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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들의 삶은 기독교에 있어 핵심적이다. 사막교부들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비현실적이거나 로맨틱한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막교부들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떠나 사막에서 하나님만을 의존해서 살았다. 그들의 인간성은 이곳에서 뿌리채 뽑혀 버렸고,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사자가 순교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막이 사막의 교부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어느 곳이나 사막이 될 수 있으며, 사막의 영성 또한 어느 장소에서나 성장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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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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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후 394년에 팔레스틴 수도사 일곱 명이 이집트 사막을 방문하여 그 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아무리 기독교 국가라해도 타락하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수도사들이 세상 이야기와, 4세기 이집트 수도원의 뿌리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문제에 대해서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삶은 바로 지혜의 삶이었으며, 그들의 이러한 지혜의 삶이 당시의 사회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베네딕타 와드는 서론에서 사막의 수도사들의 삶과 환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그 시대의 영성에 대해 좀더 깊이 연구하려는 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등 다른 문헌에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막 교부들의 삶> 을 통해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또한 지혜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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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복음의 말씀과 정신에 철저하게 순종하려고 노력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수백 년 동안 영감을 주어왔다.어떤 사람이 안토니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안토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시오. 항상 눈 앞에 하나님을 모시며, 어떤 일을 하든지 성서의 증언에 따라 행하며, 어느곳에 살든지 쉽게 그곳을 떠나지 마시오. 이 세 가지를 지키면 그대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안토니 앞에서 어느 수도사를 칭찬했다. 그 수도사가 안토니를 만나러 왔는데, 안토니는 그가 모욕을 얼마나 참고 인내하는지 알아 보려 했다. 그가 전혀 모욕을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안토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밖은 아름답게 치장했지만, 안에는 강도들이 들끓는 마을과 같습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이 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정신이 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편을 영창하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다.”
“시험이 없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마카리우스가 이집트에서 살 때의 일이다. 어느날 그는 도둑이 자기의 물건을 훔쳐서 낙타에 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인 체하며 다가가서 도둑이 물건을 싣는 것을 도와 주었다. 마카리우스는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그를 배웅해주면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말했다.
마카리우스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두 손을 펴고서 ‘주님, 당신은 아시오니 당신의 뜻대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하십시오. 만일 갈등이 더 치열해지면, ‘주님, 나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켈즈에서 홀로 은둔 생활을 하는 형제가 어려운 일을 당했다. 그는 테오돌에게 가서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테오돌은 “보다 겸손한 갈망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순종하시오.”라고 말해 주었다. 얼마 후에 그 형제가 다시 찾아와서 “형제들과 함께 사는 것이 전혀 평화롭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테오돌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 혼자서 있어도 평화롭지 못하고 형제들과 함께 있어도 평화롭지 못하니, 그대는 왜 수도사가 되었는가? 시련을 인내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대는 몇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가?”
“8년입니다.”
“나는 70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지만, 하루도 평화롭지 못했다네, 그런데 그대는 8년 동안에 평화를 얻기를 기대하는가?”
한 형제가 “형제가 범죄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 그것을 감추어 주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물었는데, 푀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감추어 주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감추어 주시며,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드러내는 순간에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십니다.”
이 책은 고결한 금욕주의와 칭찬할 만한 생활 방법, 그리고 거룩하고 복된 교부들의 말들을 기록한 책이다. 5세기 초에 사막 교부들의 금언과 전설을 수집한 사람의 필사본이 지금 프랑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중 교부의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는 부분이 본 저서이다.
그것들은 교부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발전을 이루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들이다.
한국 기독교의 판단 기준으로 그들은 과격한 금욕주의자이며 행위 구원론자들이라고 한마디로 비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인간의 수단이나 능력을 포기하고 단순히 주님만을 의지하며 산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든 생활은 오직 주님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이 어지럽고 기독교가 위기를 맞을 때 영적인 수원지 역할을 했다. 그들의 제자들은 동방교회, 가톨릭, 기독교에서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과 이어온 영적인 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사막교부에 대해사막교부의 시작은 안토니 자신이 동료들과 접촉할 수 없는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새로운 기독교적 관습―가장 심오한 인간적 긴장 관계들 및 독거의 약점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인간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확립되었다.
