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00 → 33,300원
(10.0%↓)
 
|
|
|
시편은 내 평생 동안 좋은 벗이었고 또한 나의 평생 적수였다. 그는 내 영혼의 거울이었으며 또한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나의 감흥을 표현하고, 나의 한을 토해내며, 친구들과 함께 모이고, 영성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를 통하여 인륜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며,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었다"(논어 양화편 17:9 참조). 내가 시편을 알게 된 것 보다 내 인생에 더 큰 축복이 없었던 것 같다.
|
17,000 → 15,300원
(10.0%↓)
   850
|
|
|
설교자를 위한 서사적, 정경적 해석의 실제
“너는 어찌 여기 있느냐”는 질문은 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나는 이 거울 앞에서 무력함 때문에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기도 한다.
침묵으로 응답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깊은 의중을 깨닫지 못할 때마다 나는 이 질문 앞에 선다.
“너는 어찌 여기 있느냐?”는 엘리야가 시내 산 동굴에서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받은 말씀이다(왕상 19:13). 그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비추는 질문을 화두로 받았다. 엘리야는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 던지고 있다. 아합 왕은 북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이룬 듯 하였다. 그는 두로와의 정치, 경제 및 종교의 유착으로 거대자본을 끌어들이고 시리아를 무찌르며 모압을 속국으로 삼으며 국제 정치의 스타로 떠올랐다.
또한 전원 마을 이스르엘에 새 궁전을 짓고 신도시도 건설하였으며 여호수아 이후에 수백년 동안 폐허가 된 여리고도 재건하였다. 그러나 두로와의 무역과 함께 바알 신들도 함께 왔다. 하나님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물질과 쾌락에 함몰되었다. 부동산과 자본의 투기로 부의 균형은 급속하게 깨어지고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에는 자신을 변호하고 지킬 수 없는 과부와 그 외아들, 신학생들과 그 가족들, 농부들, 문둥이들, 포로들과 같은 수많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아합 왕조 치하에서 가장 깊은 고통을 받은 무리들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물질과 쾌락의 거품이 순식간에 터질 것을 미리 보았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아합의 왕조와 열정적으로 싸웠으며, 새로운 역사의 판을 짰다. 이리하여 엘리야의 열정과 엘리사의 사랑은 이스라엘의 토양에서 물질주의의 화신인 바알을 몰아내고 윤리적인 유신론적 신앙의 회복으로 문명사적인 전환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서사적 관점과 정경적 관점에서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설교하려는 분들에게 일차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사가 어떻게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며 통전적으로 펼쳐지는지 느끼면서, 오늘 영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찾는 분들에게도 조그만 도움이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만약 엘리사가 없었다면 엘리야의 사역은 일회성으로 끝났을 것이며, 엘리야와 엘리사가 없었다면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연속성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막 1:1-11; 9:9-13).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다 넓은 구약성경의 틀 속에서 보면, 그들은 모세의 반열을 잇는 중심 라인의 선지자였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장차 ‘모세를 닮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신 18:18).
이 약속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성취되고 있다. 열왕기자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 속에서 모세의 모습을 다양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헤르만 궁켈이 잘 말한 것과 같이 “엘리야와 모세 사이에는 놀라운 심포니가 있다.” 엘리야는 모세처럼 절망하며(왕상 19:4; 출 5:22; 민 11:11; 21:4-5), 사십주야에 걸쳐 광야를 걸어가며(왕상 19:8; 출24:18;34:28), 시내산에 있는 모세의 동굴에서 하나님의 신현을 경험하고 음성을 듣는다(왕상 19:11-14; 출 19:9, 18; 33:20-28). 또한 엘리야는 모세처럼 요단강을 가르고 그 안을 걸어가며(왕하 2:8,14),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부어주듯이(신 34:9), 엘리사에게 영감의 갑절을 유산으로 준다(왕하 2:10, 15). 엘리사는 스승의 영감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사 사이에도 놀라운 심포니가 만들어진다.” 엘리사는 모세가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고치듯이(출 15:23-26), 여리고의 죽음의 물을 생명의 물로 고친다(왕하 2:19-22).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주는 것처럼(출 16:31-36), 엘리사는 기근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만나 같은 양식을 제공해 준다(왕하 4:42-44).
열왕기의 본문을 살펴 보면, 엘리야와 엘리사 사이에도 거의 완벽한 사역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엘리야가 사르밧의 과부에게 삼년 기근 중에 ‘병의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 주었듯이(왕상 17:16), 엘리사는 한 선지자의 과부에게 ‘끊어지지 않는 기름의 기적’을 베풀어 모든 부채를 갚게 하였다(왕하 4:6).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중보 기도로 살려낸 것 같이(왕상 17:22),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중보 기도로 살려 낸다(왕하 4:34). 엘리야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細音)을 들은 것과 같이(왕상 19:12), 엘리사는 아람 왕의 궁궐과 침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군사 작전을 다 듣고 있었다(왕하 6:8, 10). 엘리야는 죽을 때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였으며(왕하 2:11), 엘리사는 ‘불말과 불수레’로 보호받았다(왕하 6:17). 엘리야는 원래 하사엘과 예후를 세우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지만(왕상 19:15-17), 이 일은 엘리사가 이후에 완성한다(왕하 8:7-15; 9:1-13). 둘 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다(왕하 2:12; 13:14). 이 외에도 두 선지자의 삶과 사역에는 무수한 유사성이 나타난다.
- 본문에서
|
40,000 → 36,000원
(10.0%↓)
 
|
|
|
<시편>을 주석한 책. 시편은 이스라엘 신앙의 천년 지혜를 실존적 관점에서 담고 있는
성경이다. 저자는 '구조분석'에 힘을 기울였으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수사분석에서 더
나아가 시편의 감상까지 다루고자 하였다. 번역 부분은 '표준새번역'을 수정한 것이며,
원문과 적절한 우리말 대응어를 반영하였다.
1권에서는 1편부터 41편까지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