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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십계명의 귀환, 물질 · 성취 · 탐욕적 삶의 변혁을 촉구하다!
십계명에 담긴 반우상주의, 안식의 가치, 생명/타자 존중 사상은 오래된 ‘21세기적 가치’이자 한국 교회가 되살아 내야 할 삶의 윤리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실제적 무신론, 종교적 배타주의, 물질적 성공주의에 빠져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하지만 삶에서는 신앙의 열매가 윤리적․도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데다(실제적 무신론), 다른 가치와 다른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폐쇄적이며(종교적 배타주의), 성공과 번영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물질적 성공주의) 문제가 심각하다.
오늘 한국 기독교가 처한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자의 눈으로 계명 중의 계명 ‘십계명’에 담긴 가치와 사상을 다시 성찰하여 풀어줌으로써,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변화된 존재의 삶, 자유의 길로 나서기를 깊은 울림을 담아 촉구한다.
밑줄 긋기 (책 속에서)
“그러므로 교회는 산 위에 우뚝 선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입니다. 문제는 세상보다 더 세상이 되어 버린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성과, 개체교회를 벗어난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로서 세상의 고난과 기쁨을 함께 짊어진 참다운 윤리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십계명을 공부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까닭은 십계명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이 땅을 사는 동안, 걸어가야 할 길을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강의를 열며’에서 -
“우리가 윤리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산다고 해서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마땅히 윤리적으로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공부할 때 우리는 늘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새로운 백성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얽매고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유함을 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보여 줍니다.” - '십계명 서론’에서 -
“성경에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많으니 우리는 모든 것을 하지 말고 살아야 하고, 다만 해야 할 것은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할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칼뱅이 강조한 것처럼 사실 ‘하지 말라’고 하는 데는 ‘무엇을 하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살인말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살인을 하지 말고 오히려 생명을 귀중히 여기라 죽음보다는 삶을 택하라, 살아 있는 것들을 돌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간음하지 말고 올바르게 가정생활 하고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것은 단지 탐만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하라’는 더 적극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것만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그 외에 그와 관련된 것을 다 하라는 적극적 의미가 이 ‘하지 말라’는 계명에 들어 있습니다.”
- '십계명 서론’에서 -
출판사 리뷰 / 전문가 서평
전성민 / 웨스터민스트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 책은 십계명이 현대 사회, 특히 반기독교 정서, 종교적 갈등, 신앙과 목회의 방향 상실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개신교에 실제적인 도전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가운데 쓰였다.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세상보다 더 세상이 되어 버린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성과, 개체교회를 벗어난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로서 세상의 고난과 기쁨을 함께 짊어진 참다운 윤리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십계명을 공부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까닭은 십계명이야말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 땅을 살 때 걸어가야 할 길을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설명은 첫 인상만큼 단순하고 자명한 것이 아니다. 바울서신들조차 “1,900여 년 전에 죽은 사람들에게 배달된 우편물”(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IVP)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오래되고 낯선 문화 속에 주어진 십계명이 어떻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 땅을 살 때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십계명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이 땅”(즉, 지금 대한민국 혹은 21세기의 세계)이 아니라 광야와 가나안 땅을 배경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오래되고 다른 공간에 주어진 “율법”이 어떻게 지금 복음의 시대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물론 십계명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반드시 그대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지고한 명령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가 궁극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4계명에 이르면 더 이상 십계명을 ‘글자 그대로’ 고집할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안식일이 주일로 대치되었다는 해석을 통해야만 십계명의 영원한 타당성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십계명의 역사적 독특성과 문자적 적용의 어려움은 그 계명들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데 적지 않은 혼란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정경적이고 신학적인 해석을 통해 능숙하게 다루어 냈다. 더욱이 이 책의 탁월함은 저자의 해석이 본문의 의미를 원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면밀히 살핀 석의(釋義, exegesis)에 근거한다는 데 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 속에서, 저자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한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에 대한 부름을,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에서 정의의 문제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서 바른 권위의 문제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감사와 기쁨의 삶에 대한 부름을,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관계와 몸의 문제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노동의 문제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존재의 윤리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에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도전을 다루는 저자의 빼어난 논의를 통해, 독자들은 십계명에 씨앗처럼 담겨 있으며 성경 전체가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에 대한 깊고 넓은 깨달음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후기
“3천 년 전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어진 계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인가?”
