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듣고 있다. 저자는 그 원인이 세속적 자본주의 원리를 교회가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물량적 성장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원리를 교회에 적용한 결과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그에 걸맞은 성숙이 뒤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개인적 종교 자유’만 말하고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변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한국에 처음 들어온 복음, 초대교회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이 그 답이 될 수 있겠다. 순수한 복음에 철저했던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는 기독교, 그런 신학과 신앙을 저자는 기독교 사회주의라 부른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초대교회 오순절 성령 공동체에서 그 근거와 가능성을 찾는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니(눅 18:27)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함께 모여 기도를 드렸고, 마침내 약속했던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일어난 것이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으로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2-35).
즉 물질의 공동 소유와 공동 사용, 공동 분배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모두 균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함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꿈꾼 메시아 공동체, 율법에 예시된 희년 공동체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수없이 시도하다 실패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같은 일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내 것을 즐거이 나누며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성령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기에 기독교 사회주의는 겸손히 성령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껏 법으로 제도로 균등 분배를 실현하려는 공산주의는 실패로 돌아갔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인간의 힘으로 이상 사회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낮아짐으로 희생의 본을 보이신 예수의 섬김의 정신으로, 그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불가능한 명령을 가능으로 바꾸는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성령을 구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겸손히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영성 전통을 세계교회에 알려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한국교회는 한 세기 남짓한 역사에서 '근대 선교역사의 기적' 으로 일컬어질 만큼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의 역사를 이룩했다. 더욱이 그런 부흥과 성장이 한말과
일제시대, 해방 후 분단시대의 모진 박해와 수난, 갈등과 분쟁의 역사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교회 '영성' 이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 역사 속에 발견 되는 영성은 서구 기독교 역사에서 형성된 그것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서구 기독교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담고 있어 서구 영성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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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를 민족사와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주시고
그것을 풀어가면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교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때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마태 13:32-36)다.
그런 지혜가 있어야 민족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가 '민족 구원'이라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1.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기까지
2. 낮선 땅에 펼쳐진 부드러운 복음 자리
3. 위기에 처한 나라를 어찌 두고만 보랴
4. 복음, 이 당에 뿌리 박기
5. 고난의 역사,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6. 반역과 훼절의 역사, 그러나 꺼지지 않는 촛불
7. 갈라진 민족, 부끄러운 교회 역사
8.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 되게 하소서

‘한恨’을 딛고 ‘한계’를 넘어 새 시대의 여명이 된 사람들!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과감한 행동에, 그 주위에 섰던 남자들이 놀라며 그 여인을 책망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여인의 용기를 칭찬하시며 세상 어디든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그 여인의 행한 일도 함께 전파될 것이라 하셨다(막14:3-9).

 

예수께 칭찬 들었던 그 여인처럼 우리 신앙의 옛 어머니들의 삶도 그러하였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가 주는 자유와 해방을 온전히 받아들인 조선의 여인들은 과감히, 유교의 구습으로 점철된 가부장 문화의 족쇄를 끊고 일어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새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역들이 되었다. 

 

남편의 외도에 속수무책 속앓이만 하던 전삼덕은 예수를 만난 뒤 이북지역에서 맨 처음으로 휘장 세례를 받은 주인공이 되었으며, 보쌈 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김세지는 기독교 진리를 만난 뒤 보호여회와 과부회 회장으로 활약하는 여성 리더가 되었다. 또 “밥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김점동이 예수를 만나 거듭난 뒤에는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한국인 최초로 여성 의사인 김에스더가 되었으며, 어려서부터 ‘무당집 딸’로 손가락질 받으며 결국 미쳐 버리기까지 했던 주포기는 예수를 만나 온전한 진리를 안 뒤, 해주지역 개척 전도부인으로 활약하는 주룰루가 되었다.