오랫동안의 철저한 고립 생활을 마친 안토니를 중심으로 제자들의 무리가 형성되었다.
그가 생을 마칠 무렵(355년경), 이집트의 사막에는 파코미우스가 상부 이집트에 세운 조직적인 공주 수도원의 형태에서부터 북부 지역의 스케테에서 체계적으로 형성한 작은 집단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금욕적 공동체들이 있었다.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 기독교적 이탈을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인 순교를 할 수 없게 되자, 수도원 운동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수도원 운동은 교회와 세상이 지나치게 쉽게 화해하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쿰란 공동체처럼 종말론적인 현상이었다.
사막은 적대적인 영들이 가득한 장소로 간주되었고, 초기 수도사의 주된 소명은 마귀들의 기만하고 파괴하는 능력에 대처하는 데 있었다. 때로 폐허가 된 이교 신전에서 지내면서 그곳에서 섬김을 받는 악령들의 간계와 싸우기도 했다. 또 참 종교 체험과 거짓 종교 체험을 식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즉 극도로 굶주리고 고립된 상태에서 위안을 주는 환상과 계시의 진위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마귀가 제공하는 눈을 부시게 하는 영적 드라마(천사의 음성이 들리거나 찾아오는 것 등)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지루함과 낙심, 그리고 좌절을 신실하게 견뎌내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므로 사막은 망상을 극복하고 욕망을 정화하는 장소이다. 마카리우스, 푀멘, 모세와 같은 4세기의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들, 그리고 보다 지적이고 철학적인 에바그리우스는 한결같이 참된 독거란 자신의 계획에 다른 사람들을 거두어 주기를 거부하는 것―그들이 표현을 빌자면, “형제들을 판단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삶을 해석하고 지도하는 데 있어서의 융통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련 수사는 작은 무리의 원로, 사부(abba)의 지도를 받으며, 사부의 말과 행동을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겨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부 역시 자신이 보살피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민감하게 의식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생활 방식의 특징을 『사막 교부들의 금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카시안은 Conferences와 Institutes에 교부들의 가르침을 요약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에는 대체로 4-5세기의 이집트, 특히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에서 유래된 일화들과 경구들이 담겨 있으며, 사부 푀멘(Abba Peomen)과 그의 제자들이 중심을 이룬다. 4세기 말 이전에. 이미 최초의 헬라어 금언들이 구전으로 유포되어 있었으며, 초보적인 형태로 기록되기 시작했었다. 5세기말이나 6세기 초에 존재한 주요 선집들은 거의 현재와 같은 완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수도사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부 안토니가 말씀하시기를…”, “한 형제가 사부 아르세니우스에게 묻기를…”. 또는 익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느 원로가 말하기를…”, “그 원로가 말하기를…”
그 금언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⑴ 특별한 사막 교부들의 이름을 취하는 본문들을 알파벳 순서로 수록한다; ⑵ 본문들을 주제별로 배열한 것(정적, 양심의 가책, 겸손 등). 헬라어 금언집 외에도 콥트어, 라틴어, 고대 시리아오, 그루지아어, 아르메니아어, 에디오피아어로 된 것도 남아 있는데, 종종 헬라어 판에는 없는 본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금언집은 에바그리우스와 같은 유식한 그리스인들의 체계적인 가르침보다는 주로 무식한 콥트 출신 수도사들의 단순하면서도 실질적인 지혜를 반영한다(그러나 에바그리우스는 자신의 저서에 금언 자료를 포함시켰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신랄하고 인간적이고 매우 읽기 쉬우며, 원시 사막 영성의 정신을 어느 전거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이 책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엮은 책이다. 이 내용은 이미 이 책의 시리즈인 사막교부들의 지혜.세계.삶에서 조금씩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은 세상이 어지럽고 기독교가 위기를 맞을 때 영적인 수원지 역할을 했다. 그들의 제자들은 동방교회, 가톨릭, 기독교에서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과 이어 온 영적인 대 산맥을 이루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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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집성한 『사막 교부들의 금언』에 이어서 이 책은 무명의 수도사들의 이야기들과 금언을 집성한 『사막 교부들의 세계』입니다.
