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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READING FLAMEThe Rise and Progress of Christianity
from Its First Beginnings to
the Conversion of the English이 책의 저자 F.F.브루스 교수는 세계적 복음주의 신약학자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니 새삼스레 소개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복음은 본질상 국경을 초월하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것은 소박한 민족주의나 혹은 배타적 국수주의를 고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기 독특한 신앙의 특징과 장점과 전통을 찾아 마침내는 세계 교회,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한 교회에 공헌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브루스 교수가 신약 기독교의 시초부터 영국 복음화까지의 흐름을 더듬은 것도 결국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칠흑 같은 시대의 긴 어둠을 건너서도 새벽은 기어코 찾아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해 주는 교훈이요, 확신이다. 또한 암흑 속에 앉아 불평과 자기 연민을 즐기는 대신, 자기 주위의 회랑(回廊)이나마 밝힐 촛불을 켜 드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요, 새벽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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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신학자 F. F. 브루스의 첫 책!
“이 책은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신약성경 개론서다!”- 톰 라이트, 길성남, 정창욱, 최재덕 추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의 역사성과 신뢰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무엇이 신뢰할 만하다는 것인가?” 안목 있는 한 평론가가 이 작은 책의 초판 제목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것이다. 신약성경의 신뢰성에 대해 다루려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것에 대한 증언’으로서 그 신뢰성에 관심을 가져야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 신뢰성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가 역사적 계시를 주장하기에, 기독교의 기초를 형성한 문서들을 역사적 비평의 시각에서 살펴보는 작업은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신약성경 문서의 신뢰성과 역사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나는 고전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신약성경을 고전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하는 데 능숙했다. 그래서인지 신약성경의 신뢰성, 특히 복음서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나는 보통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고전학도들이 고대 문서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받아들이는 근거와 비교할 때 신약성경이 훨씬 더 신뢰할 만하다고 받아들이는 근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강의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접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접근으로는 신약성경이 신적 계시의 영감을 받아 완성된 기록이라는 기독교의 주장을 온전히 입증할 수 없다.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비신학도들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저작보다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저작이 주장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보다 수월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기록들을 순전히 역사적인 측면에서만 토의하도록 제한하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에 신학이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와 강력한 주장을 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수순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역사와 신학은 우리 구원의 복음 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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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0 → 3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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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NICNT 사도행전』은 이 주석 시리즈가 추구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전통의 틀 안에서, 누가가 기록한 사도들의 행적을 성경적으로 깊이 연구한다. 영어 본문이 아닌 헬라어 본문을 직접 철저하게 번역하고 주해한 저자의 노력을 통해 이 책은 1세기와 20세기 사이의 벽을 투명하게 만들었으며, 현대 독자로 하여금 사도행전을 통해 전해지는 누가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게 인도한다.
[시리즈 소개] NICNT 시리즈는 여러 나라의 신약 학자들의 뜻을 모아 1940년대 후반부터 저술된 주석 시리즈로서, 목사, 신학생, 학자에게 복음주의 개신교 전통의 틀 안에서 성경적인 학문성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정통 주석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주석 시리즈는 헬라어 본문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반영하지만, 주석의 서론과 해설에서는 헬라어 언급을 최소화하며, 성경 본문에 나타난 중요한 주제들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뛰어난 신약 학자였던 네드 스톤하우스(웨스트민스터 신학교), F. F. 