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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성경기획

차정식 교수 2008~2013년 출간(개정) 저서 세트(전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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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차정식  |  출판사 : (주)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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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스캔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성경을 종횡하며 이 시대에 지니는 성경 속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재해석하여 신학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이 아닌,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는 사건임을 드러내주는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이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는 각종 '스캔들'은 대개 연예계나 정계가 그 진원지이다. 그것은 인간의 말초적 욕망의 언저리를 가볍게 맴돌다가 사라지는 '성적 추문'의 통상적인 표현으로 운위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스캔들의 본래적 의미는 그렇게 가볍지도 않았고, 말초신경의 욕망에 그렇게 쉽사리 휘둘리지도 않았다. 이 어휘의 뿌리를 캐어보면 거기에서 우리는 '스칸달론'(skadalon)이라는 중요한 희랍어와 마주친다. 보통 '걸림돌' '장애물' 등의 의미로 풀이되는 이 어휘는 신약성서에 명사로 15회, 동사로 29회 사용되고 있다. 그 어휘가 사용되는 맥락은 다양하다. 가령, 걸려 넘어지는 대상은 대개 사람이고 고착된 세상의 체제이며, 그 동인이나 매개는 몸의 지체와 그 욕망, 언어, 음식을 비롯한 생활 관습 등이다. 그 의미 역시 부정적이며 동시에 긍정적인 역설의 구도를 보여준다. 앞서 열거한 사람과 체제에 연루된 스칸달론이 대체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반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계될 때 이 말은 유일하게 긍정적이다. 이 말의 동사적 의미는 본래 '(다리를) 절룩거리다'라는 함의를 지녔는데, 이후 '넘어지게 하다'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칸달론'이라는 명사가 '넘어지게 하는 것', '걸림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게 된 의미론적 배경이다.

물론 이 책에서 '스칸달론'을 사전적 개념과 어원론적 함의에 머물러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 책에서는 '스칸달론'을 하나의 신학적 메타포로 취함으로써 성서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인문학적 관심사들을 통찰하고 그 심층의 구조를 해석하는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개척하고자 한다. '약'이면서 동시에 '독'인 플라톤의 '파르마콘'(pharmakon) 비유처럼, '스칸달론'도 양날의 검처럼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개념이다. 그 역설의 힘으로 이 개념은 신학의 제반 관심사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해석학의 미래를 개척할 만한 창조적 메타포로서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대전제이다. 요컨대, 그것은 파괴하면서 창조하는 신학의 에너지이며,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자율적 생명의 신진대사이다. 나아가 신학적 메타포로서의 '스칸달론'은 생활세계와 사유의 지형을 헤치면서 보듬고 억제하면서 가로지르는 정중동의 생성 원리이며, 체계의 원칙과 그 바깥의 에누리를 두루 포괄하는 담론 생산의 요체이다.

신앙의 모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아무것도 모방하지 않는 것을 온전한 신앙의 철칙으로 삼았다. 모방이 없는 욕망의 모방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위대한 스캔들이 될 수 있었던 전복적 역설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 자리에 엉뚱한 짝퉁들을 잔뜩 채워놓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닮으라고 채근한다. 또 그 하나님을 닮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재촉한다. 여기에 퇴락한 21세기 스캔들의 교회사적 비극이 있다. 또한 맘몬의 자본제적 체계에 저당 잡힌 채 부흥, 성공, 축복 등 각종 간편한 구호들을 내걸고 가짜 욕망을 양산하며 그것을 모방하라고 부추기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병통도 바로 그 언저리에 걸려 있다. 문안과 소통이 없는 곳에 아무리 자기동일성의 신앙으로 충만하여 똘똘 뭉친들, 거기에 자잘한 모래 같은 스캔들의 희롱은 있을망정 추문을 전복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스캔들의 바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세상의 통념화된 고상한 가치들을 '회칠한 무덤'으로 까발려 부정적 스캔들로 만들고, 권력의 그늘에 가려 매장된 삶의 생기를 복원ㆍ갱생하는 긍정적 스캔들의 계발을 겨냥한다. 그 이론적 방법으로 르네 지라르뿐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 알랭 바디우, 엠마누엘 레비나스, 조르주 바타이유 등을 불러온다. 이들의 인문학적 핵심 개념을 통해 나는 신학적 메타포로서 스캔들의 차원을 그동안 신학의 대상에서 소외된,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주제들로 확산시킨다.
저자는 '스캔들'의 원형으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자리매김하며, 신이 있는 성전인 교회에서조차 추문이 들끓는 이 시대에, 신학의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였던 십자가의 의미, 부활의 참 뜻을 되살려낸다.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그 시대의 흉악범들을 제거하는 폭력에 걸려 넘어졌지만, 그 스캔들을 딛고 부활함으로써 역전의 스캔들의 원형이 되었다는 스캔들의 신학을 날카롭게 조형해낸다.