이전에 출판한 같은 제목의 책과는 달리, 4세기의 이집트 사막에서 일어난 이야기들과 금언을, 1,5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 오늘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풋노트로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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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르게티노스
Evergetinos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200개 주제로 총정리한 책1783년에 출간된 이 책의 초판 제목은 『거룩한 교부들의 말씀과 가르침: 성 데오토코스 수도원을 설립한 바울 수도사가 에베르게티노스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것을 모은 글』이다.
이 책의 원본은 『에베르게티노스』인데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에베르게티노스 수도원의 설립자 바울 수도사(1054년 사망)가 수집하고 정리한 것을 1783년에 아토스 성산의 헤시카스트 성 니코데무스(St. Nikodemos, 1809년 사망)가 수정 감수한 후 서문을 써서 출판했다.
에베르게티노스는 헬라어 원본을 200개의 주제로 재편집한 책이다. 한글 역본 사막 교부들의 금언과 관련된 책들은 헬라어 『금언집』(Apophthegmata)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빠졌거나 표현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한글 역본에는 모두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사막 교부들과 관련된 텍스트들과 비교 참고할 수 있도록 각주를 달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은 영성생활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는 『필로칼리아』와 쌍을 이루는 귀중한 영적 보화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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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후반전에 다시 읽는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들
△ 사막 교부(敎父)와 교모(敎母)의 방대한 어록 가운데 스무 가지 인생 가르침을 선별해 짧은 해설과 함께 수록
△ 목회자 설교 예화 / 온 교인 사순절 묵상
풍요와 번영을 반성하며 십자가 영성을 실천했던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들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그렇다. 문 닫는 교회도 많고 목회를 포기한 목사도 많다. 교인들의 이탈도 심하고 남아 있는 교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위기다. 인류의 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가 열리는 ‘종말론적 위기상황’(eschatological crisis)에서는 언제나 전쟁과 기근과 온역(瘟疫)이 등장하는데,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성경은 그때를 ‘하나님의 날’이라 불렀다.
이러한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일부 한국 교회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번영과 풍요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기득권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맘몬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수의 십자가 영성을 살아 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AD 3-5세기 융성한 로마 기독교 문화를 뒤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완전을 경험하기 위해 자발적 고난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막 교부와 교모’들이다. 이들은 화려한 도시 생활을 피해 이집트를 비롯한 사막으로 떠나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그리스도의 완전’(perfectio Christi)을 경험하고 실천했다. 또한 사막과 광야 혹은 산에 움막을 짓거나 동굴 속에서 수십 년간 은둔해 살며 오로지 기도와 묵상, 노동과 청빈을 추구함으로써 말씀을 ‘온전하게’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로써 말씀의 권위가 확인되었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났다. 소문을 들은 도시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사막으로 찾아와 말씀과 조언을 구했다. 사막에서 회생된 십자가 영성이 도시 교회로 흘러 들어갔다. 풍요와 안락의 시대에 소멸되어 가던 기독교 영성이 다시 살아나게 된 배경이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 낸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이 책은 사막 교부와 교모에 대한 말씀을 완역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한 연구서도 아니다. 사막 교부와 교모에 대해 들어보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교양적 ‘사막 교부 교모 읽기’이다. 책을 엮은 이덕주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사막 수도자들처럼 칩거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고 깨달은 내용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스무 가지 주제를 선별해 구성했다. 그리고 각 장마다 그들을 움직인 성경말씀과 짧은 해설을 곁들였다.