브루스(맨체스터 대학교), 고든 피(리젠트 대학)를 거쳐 현재는 조엘 그린(풀러 신학교)의 책임 편집 아래 집필되어 온 NICNT 시리즈는, 동시대의 학문에 정통한 새로운 주석이 되기 위해 필요에 따라 개정되거나 신판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수사법, 시대적 상황, 신학적 중요성 및 적용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 시리즈는 독자로 하여금 성경 본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저자 서문] 이 주석의 초판에는 이 주석 시리즈의 편집장이었던 고(故) 네드 버나드 스톤하우스(Ned Bernard Stonehouse)의 머리말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서 스톤하우스는 독자들에게 한 주석가를 소개했는데, 성격상 관대한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1962년에 스톤하우스 박사의 뜻밖의 서거 소식 이후에, 그 주석가는 자신이 여전히 책임을 맡고 있는 책의 총괄 편집자가 되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개정판에서는 원래 편집자의 머리말과 저자의 서문을 하나의 서문으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스톤하우스 박사가 나에게 이 주석 시리즈의 사도행전 부분을 쓰라고 제안했을 때, 나는 이미 사도행전의 헬라어 본문에 대한 주석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그 책은 1951년에 출판되었다 (현재 그 주석은 이 책과 동시에 완전히 개정됐다). 나는 스톤하우스 박사의 제안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그 이유는 헬라어 본문에 대한 작업 준비를 하면서 떠오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많은 생각들을 그 주석의 범위에는 다 담을 수 없는데다, 내가 보기에 영어 본문을 해설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그 생각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이상, 누가의 역사 전체에 대한 연구와 특히 사도행전에 대한 연구에 주목할 만한 공헌이 있어 왔다. 1951년에 마틴 디벨리우스(Martin Debelius)의 『사도들의 행적에 대한 연구』(Studies in the Acts of the Apostles)라는 논문집이 독일어로 출간되었다(영어 번역판은 5년 후에 나왔다). 그 논문집 안에서 재발행된 많은 소논문들은 처음 출판되었을 때 접근하기가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독일어를 말하는 나라와 영어를 말하는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간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디벨리우스의 연구는 사도행전 해석에서 신기원을 이루어냈음이 곧 분명해졌다. 그 연구의 영향력은 그 논문집이 출판된 이후에 발행된 여러 작품에 명백하게 나타났다.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저자는 한스 콘첼만(Hans Conzelmann)이었다. 그의 논문(Die Mitte der Zeit, 1954년 출판)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제목인 『성 누가의 신학』(The Theology of St. Luke)이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콘첼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누가는 한때 임박한 것으로 기대되었던 파루시아(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어서,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던 원래의 시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시각에서는, 죽음과 부활로 꽃을 피운 예수의 사역이 더 이상 종말로 인식되지 않고, 앞선 율법과 선지자들의 시대(참고. 눅 16:16)와 이어지는 교회 시대 사이에 낀 역사의 중간 시대로 인식되었다. 콘첼만 교수는 또한 가장 최근의 사도행전 주석(지금은 영어로 읽을 수 있다)을 리츠만(Lietzmann)의 『신약 성서 안내서』(Handbuch zum Neuen Testament)에 기증했다.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asemann)은 몇몇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누가는 “초기 가톨릭주의”(Fruhkatholizismus)를 최초로 말한 사람으로서, 예수의 사역이 아닌 교회 시대가 시간의 중심이자 원형이며, 바울의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은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에 의해 잠식되었다는 관점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 대한 몇 가지 비판들은 새로운 『국제비평주석』(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배렛(C. K. Barrett)이 쓴 많은 논문에서 제기되었는데, 이 논문들은 사도행전 주석을 보도록 독자의 욕구를 자극한다.
마틴 디벨리우스에게서 영감을 얻는 학파 내부에서 이제껏 출판된 사도행전에 대한 주석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은 에른스트 핸헨(Ernst Haenchen)의 주석이다. 이 책은 1966년에 메이어(Meyer) 시리즈 가운데서 처음 출판되었고, 1971년 이후로 『사도들의 행적』(The Acts of the Apostles)이라는 훌륭한 영어 번역본이 나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디벨리우스, 콘첼만, 케제만과 핸헨 교수의 밀접한 관련성은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 핸헨은 그들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핸헨의 관심사는 누가의 작품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다(누가의 작품은 역사적인 내러티브를 누가 신학의 매개체로 만드는 창의적인 자유를 특징으로 한다). 이 신학은 바울의 참된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신학은 바울 신학과 나란히 성장했으며, 또한 그 이후에 성장한 이방 기독교 신학의 다른 형태 중 하나이며, 사실상 바울사상과 독립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자들만이 그 주제에 대한 최근의 문헌을 독점하지는 않았다. 판 운니크(W. C. van Unnik)가 말했던 것처럼, 누가-행전은 “최근 학계에서 폭풍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 이 말은 1966년 폴 슈베르트(Paul Schubert)에게 증정된 『누가-행전 연구』(Studies in Luke-Acts)라는 심포지엄에 있는 판 운니크의 서론적 에세이의 제목이다. 이 말의 적절성은 이 책 안에 있는 열여덟 개의 다른 에세이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시각으로써 증명된다. 슈베르트 심포지엄 밖에서는 이 다양성이 요하네스 뭉크(Johannes Munck)의 작품에 의해 더욱 예증될 수 있다. 뭉크는 『바울과 인류의 구원』(Paul and Salvation of Mankind, 영어 번역본 제목)이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뭉크는 주류를 이루는 경향에 맞서 용감한 전투를 치렀으며, 오직 페르디난드 크리스티안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와 그의 동료가 끼친 영향력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때에만 사도 시대의 역사와 문학이 공정하게 연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에, 또한(1950년부터 현재까지) 사도행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돔 자크 듀퐁(Dom Jacques Dupont)의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후속 연구를 통해 풍성해졌다. 초기 기독교의 다른 영역들과 더불어, 사도행전에 대한 보다 최근의 기록은 마르틴 헹엘(Martin Hengel)의 학식과 통찰력 의해 조명되어 왔다.