21세기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 스캔들의 신학
이 시대에도 신학이 있는가? 있다면 자본과 결탁한 종교의 언저리를 공고히 해주는 신학은 스캔들(추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다시 신학이 신학으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신학은 스캔들로서 역전의 제 존재 의미를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 감각할 수 없는 하나님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말과 글로 표현해야 하는 이 신학이라는 생물은 이제 제각각의 신비주의로 무장한 도착적 주체들의 난장 가운데 혼란의 아수라를 통과해왔다. 그 한 정점이 '도그마'라는 표상일 테지만, 도그마의 토대는 이제 많이 헐거워진 상태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도그마는 더 이상 긍정적 미덕의 기운을 풍기지 않는다. 그것이 긍정되는 영역은 오로지 자기동일성의 신념체계로 똘똘 뭉친 극단적 근본주의 신학의 동네에 국한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에누리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익명성을 재발견해야 할 시점에서 이 시대의 신학은 스스로 게토화된 다리 밑 걸인들의 장막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추한 거주처이고 그 추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 거지의 거지 됨을 드러내는 치열한 생존의 기술이듯, 신학은 스스로 스캔들이 되어 난장으로 착종된 신의 스캔들부터 폭로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바깥의 체계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워도 자기 내부와의 창조적 불화를 감내하지 못하는 학문은 아직 타자성의 비밀에 무감각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신학의 미래적 운명은 오래 묵은 공룡의 화석과 같은 그 가건물을 얼마나 철저하게 해체하고 그 위에서 또다시 광야의 바람을 경험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은 애당초 안과 밖의 구별 없이 이질적인 타자들이 대책 없이 만나 교섭하고 거래하며 번역하던 원초적 교통 공간, 즉 광야와 바다의 그 뫼비우스적 공간이 어떻게 신학의 마당에 형성되느냐 하는 점과 접맥된다.