 

그 외에도 결혼 3일 만에 과부가 된 여인,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가 된 여인,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 한 번도 집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여인, 읽을 줄도 쓸 줄로 몰랐던 까막눈의 여인들이 복음을 통해 무지에서 눈을 뜬 후,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하며, 나아가 비운에 처한 나라와 교회를 위해 몸 바쳐 투쟁하는 여성 리더들이 되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방의 복음을 받아들여 민중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렸던 신앙의 옛 어머니들 이야기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함께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 이후 이덕주 교수의 두 번째 책


성실한 연구와 탁월한 글쓰기로 한국 교회사 분야의 거목으로 자리 잡은 이덕주 교수는 작년 5월에 출간된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를 통해, 그간 교회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던 ‘이덕주 마니아 층’을 일반 평신도까지 포괄ㆍ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부분 한국 기독교인들은 교회사에 관심이 적고, 관련 책을 찾는 독자도 드물다고 하기 때문에, 초기 교회사를 다룬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를 읽고 그 깊이와 글맛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입소문을 내 준 덕분에, 출간 초기의 우려는 거뜬히 씻어낼 수 있었고 오히려 이덕주 교수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문의를 자주 받아야 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은 이미 16년 전 기독교문사에서 한 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2쇄를 끝으로 절판되었기 때문에 그 뒤로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제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책의 먼지를 털어내고, 16년간 심화된 연구의 깊이를 더한 뒤, 부족하고 거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번에 새롭게《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개정하게 된 배후에는, 비록 무명의 여인들이지만 그 행한 일만은 믿음의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알려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편집자 노트

지난 5월,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 편집을 시작할 무렵, 저자이신 이덕주 교수님께서 책 앞 머리에 들어갈 ‘여는 글’ 원고를 보내 오셨는데, 그 글을 읽다가 그만, 울컥 눈물이 나고 말았다. 교수님이 쓰신 바, 감사의 글에 등장하는 나는 ‘나태한 오늘의 신앙 회복에 활력을 주는 것을 문서선교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여성 편집인’으로 그려져 있었다.

 

늘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하루하루 지내며 어느새 칭찬보다는 질책에, 감격보다는 반성에 길들여져 기죽어 지내던 내게 ‘사명을 갖고 일하는 여성 편집인’이라는 문구는 참으로 눈물겨운 칭찬이고 격려였다.


하지만 ‘타는 목마름에 샘물처럼 시원하던 그 격려’의 감격도 잠깐일 뿐, 어느새 나는 ‘일상에 찌들고 무뎌진 마음으로’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무감동 속에서 읽고 또 읽고 하였다. 그렇게 여러 번 교정을 보고 사진을 고르고 카피 문구를 쓰느라 정신없이 지내며 일을 끝낸 뒤, ‘저자 인터뷰’를 정리하기 위해 녹음되어 있던 교수님의 인터뷰를 듣다가 그만, 또 한 번 눈물을 뚝 흘리고 말았다.

 

서른다섯에 홀로 되셔서 삼 남매를 눈물과 기도로 키우셨다는 교수님의 어머님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을 쓸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 책의 여인들의 자료를 뒤지는 그 가운데서 위로를 받으셨다는 교수님의 고백을 들으며, 그제야 나는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을 교정하던 때, 강철보다도 냉정하고 무뎌진 내 가슴 속으로도, 끝내는 비집고 들어와 잔잔히 여운을 남기던 그 감동의 원인이 여기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어머님뿐 아니라 내 어머니 아니 울 엄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눈물로 나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아뢰시는 엄마 모습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났다.

 

귀한 책을 쓰셔서, 독자들이 과거의 묻혔던 역사를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덕주 교수님께 감사드릴 뿐 아니라, 그것이 눈물로 기도의 탑을 쌓으신 교수님의 어머님 덕분이었음을 깨닫고 그분께도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도해 오셨고, 앞으로도 기도해 주실 나의 어머니께도 다 표현할 수도, 다 갚을 수도 없는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기도를 들어오셨고 지금도 듣고 계시며 말없이 응답해 오신 하나님께, 오늘은 엄마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

 

 

<저자 인터뷰>

가르기보다는 포용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싸매 주는 모성(母性)의 역사

 