사도행전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접근은 1980년과 그 이후에 나타난 훌륭한 수많은 사도행전 주석들에서 입증된다. 여기에 기여한 학자들은 영어권의 하워드 마샬(Howard Marshall), 그리고 독일어권의 위르겐 롤로프(Jurgen Roloff), 고트프리트 쉴레(Gottfried Schille), 게르하르트 슈나이더(Gerhard Schneider), 아놀트 바이저(Arnold Weiser) 등이다. 이 분야에는 오늘날 당혹스러울 만큼 ‘지나친 풍요로움’이 존재하는데, 이는 본 주석의 초판이 윤곽을 잡고 있을 때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
NICNT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 원래의 모든 단행본 주석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01년의 미국표준판(ASV)은 본서의 초판 해설를 위한 기본 성경 번역본이었다. 이제 나는 ASV를 나의 개인적인 번역으로 대체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자신의 저서 『로마서 주석』(Romerbrief)의 재판 서문에서, 많은 성경 주석가들의 성향에 대해 설명하는데, 바르트가 보기에 주석가들이 “주석을 향한 첫걸음에 그칠 뿐이어서, 결코 주석이라고 할 수 없는” 단순한 본문 해석에만 자신들의 역량을 한정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진정한 주석의 본보기로서 로마서에 대한 칼빈(Calvin)의 주석을 인용했다. “칼빈은 얼마나 에너지가 넘쳤던가! 그는 본문에 있는 원래 내용을 최대한 숙지한 다음,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붙들고 씨름해서, 16세기와 1세기를 분리시키는 벽이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 연구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16세기의 어린아이가 듣는다.”
확실히 헬라어 본문에 대한 나의 책은 바르트의 기준으로 볼 때, 단지 사도행전의 언어, 본문, 역사적 측면에만 전념한 “주석을 향한 첫걸음”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걸음을 떼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두 번째 단계에 올라설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심지어 본 주석조차도 1세기와 20세기 사이의 벽을 투명하게 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특히, 나는 1950년대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야 내 자신이 누가의 독특한 신학을 별로 공정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시의 이 부족분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나는 내 독자들에게 하워드 마셜의 책인 『누가: 역사가와 신학자』(Luke: Historian and Theologian)를 잘 소화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1954년에 처음 표현했던 것처럼, 이 연구 과정에서 누가의 목소리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이든지 20세기 말에 살고 있는 내 독자들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주께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신다” 에베소서 4:8은 시편 68:18을 인용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마소라 텍스트나 칠십인역의 시편 68:18에는 “[그가]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받으신다”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실 에베소서의 시편 독법은 타르굼과 페쉬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본서는 미국의 구약학자 피터 엔즈가 자신의 『성육신적 영감설』(CLC 역간)에서 “훌륭한 사해사본 입문서”로 평가했던 책으로, F.F. 브루스가 1950년대에 화란의 신학부에서 1950년대에 강의 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본서는 특히 입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사해사본 텍스트 자체를 다루며 논의를 전개하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사해사본 본문을 직접적으로 맛 볼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더불어 사해사본의 중요한 사상들(페쉐르, 마스킬림과 의의 교사, 메시아 사상, 인자론과 야웨의 종, 다니엘서와의 관계 등)을 다루며, 구약성경 해석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결론적으로는 ‘신약의 구약 사용’ 문제를 사해사본 저자들의 구약 사용 방식과 연관지어 고찰함으로써, 예수께서 “모든 성경이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이 본서의 큰 의의이다.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 방식은 신약성경 안에, 적어도 예수의 가르침 안에, 만연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 방식을 통해> ’모든 성경에서 그에 관한 것들’(눅 24:27)을 해석하는 방식을 배우게 될 때에, “성경은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요 5:39)라는 예수의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