실로 이 시대는 겸손한 수사학의 망토를 걸친 신들의 이미지가 현란하게 발호하는 풍조 가운데 떠내려가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교육과 종교 시장에서 인신의 권력은 세련된 문화적 코드를 덧입고 각종 미디어에 출현한다. 그것은 매체 시대의 뚜렷한 체계로 군림하는 또 다른 계시적 변종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근엄한 표정을 띠거나 예외 없이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성육한 말씀과 이미지를 후광으로 두른 채 곳곳에 출몰하는 유령으로 익명의 개인들과 교신하며 교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소통이 아닌 것은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을 말하고 말하지 않는 것을 제각각의 자폐된 문법 속에 듣고 또 읽어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떠다니는 이미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학은 이 시대에 진정한 믿음 없음을 폭로하는 번개나 화살이 되어야 한다. 그 어느 기관의 해체보다 독하고 악랄한 해체의 결기를 벼르고 세워 신을 잃은 시대에 신의 유산을 재생시키는 업무의 낯선 의미를 깨단해야 한다. 금기를 건드리는 자가 금기의 요주의 대상이 되는 항간의 이치를 뒤집어, 하나님의 낯익은 모습을 에누리의 시선으로 다시 낯설게 되돌리는 예언적 상징 행위가 신학의 이름으로 절실한 것이다.
이 시대의 신학이 게토화된 다리 밑의 장막인 것은 교회를 공동체를 떠받드는 조건 아래 챙기는 물질적 상징적 리베이트야말로 그 근본적 생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답적인 운신으로 옛적의 골동품을 보듬는 호사가처럼 성서를 필두로 옛적의 텍스트에 감추어진 주석적 의미를 찾는 노동에 골몰하면서 이 세상의 변화무쌍한 천태만상 가운데 스쳐 지나는 하나님의 동선은 자주 놓치고 만다. 파당적 진영의 감각에 매여 이합집산하는 무리들의 한구석에는 초라한 포즈로 이 세상의 첨단 담론과 점점 멀어져가는 신학자들이 있다. 그 사상적 속내의 한켠에는 여전한 중세적 체질로 순치된 상태에서 절대자와의 특수한 인연으로 챙기던 옛적 권위에의 향수가 곰팡내를 풍기고 있다. 교단과 교권의 위세에 눌려 신학의 얼굴은 수시로 생존의 변신술을 발휘하며 신학으로 정치하고, 정치로 신학의 위엄을 도모하는 버릇도 더욱 심화되어간다. 예수 시대에 율법을 의문(儀文)으로 삼아 그 손가락이 가리키던 대상을 놓친 채 그 손가락을 잘라 신줏단지처럼 섬기던 자들을 비판한 역사의 공력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교와 그 이론적 토대로서의 신학은 그 토대의 텍스트를 다시 의문, 곧 글자 나부랭이의 메마른 우상으로 퇴락시켰다. 이렇듯, 신학이 그 자체로 추문이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은 수두룩하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이다. 하나님의 어리석고 연약한 방식이 그 스캔들의 부정성을 알면서도 기꺼이 넘어짐으로써 치열한 패배의 사건을 통해 그 스캔들의 덫을 놓은 자들에게 그것을 되돌려주는 역전의 진리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의 스캔들은 하나님의 지혜로써 이 세상의 윤똑똑이들을 뒤엉켜 싸우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온갖 무성한 말의 지혜를 자기 몸으로써 돌파하는 능력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 시대의 신학, 이 시대의 종교 또한 십자가의 어리석은 지혜를 닮아, 추문이 된 종교, 곰팡내를 풍기는 신학을 온 몸으로 돌파하여 역전의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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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성서학적 기초에 대한 진중한 탐구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서학적 입장에서 사회와 그 사회의 복지에 대한 논의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연구서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실제 성서학과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가 통합된 연구를 찾아보기기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성서학자로서 사회복지의 주제를 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오롯이 담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기독교적 사회복지관의 성서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복지와 성서 연구가 별개의 것이라는, 우리가 그토록 당연시하는 고도로 분업화된 근대적 학문 연구의 풍토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성서학과 사회복지의 만남은 더 나아가 사회복지와 사회선교가 결코 나뉠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여러 사정상 이 책에서 구약과 신약성서 전체를 다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의 실재로서 지극히 현실적인 실체로 진전해 감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이 진정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풍족히 누리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성서시대의 역사는 사회복지사상의 부침의 역사와 함께 궤를 함께 하며 전개되어왔다.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의 계시는 일관되게 이 땅에 내신 생명들이 인간을 중심으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지를 지향하였다. 더러 굴절되고 퇴락하여 하극상의 세상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복지세상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존엄을 지켜내려는 선교적 의욕의 발로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복지와 사회선교가 만나고 인간복지와 기독교 신학이 접속된다고 하겠다.”

차정식 신학수상집

하나님을 본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에 냉정히 비추어보면 나는 하나님을 멀리 해야 현명하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나는 그 하나님을 너무 자주, 헤프게 떠벌려왔다.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즉각 죽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본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정면이 아니라 뒷면에 지나지 않았던가 보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피어오르다 종적을 알 수 없이 사라지는 하나님의 순간적인 이미지! 바로 하나님의 뒷모습!
그래서 내 신학적 희망의 최대치는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다. 내 독서와 공부의 자리에서뿐 아니라 내 산보와 불면의 사색 가운데서 그 뒷모습은 뜬금없이 스치며 숨어계신 하나님을 순간적으로 비추어준다. 상큼한 그대의 뒷모습 속에서도 담백한 하나님의 뒷모습은 경계 없이 가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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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의 사원(寺) 역할을 수행해온 시(詩)

신학자로서 시와 문학을 탐독하고 예술의 세계에 침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에누리를 여유있게 묵상하는 일종의 메타 신학적 통로라고 나는 대강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닫힌 교의적 체계에 가두지 않고 열린 자유 속에 풀어드리는 송축의 방식이자 인간으로서 바칠 수 있는 최대치 예의라고 나는 일관되게 생각한다. '하나님으로 하나님되게 하라'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기본 지향일진대, 그것은 상투적 고백과 선언적 명제 속에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 언어와 신학 담론을 자유스런 하나님의 숨결 속에 풀어놓으며 제 삶 속에 부단히 실천해나갈 때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다. 그 실천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언어로 나는 말의 사원 역할을 수행해온 시(時)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문학과 비평 쪽 모두 아마추어인 내가 굳이 이 책을 만들어보고자 용기를 낸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저자 서문 중에서..