1. 처음 이 책을 쓰시게 된 동기, 그리고 16년이 지난 이후 다시 개정판을 출간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10여 년 전에 출판됐던 《한국 교회 처음 여성들》이 그간 절판돼서, 간간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구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홍성사에서 새롭게 개편 의뢰를 해 와서 개정 출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개정을 결심하고 다시 보니, 자료가 빈곤한 상태에서 썼던 10여 년 전 글이라 부족한 면이 많이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그 사이 역사를 보는 인식이나 안목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출간하면서 자료와 내용을 수정ㆍ보완하고 글도 매끄럽게 다듬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입니다. 한국 교회 여성들의 역사,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이 땅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성신학과 관련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신학계에 여성신학이 유행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여성신학이 한국에 소개될 때는 대부분 서구 여성신학자들의 책과 개념, 방법론을 그대로 베끼는 듯했습니다. 그 내용이나 주제에는 동감하지만 방법론이나 표현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한국 여성들에게 맞지 않거나 심할 경우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착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여성신학도 한국 여성을 주제를 삼는 것이 어떨까’, ‘한국 여성신학자들이 외국의 것만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우리 것으로 여성신학을 정립해 가면 좋겠다’는 희망에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2. 특별히 무명의 여인들을 선택해서 글을 쓰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한국 교회사나 일반 근대사에 여성으로서 이름을 크게 낸 분들이 있습니다. 유관순, 김활란, 임영신, 최용신 등 이렇듯 유명 여성들에 대해서는 교회사에서뿐 아니라 일반 역사에서도 이미 많은 평가와 연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 중에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거의 처음 접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저도 처음 만난 여성들이니까요.
유명한 여성들은 무명의 여성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명한 여성들의 배경에는 수없이 많은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무명의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유명인 중심으로만 역사를 쓰기보다, 이렇듯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복음에 자신을 맡겼던 무명의 여인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끼친 수고와 헌신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저는 계속 무명의 여인들, 무명의 교인들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을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3. 현대의 여성들이 우리 옛 어머니들의 리더십에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의 리더십은 예수의 영적 권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섬김이었습니다.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라.’ ‘높은 자리보다는 낮은 자리를 택하라.’ 낮은 자의 자세, 섬김의 삶. 그것이 바로 권위와 리더십의 근거였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동안 ‘한국 교회 여성들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고민했을 때, 대답은 바로 ‘예수의 마음, 예수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이북지역에서 맨 처음 예수를 믿은 전삼덕이나 김세지 같은 여성들은 모두 부유한 양반집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후 그들은 모두 섬김의 모습을 실천했습니다. 가마를 버리고 걸어 다니며, 방물장수처럼 시골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성경책을 팔고 복음을 전하고 어려움에 처한 여인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양반집 여편네가 뭐가 부족해서 책을 팔러 다니느냐” 비난할 때도, 그들은 “예수께서 내게 보여 주신 삶, 보여 주신 은총이 이렇게 큰데 어찌 내가 가만히 앉아서 대접을 받고 있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한국 교회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낮아지고 더 비우는 것,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한국 여성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모델이고 교훈이며 질책인 것입니다.

 

4.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이 책을 읽는데 도움 될 만한 귀띔이 있다면?
제가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서른다섯 살에 혼자 되셔서 삼 남매를 눈물의 기도로 키우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정,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이 책에 수록된 여인들의 자료를 찾으면서 위로받았고, 그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어 갈 때, ‘이게 바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여성들이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 공포와 감격과 평안을 우리 어머니도 그대로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 속의 여인들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를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시고 어떻게 우리를 키우셨으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셨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신앙의 대’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가계보다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훨씬 풍요롭고 감동적입니다. 한국 교회도 그런 측면에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가르기보다는 포용하고 질책하기보다는 싸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분쟁과 갈등의 역사가 아니라 화합과 포용의 역사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모성의 역사, 어머니의 역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단지 이 책의 주인공들만 위대했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도 위대했고 우리 할머니도 위대했고 우리 누이들이 위대했다고 고백하게 되길 빕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가 만났던 주님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리: 편집부 한수경)

 

>>>본문내용

전삼덕은 오랜 봉건적 체제의 굴레 속에 묶여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한국 여성의 ‘한限’과 ‘한恨’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유와 해방이 주는 창조적 삶을 살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전통사회의 끊임없는 방해가 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뜨리며 앞서 나간 선구자의 삶이었기에 전삼덕의 도전과 모험은 더욱 빛났다. ……여성에게 한없이 냉랭했던 가부장적 사회의 굴레 속에서 신앙으로 한번 데워진 ‘성신의 화덕’은 열기를 잃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뜨거움을 전하고 있다. (30쪽)