“정리를 하고 보니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즐겨 했던 ‘스무고개’ 놀이가 생각났다. 둘이 짝을 지어 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어떤 사물이나 인물을 생각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그에게 ‘동물입니까’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그러면 ‘예’와 ‘아니요’로만 대답해야 한다. 그렇게 스무 번 질문을 던져 상대방 마음속 생각을 알아내는 게임이다. 그 과정이 마치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들어간 수도자들이 기도와 묵상, 침묵과 노동, 절제와 겸비를 수행하면서 수행 초기에는 어렴풋했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완전을 체득하는 경지에 이르는 감격을 누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출가로부터 임종에 이르는 모든 수행 과정에서 수도자들을 움직인 것은 오직 성경과 계시를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집을 떠났고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말씀을 통해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그런 맥락에서 스무 개 고비마다 그들을 움직였을 성경말씀을 골라 보았다. 그리고 말씀대로 산 결과 터득한 바를 증언과 고백으로 남긴 말씀들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사막 교부와 교모는 한마디로 ‘말씀에서 말씀으로’(word to word) 산 사람들이었다.”
사막 교부와 교모에게 배우는 스무 가지 인생 가르침출가와 떠남, 포기에 대한 가르침... 영적 훈련에 대한 가르침... 의식주에 대한 가르침... 기도생활에 대한 가르침... 노동생활에 대한 가르침... 시험과 유혹, 시련에 대한 가르침... 죄의식과 참회에 대한 가르침... 순종과 복종에 대한 가르침... 인내에 대한 가르침... 겸비와 겸손에 대한 가르침... 마음 챙김과 내적 평화에 대한 가르침... 침묵 수행에 대한 가르침... 언행에 대한 가르침... 성경과 교리에 대한 가르침... 자기반성과 판단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가르침...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 스승과 제자 됨에 대한 가르침... 종말과 죽음, 심판에 대한 가르침... 인생 목표에 대한 가르침
[이덕주 교수 인터뷰]1.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2018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은퇴한 뒤 ‘늦은 비’ 은총을 즐기고 있습니다. 천천히, 여유 있게, 조용히, 조금씩, 깨달아 가는 진리 말씀에 감동하면서 말입니다. 최근에는 히브리서 3장 13절 말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As long as, it is called ‘Today’)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제는 잘했든 못했든 되돌릴 수 없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내일은 그분 시간이지 내 시간이 아니기에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오늘 하루! 그거면 되지요.
2. 사막 교부와 교모의 인생 가르침을 엮은 《깨달음은 더디 온다》는 어찌 보면 교수님께서 지금껏 출간한 책과는 결이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는지요?
겉에서 보면 결이 다르지만 속내는 통합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한 이유는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내 정체성과 근본을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초대 교인들의 신앙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픈 열정이었지요.
미국에서 목회하는 딸아이가 “은퇴 후 읽으시라”며 사막 교부와 교모에 관한 책을 한 보따리 보내 주었습니다. 그걸 읽다가 나의 교회사 관심 영역이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초대교회 교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교부와 중세시대 종교 논쟁과 갈등이 일어나기 직전, 사막에서 피어난 ‘고요하고 깨끗한 영성의 샘’, 오아시스를 발견했지요. 거기서 오늘 한국 교회 현실에서 느끼는 갈증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게 되었고요. 초대교회의 처음 사랑은 한국이나 사막이나 통하더군요.
3. 사막 교부와 교모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 핵심 영성을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어떻게 하면 주님과 가까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살 수 있을까?” 그 고민과 탐구의 열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기 위한 열정입니다.