예수의 한국사회 정면돌파기!!
즐거운 지옥, 한국사회라는 난맥 속에서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명쾌하게 풀어주는 도발적 제안!
이만열, 이동원, 김회권, 김형국, 김학철 추천!


인구 통계를 보면 한국 내에 기독교인의 수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심지어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 도처에는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들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 개인의 영성이 공적 삶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이러한 실패를 성경적,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예수의 길을 따르는 기독교적 생활정치철학을 확립할 것을 권고한다.

예수가 우리와 함께 이 땅을 살아가며 온갖 문제에 직면한다면, 과연 어떤 대안을 우리에게 이야기할 것인가? 예수라면 누구에게 투표할까? 4대강 사업에 대해 뭐라고 할까? 북한의 3대 세습에는 어떻게 접근할까? 청년실업의 늪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옥과 같은 현실로 느끼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변화무쌍함과 내부적인 착종 및 혼돈에 대한 구조적 재발상이 요청되는 시대 속에서,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23가지의 쟁점들을 예수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나가면서, 성경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연결점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정도(正道)를 함께 발견하고자 모색한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뒤엉킨 모순들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모든 건강한 시민에게 제시하는 예수의 시사비평이다. 예수가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는 미시적 관점의 '생활정치'와 거시적 관점의 종말론적 기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왜곡된 체계 한가운데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공감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기득권자들을 향해서는 분노로 질타했던 예수의 참된 정의를 경험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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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의 편견과 오해에 맞서
성서에 잠입한 에로스의 그림자를 추적한다


사람들에게는 ‘에로스’란 말의 선입감이 대체로 칙칙하고 찜찜하다. 특히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에로티시즘이란 말은 신앙과 경건의 이름으로 자랑스레 내세우기 면구스러운 심리적 켕김을 동반한다. 여기에는 피상적으로 알거나 전혀 잘못 알아온 서글픈 오해의 역사가 깔려 있다.

에로티시즘에 얽힌 오해들

첫째 오해는 에로스가 희랍의 신 이름이고 그래서 이방신화와 종교 전통에 뿌리박혀 있다는 것. 저자는 그러나 에로스의 신화가 비록 희랍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상적 얼개와 내용은 인간의 하나 됨과 육체적 생명력을 희구한 선사시대로까지 소급되며, 그 신화적 토대 위에 전개된 에로티시즘의 사상적 입자가 히브리 종교 및 사상 전통에도 면면히 그 그늘을 드리워왔다고 주장한다.
둘째 오해는 에로스의 사랑이 남녀 인간의 육체적 관능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 데 비해 성서가 가르치는 아가페의 사랑은 절대자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상극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에 대해 성서에서 아가페는 신의 사랑뿐 아니라 인간의 사랑, 그것도 미화되기 어려운 사랑, 가령 인간의 욕정과 영광을 사랑하는 행동까지 아울러 표현한다고 말한다.
셋째 오해는 에로스나 에로티시즘이 타락한 세속의 음란과 방종을 부추기면서 마치 천박한 포르노그래피의 사상적 저변이라도 되는 양 매도하는 풍토를 조장해왔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에로스의 묵은 정념을 일깨우는 일상적 에로티시즘이야말로 숨 막히는 현대문명의 두터운 금기를 성찰하고 그것을 과감히 위반하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생명의 숨구멍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비평의 풀무질이라고 주장한다.

성서에서도 에로스의 유산들이 탐지된다

나는 이러한 편견과 오해들에 도전하여 싸우면서 성서에 잠입한 에로스의 그림자들을 추적했다. 성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용태와 인상, 몸짓과 행동, 언어와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에로티시즘이라는 사상적 기틀이 그것들에 대한 해석의 관점이 되도록 각각의 사례들을 다양한 주제로 솎아봤다. 역시나 신약성서보다 구약성서에 더욱 풍성한 에로스의 유산들이 탐지되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한 몸’의 존재를 넘어 한 몸 ‘되기’의 과정이었다


히브리 서사의 이런 인류 창조 이야기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면서 헬라의 신화 전승도 유사한 패턴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플라톤이 채록한 것으로 알려진 에로스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태초에 자웅동체로 존재한 한 인간이 워낙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신들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기세등등해지자 제우스신이 천상의 회의를 거쳐 내린 결론은 그들을 반으로 갈라놓는 방안이었다. 그래서 절반으로 갈라진 인간은 한쪽이 남성으로, 다른 한쪽이 여성으로 분립되어버렸다. 이후 인간은 상실한 나머지 반쪽을 애타게 갈구하는 여정의 생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일련의 과정에 에로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헬라적 맥락에서 에로스의 정점은 곧 결핍의 극복, 충만의 완성이다.