 

경상도 마산, 이름 모를 곳에서 태어나 기독교를 통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교육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여메례. 그는 말년을 이름 없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농촌교회를 찾아 봉사하다가 결국 이름 모를 무덤에 묻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姓이 셋이었을 만큼 파란만장했던 그의 일생은 다만 부강교회에서 세운 ‘여메례전도사기념비’를 통해 후세에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56쪽)

 

김점동, 김에스더, 박에스더에 이르는 이름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였다. “밥 먹는 것밖에 모르며 하나님이 계신 줄조차 모르던” 김점동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어 육신과 영혼의 질병에 찌든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해 짧으나 고귀한 삶을 바치기까지는 두 번에 걸친 이름의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변화 때마다 그의 인생을 안내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있었다.(66쪽)

 

어릴 때 이름은 주포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배고픔의 설움을 겪고, ‘무당집 딸’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행한 시집살이 끝에 결국 미친 여인이 되어 버림받았던 주룰루. 그가 변화되어 학교 선생이 되고 전도부인이 되어 교회를 세우고 놀라운 전도의 결과를 일으키게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 “내 생활의 피난처”인 예수 때문이었다. 신앙인 주룰루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모든 고통이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고, 신앙의 힘으로 닥쳐오는 모든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만의 고통이 아니라 그 당시 이 땅을 산 모든 신앙의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뿌리 위에 오늘 우리 후손들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84쪽)

 

과연 그는 ‘거리의 여장부’였다. 백발을 날리며 민족 계몽과 전도를 위해 헌신하는 70대의 그의 모습은 바로 1919년 3월 9일 재령읍 거리에서, 그리고 1920년 3월 1일 밤 선천 거리에서 만세시위대 앞머리에 서 있던 30대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173쪽)

 

목포에 머물러 있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를 문준경 전도사는 ‘교인을 죽게 버려 둘 수는 없다’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적치하에 찾아들었고 결국 그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善牧者爲羊捐命]”는 목회정신이 그를 순교자의 자리에까지 이끌었던 것이다.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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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1세대의 순전한 믿음,

처음 신앙을 찾아서!
 

빚 문서를 불태우고 마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준 부자,

노비를 양딸로 삼은 과부,

성경을 다 외워 버린 맹인,

세례를 받기 위해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천리 길을 걸어온 사람들...
 
읽은 대로 배운 대로 성경을 실천하며 1903년 원산 부흥운동.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909년 백만명구령운동의 '성령 바람'을 일으켰던 신앙 선조들의 열정과 한국 교회
성장 과정을 그린 책!
 
"백홍준의 하나님, 신석구의 하나님, 주기철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어머니 윤태신의 하나님....."
 
이 책을 쓰면서 궁극적으로 기대한 것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과거의 하나님을 오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일이다.
한국 초대교회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던 신앙 선배들의 하나님을 다시 만날 때,
오늘의 한국 교회가 처한 신앙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은 글을 쓰는 나 자신을 향한 경고이자 채찍이고
훈계이자 격려이다. 행여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내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아픔과 감동에 동감할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여는 글'에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신학박사). 감리교 목사로 서울 신암교회와 광서교회에서 목회하였고 기독교문사 편찬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한국교회사와 아시아교회사 강의를 담당학고 있으며, 감신대 부설 한반도평화통일신학연구소 소장으로 동료 교수들과 함께 '통일 이후 한반도 신학'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한국 초대교회사 관련 저술로 <초기 한국기독교사 연구>,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 이야기>,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등이  있으며, 통사 성격의 <쉽게 쓴 한국교회 이야기>, 한국교회사 유적 답사기를 정리한 <눈물의 섬 강화 이야기>,<개화와 선교 요람 정동 이야기>,<충청도 선비들의 믿음 이야기>,<남도 영성과 광주 선교 이야기>등이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이덕주 / 신앙과지성사
가격: 15,000원→13,500원
이덕주 / 홍성사
가격: 13,000원→11,700원
이덕주 / 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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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 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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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이덕주 교수 저서 세트(전6권)
저자이덕주
출판사(주)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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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1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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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이덕주) 신간 메일링   출판사((주)갓피플)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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