4.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았다고들 합니다. 이럴 때 사막 교부와 교모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한국 교회는 너무 많아서, 너무 편해서, 너무 복잡해서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고, 생각도 많고, 주장도 많고…. 그러다 보니 자신도 바쁘고 남도 바쁘게 만들어요. 사막은 그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작업이지요. 못된 생각은 물론이고 잘해 보겠다는 생각까지 내려놓을 때, 그렇게 가벼워진 우리를 끌어 올리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겠지요.
5. 이 책 《깨달음은 더디 온다》에는 좋은 가르침이 참 많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을 풀고 엮으면서 교수님께서 새롭게 결단하고 실천하게 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복잡한 것을 피하여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말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 같아요. 요즘 제 일과는 오전에 2-3시간 성경을 쓰고(손글씨로), 점심 후 2-3시간 산책하며 묵상하고, 남은 시간은 글을 쓰거나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좋아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멀리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이야 원래 없었지만…. 전에 멀리했던 일이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종의 재정비 상태에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요?
사막 교부 말씀을 오늘에 실천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나는 안 돼” 하고 포기하면 더욱 안 될 일입니다. 사탄이 좋아할 일이지요. 찬송 <신자 되기 원합니다>를 영어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영어 가사를 보면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Lord I want to be more holy”, “Lord, I want to be more loving”, “Lord, I want to be like Jesus”로 되어 있어요. 저는 순서를 거꾸로 봅니다. 예수님을 닮기로 작정을 하면(이게 중요하지요!)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되는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more) 하면 됩니다. 그러면 거룩해지고 구별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더’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겁니다. 그게 꿈이지요. 그저 지금 하는 데서 조금만 더 사랑하고 더 노력할 뿐입니다.
6. 사막 교부와 교모의 말씀 가운데 꼭 나누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시소에스 압바의 말씀이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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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와 강신덕 목사가 제안하는 은혜로운 사순절 묵상집”
“국내외 순례의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영적 안내서”
“초기 기독교 사막의 교부들과 함께 걷고 기도하는 광야 기도서”이 책은
1. 은혜로운 교회 절기,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 묵상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2. 교회의 새벽기도와 특별 기도회를 위한 텍스트북으로 활용해도 좋습니다.
3. 국내외 성지 순례를 떠나시는 분들에게 깊이 있는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를 갱신하며 새로운 비전과 사역을 위해 영적인 준비를 하던 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당신의 사람들을 광야로 부르시고 거기서 온전한 당신의 사람으로 세우신 뒤 다시 그들 각자의 광야 같은 이방의 땅, 선교의 현장으로 그들을 파송하셨다. 광야로 부름받고 광야에서 세움받아 각자의 땅끝, 또 다른 광야로 나아가는 여정은 하나님의 백성이 오랫동안 지켜온 성장과 성숙의 길이었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결국 광야의 책이다. 에녹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과 족장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어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광야로 부름받고 광야에서 세움받아 다시 광야로 나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광야로 나아갔고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한 길이 무엇인지 깨우쳤다. 그들은 그렇게 광야에서 또 다른 척박한 세상, 이방의 땅으로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과 제사장 나라로 세우심 그리고 당신의 백성으로 보내심을 체험하는 일이어야 한다.
성경을 광야의 키워드로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이 주는 지혜와 교훈, 명령을 수행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독교 역사는 그들을 ‘사막의 교부들’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그들의 삶으로부터 광야로 불러내시고, 광야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다. 사막 교부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토니우스와 그의 정신을 이은 에바그리우스, 파코미우스, 포이멘, 그리고 대 마카리우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부르심에 대한 순종과 금욕적인 기도의 실천 그리고 깨달은 그대로의 삶으로 당대 세계의 등불이 되었다.