이에 비해 창세기의 이야기는 다소 각도가 어긋난다. 거기서 태초 인간 아담은 남자도 아니었고 여자도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그냥 흙에서 만들어 하나님의 숨결로 생명이 된 그 자체로 온전한 ‘아담’(=인간)이었던 것이다. 제우스가 인간의 오만방자를 우려한 것과 달리, 아담을 지으신 창세기의 하나님은 그가 혼자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그래서 그를 돕는 짝으로 또 한 사람을 지어주기로 했다. 아담이 결핍된 존재라서가 아니라 홀몸이라는 이유가 또 다른 인간 창조의 사유였다.

우리가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몸을 씻듯이,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몸을 해코지할 아무런 대적이 없는 낙원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만들어준 상태의 천연적인 몸을 천연덕스럽게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을 좋게 여겼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성애에 적절한 몸의 준비 상태나 그들이 먹을거리를 채집하는 동작이나, 혹은 그들이 배변을 하는 상태에서도 그들은 아무런 변함없이 그 몸을 그대로 유지했으리라는 상상에 이르면, 그들의 에로틱한 동선이나 체위가 곧 먹고 마시는 생활 체위와 다를 바 없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상품화된 여성의 나신이나 노출된 신체의 특정 부위에 시선을 밀착시켜 안목의 정욕을 탐하는 관음증적 세대의 감각에 비추어 매우 생소하고 뜨악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들의 벗은 몸은 마치 갓난아이의 그것처럼 욕망의 대상으로 몸의 풍경을 축소해온 동시대의 음탕한 감각에 철퇴를 가함으로써 에로티시즘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준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역설인가.

하와의 창조를 통해 아담은 독처의 상태에서 저 홀로 온전해지는 단계를 넘어 한 공동체 내에서 함께, 한 몸이 됨으로 온전해지는 선교적 과제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 내부의 하나 됨을 위한 선교적 과제가 생략된 채 외부로 향한 금욕적이고 씩씩한 여성 선교사들의 남자 되기 열풍은 남녀관계를 매개하는 에로스의 상실이 초래한 역기능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때의 ‘하나’는 독립적 주체들이 상합하여 이룬 조화로운 결실로서의 한 몸이 아니라 남자라는 반쪽 인간 속으로 여성성을 던져버린 결핍된 인간의 표상이었다. 이처럼 ‘생성’(becoming)의 지난한 과정이 생략된 ‘존재’(being)의 당위가 하나 됨의 이념조차 타락시켜 전체주의의 텃밭을 일구어놓은 것이 역사의 실상이다. ‘존재’의 당위가 메마른 삶의 목표에 집착하게 만든다면, ‘생성’의 과정은 그 비린내 나는 에로틱 에너지를 발효시켜 인간(성)의 온전한 회복에 기여한다. 그것은 육체가 된 하나님의 형상을 삶의 경험 한가운데 복원하는 길과 다를 바 없는 여정일 터이다. 당위로 강박되는 한 몸의 존재보다 날마다 이루어가는 한 몸 되기의 그 여정이 더 심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사기 여성전사들에게서
미인은 어떻게 건강할 수 있는가를 배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린도전서 16:13). 이는 고린도교회의 특정한 개인에게 전한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린도교회의 남자 또는 여자 성도를 겨냥하여 한 발언도 아니다. 합리적인 추론을 하자면 이 말은 모든 교인들을 향한 마지막 권고의 일부로 봐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남자답게’였을까. 이 말의 원문을 살펴보면,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남자가 되어라. 강건하라’(andrizesthe, krataiousthe)는 두 개의 명령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남자가 되는 것이 곧 강건함의 표상으로 인식된 저변의 사상사적 배경을 읽어낼 수 있다. 요컨대, 이 남자 또는 대장부라는 어휘들은 남자와 여자의 성별이 발생한 여자의 피조 이전 단계에 단 하나의 인간 ‘아담’으로 존재하던 원초적 상태의 강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가부장체제의 불평등한 억압 아래 눌린 여성들의 경우 남자의 종속적 피조물 수준을 넘어 태초의 강건한 인간, 아름다운 인간의 자질을 회복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결핍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친 흔적을 보여준다. 이는 나아가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는 행동이나 남자가 되라는 권면에 담긴 건강 미인의 사상사적 내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모든 전쟁을 기획하고 조율하며 통솔한 최종적인 리더십의 소유자 드보라의 위상과 역할은 이미 아무개의 아내 수준을 뛰어넘어 대장부보다 더 대장부다운 매우 파격적인 전사의 이미지로 충일하다. 사사기의 여성 전사들이 투사하는 모습 속에는 그야말로 통상적인 가부장주의적 여성상을 깨트리고 해체하는 ‘파격’의 미학이 잠재되어 있다. 성서는 그들의 외양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의 현실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는 위기 가운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또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그 담대한 모험과 투쟁을 통해 이미 남자와 여자의 인습적 경계선을 넘어 파격의 행동을 온 몸으로 보여준 인물들이다. 드보라의 동선 가운데 우리는 선지자와 사사, 군사작전기획가로서 두 지파의 남자들을 선발하여 일만 명의 군대를 만들고 바락이라는 남자 리더를 세워 승리의 신탁을 전달할 만큼 종교적 리더십과 정치적 통찰력, 전사적 용맹함을 갖춘 여성 이전의 담대한 원초적 인간을 본다. 야엘의 경우 역시 물을 달라는 시스라에게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는 공손하고 침착한 슬기와 함께 망치로 장막 말뚝을 적장의 머리통에 박아 관자놀이를 관통시켜 죽이는 용맹스런 대장부적 기백이 독자들은 압도된다.

유혹을 위한 관능적 유혹의 반복이란 욕망이 공동체의 생산적 에너지로 응집되는 경로를 촉진하기보다 방해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마치 밑 빠진 허구렁의 공간에 끝없이 부어대는 물과 같아서 잘해봐야 정제된 자기 신체의 방향제를 미끼삼아 노략질을 일삼다가 탐욕의 암초에 걸리는 지름길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단련시키고 치장한 몸이라 해도 그것이 체계가 부여한 여성성의 지속과 연장에 머물러버린다면 여성의 인간화에 기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치장된 에로틱 메커니즘이 인간의 기원과 종말론적 완성에 대해, 또한 역사의 소명에 대해, 아무런 응답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장과 향수로 분장한 몸의 끼로써 건강하게 아름다움을 우려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와 연계되어 있다. 아울러, 이 시대에 미인을 규정하는 세밀한 신체 부위의 기준과 이를 추동하는 자본제적 건강 열풍이 건강한 미인의 건강을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의 토대로 담보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룻과 나오미와 보아스에게서 발견하는
매력의 교육과 구애의 학습


예상 외로 많은 보리를 주워온 룻을 보고 나오미는 자초지종을 물어 정황을 파악한다. 산전수전 겪어낸 나오미가 보아스를 통해 나타난 이 은혜의 정치적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보인 그 특혜에 가까운 호의 속에서 룻에 대한 그의 인간적인 감동과 별도로 남성으로서의 관심을 읽어냈다. 먼저 보아스의 그러한 선대에 대하여 복을 빌고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라는 말로써 룻에 대한 그의 호의에 근거하여 나오미는 그와 같이 유력한 가부장을 통한 집안의 부흥을 기획한다. 이로부터 시작된 기획의 첫 대목은 이른바 매력의 교육이었다. 그것은 곧 구애의 정치적 전략이었으니 나오미는 룻의 섹슈얼리티를 기업을 이을 매개로 활용한다. 그 전략의 첫 단추는 룻이 보아스 집안의 하녀들과 함께 머물면서 그의 밭에서만 이삭을 줍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것은 보아스에게 룻이 보이는 독점적 관심의 표현이었다. 아울러, 이는 보아스가 룻의 이러한 관심을 역시 독점적으로 인식해달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 이런 식으로 나타난 ‘눈도장’의 동역학은 룻과 보아스의 관계를 단순히 땅 주인과 그 하녀보다 못한 이삭줍기 여인의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심화된 은혜의 관계로 상승되길 기대하는 데 있다. 룻이 이러한 충고를 무시하고 이삭을 더 줍기 위해 다른 밭으로 이동하여 웃음을 흘리고 다른 주인의 호의를 구하는 식으로 나갔다면 보아스의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것은 룻의 관심이 단지 보리이삭이라는 물질적 소유의 풍족함에만 머물 뿐, 그 은혜를 베풀어주는 보아스로 향한 인간적 우애나 이성적 친밀성과 거리가 먼 표시로 비쳤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룻의 준비는 매력을 위한 단장이었다. 먼저 목욕한 다음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는 여성으로서의 준비는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극대화하여 보아스의 남성적 호의를 덧입고자 하는 구애의 전략으로 나타났다.