토비아가 강신덕 목사와 함께 발간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사순절 묵상집, 이번에는 사막의 교부들과 함께 기도하는『광야의 길』이다. 강신덕 목사는 매년 자기만의 성경 묵상으로 사순절 묵상집을 채웠으나 이번에는 그가 평소 따르고 존경하는 ‘사막의 교부들’과 함께 기도하는 길을 열었다. 『광야의 길』은 사순절 40일 기간 동안 매일 묵상하는 가운데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제로 이루어진 ‘사막 교부들’의 담화와 일화를 함께 묵상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광야로 부르시고 거기서 세우시며 다시 이방의 땅 새로운 광야로 보내시는 일이 어떻게 성경의 시대를 넘어 기독교 시대로 이어졌는지를 살피고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한다.
기도에 대해 말씀 묵상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 실제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줄어드는 시절에 『광야의 길』은 우리를 새롭지 않으나 깊은 기도로 인도한다. 강신덕 목사의 깊은 말씀 묵상과 사막 교부들과의 동행의 결실이 담긴 『광야의 길』을 이번 사순절 순례길 동반자로 추천한다.
신학자들의 인도자, 성직자들의 안내자
로완 윌리엄스가 제시하는 사막 교부들의 낯설고도 새로운 세계 로완 윌리엄스가 소개한 사막 교부 이야기. 초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였던 사막 수도원 운동의 성격과 특징을 되짚는다.
통념적으로 사막 수도원 운동은 제도교회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절대자와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막으로 들어가 금욕 생활을 강조한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로완 윌리엄스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어 사막 수도 생활의 핵심은 ‘인간됨’, ‘그리스도인 됨’, ‘교회됨’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이웃 및 하느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그는 사막 수도 전통의 유산인 금언들과 일화들을 꼼꼼히 살피고 역사적인 맥락을 되짚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특징이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지, 공동체란 무엇인지, 교회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후반~21세기 초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성직자, 신학자, 영성가가 인간과 공동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 우리가 마주하길 원하지 않는 우리 본래의 모습을 친절하면서도 날카롭게 파고들어 이전에는 알지 못한 풍요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4~5세기에 활동한 위대한 수도사들이 남긴 글 중 어느 글을 읽더라도 분명하게 발견되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란 구체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 이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활동이기에 관조나 묵상 혹은 ‘영적인 삶’에 대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삶이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이자 그 결실이라고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 사막 수도사들의 유산을 숙고해 보는 이 시간, 저는 그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 살펴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님을 찾고, 좇으며,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서 공동체를 기도의 삶, 함께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게 할 원천을 발견하고 ...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中)
2001년 그리스도교 명상 국제 공동체는 시드니에서 존 메인 세미나를 열고 강연을 인도해 줄 것을 로완 윌리엄스에게 요청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사막 교부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후 그는 초교파 수도원인 보세 수도원에서 자신이 존 세미나에서 강연한 기록을 새롭게 다시 쓰고 내용을 증보해 책으로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이 『사막의 지혜』다.
그리스도교 교회사에서 사막 수도원 운동은 매우 독특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통념적으로 사막 수도원 운동은 훗날 베네딕도회로 대표되는 유럽 수도원 운동의 모태가 된 운동, 개인의 종교성, 즉 절대자와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제도교회 및 사회와 관계를 단절하고 낯선 환경으로 나아간 이들이 빚은 금욕주의 운동으로 여겨진다. 종교학자들은 이들과 불교의 수행을 비교 연구하기도 하며 불교의 선문답과 사막 금언들의 유사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완 윌리엄스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어 사막 수도 생활의 핵심은 ‘인간됨’, ‘그리스도인 됨’, ‘교회됨’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이웃 및 하느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맥락을 제거하면 이들의 이야기와 일화들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그는 사막 수도 전통의 유산인 금언들과 일화들을 꼼꼼히 살피고 역사적인 맥락을 되짚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특징이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지, 공동체란 무엇인지, 교회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후반~21세기 초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성직자, 신학자, 영성가가 텍스트를 새롭게 읽어내는 법, 인간과 공동체,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 우리가 마주하길 원하지 않는 우리 본래의 모습을 친절하면서도 날카롭게 파고들어 이전에는 알지 못한 풍요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