보아스가 룻의 구애 겸 청혼에 대해 “네가 가난한 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응답한 걸로 미루어 룻에게 보아스는 아버지와 딸만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파트너였음에 틀림없다. 처음 베푼 인애는 물론 시모 나오미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나중에 보아스를 향해 베푼 인애는 나이든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자기의 소중한 여성을 주는 결단을 이른다. 그동안 룻에 대한 보아스의 친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높은 연령으로 인해 냉큼 그녀에 대한 관심을 이성적인 친밀감으로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향해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녀를 더 이상 하녀가 아닌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룻을 그 잠자리에서 성급하게 취하여 성관계를 갖기보다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하게 돌려보냄으로써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에게 구설수를 타지 않도록 매우 신중하고 현명한 처신을 하였다. 더구나 그는 룻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겉옷에다 보리를 여섯 되 담아줌으로써 마치 결혼지참금을 전달해주듯 활수한 혜택을 베푼다. 즉흥적인 에로스의 발동보다 겸손한 연민이 앞서는 대목이다.

룻과 나오미가 사적인 은혜를 매개로 호의적인 특수 관계로 엮이고 나오미가 기획하여 주도한 매력의 교육과 구애의 학습 과정이 그들을 예외적인 남녀관계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 관계 자체의 독특성을 드러내준다. 물론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담지할 다윗의 조부 오벳을 낳게 된 사건이 중요하였을 터이다. 그러나 신학 이전에 실제로 몸을 부대끼며 한 이불 밑에서 낯선 타인의 존재를 긴장하면서 느껴야 했을 당사자들에게는 그들의 만남이 당대의 관습을 넘어섬으로써 그 관습에서 자유로운 관계로 진전되기를 갈망했을 특별한 숨결이 느껴진다. 그 관계에 한 오라기의 순수성을 그 연애의 기념비적 휘장으로 걸쳐주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그 관계의 무르익음을 향해 룻과 나오미와 보아스가 서로 극진해지고 신중해지며, 마침내 단아한 아름다움을 피워 올린 인간적 에로티시즘의 극진함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차정식
서울대학교(국사학과),미국 메토믹신학대학원(M.Div.), 시카고대학교 신학부(Ph.D.)에서 공부하였다. 메토믹신학대학원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 교수, 한국기독교학회 편집주간으로 재직 중이며 전주의 열린가정교회에서 말씀으로 섬기고 있다.
연구저서로는 「하나님 나라의 향연-신약성서의 사회복지론」(새물결플러스 2009),「한국현재시와 신학의 풍경」(이레서원 2008),「예수와 신학적 상상력」(한국학술정보 2008),「예수의 신학과 그 파문」(대한기독교서회 2007),「신약성서의 환생 모티프와 그 신학적 변용」(한들 2007), 「예수는 어떻게 죽었는가」(한들 2006),「바울신학 탐구」(대한기독교서회 2005), 「마음의 빛을 부르는 기도」(대한기독교서회 2003), 「묵시의 하늘과 지혜의 땅」(대한기독교서회 2001), 「신약성서의 사회경제 사상」(한들 2000), 「성서주석:로마서」1,2 권(대한기독교서회 1999) 등 공저를 포함하여 30여권 냈다. 그밖에 신학수상집으로 「하나님의 뒷모습」(이레서원 2008), 「발밑의 명상, 길 위의 신학」(한들 2003) 등이 있으며, 지금까지 전공분야에서 100여 편의 연구논문을 생산해왔다.
「바울신학 탐구」가 문화관광부에서 올해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신약성서의 환생 모티프와 그 신학적 변용」 으로 한국기독교학회에서 제1회 소망학술상을 받았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차정식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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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 도서출판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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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 도서출판 이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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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차정식 교수 2008~2013년 출간(개정) 저서 세트(전7권)
저자차정식
출판사(주)갓피플
크기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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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3-04-17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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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차정식) 신간 메일링   출판사((주)갓피플)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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