“십계명 가운데 ‘남종’ ‘여종’ 등을 언급한 내용은 현대 문명 사회에는 전혀 타당성이 없지 않은가?”
“이 디지털 문명 시대에 케케묵은 구식 조문이 우리 일상과 무슨 상관 있겠는가?”
이런 의문이나 물음이 나올 법합니다. 온갖 다양한 가치와 세계관이 공존하며 심지어 ‘내게 좋은 게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진 이 시대에, “~하지 말라/~하라”고 절대적 명령조에 가까운 계명을 불러내다니요.
그런데 저자는 단순히 오래된 것이라 하여 케케묵은 무용지물로 치부할 수 없다며, 그 오래된 계명이 오늘날 우리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고 오염된 일상과 공동체를 바꾸어 갈 수 있는지, 주도면밀하고 사려 깊은 철학자의 눈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보여 줍니다. 그의 해석과 성찰은 성서 본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오늘 이 땅의 삶과 문화를 보듬어 안음으로써 그 풀이에 담긴 적실성과 통찰력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1계명은 배타적 협박이 아니라, 오직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할 때 비로소 자본(돈)과 권력과 성공/명예가 절대 가치화한 이 세상에서 소외되어 가는 인간의 가치가 올바로 나타나고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4계명도 고대 유대의 문화이자 관습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 계명은 안식, 곧 ‘쉼’의 가치가 인류 공동체 전체에 중요한 것이며, 쉼을 누리되 공동체 전체가 고루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기에 안식일 계명의 본질은 사회 정의, 사회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편집자에게는 이 책의 갈피마다 (일상적 사고의 전환을 넘어) 현재적 삶의 변혁을 촉구하는 울림이 수시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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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신앙 고백이 난무한 세상,
영혼을 울리는 사도신경의 베일이 벗겨진다.
사도신경 첫줄, 단어 하나 하나에 숨겨진 놀라운 복음의 정수!
2007 청어람 아카데미 최고 인기강좌!
사도신경 첫 줄(“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을 통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본서는 친절하고도 사려깊은 철학자의 해설을 담고 있다.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의 의의, 삼위일체 하나님, 무신론 문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고통의 문제, 페미니즘, 현대 우주론과 창조론 등을 심도있게 다룬 이 책은, 안팎으로 도전받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해주기에 충분하다.
>>특징
-저명한 철학자의 사도신경 첫줄 강의
-철학자가 사도신경으로 풀어낸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와 본질
-철학자의 혜안으로 사도신경에서 건져올린,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질문과 대답
>>독자 대상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 어떤 의미 있는가 물음을 갖는 분이면 누구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궁금한 추구자 및 불신자/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청년, 대학생/ 사도신경을 통해 본 현대 기독교 이슈에 관심이 있는 신학생, 목회자
>>본문 중에서
“사도신경을 통해 단순히 하나님이 누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고 성령이 누구고 하는 것들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나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편입되어 있음을,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는 자일 뿐 아니라 이 이야기를 전하고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가는 커다란 현실 속에 들어가 있음을 신앙 고백하면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제1강 크레도: “내가 믿습니다” 중에서
신앙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고, 성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고, 일상적 삶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능력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이시며, 전능자이며,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늘 이 네 가지가 함께 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맺음말 중에서
>>저자 인터뷰
[강교수의 철학이야기]에서 철학에 대한 성경적 접근으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서강대 강영안 교수가 이번엔 사도신경 첫줄 강의를 들려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도신경의 고백은 여전히 유효한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가 담긴 이 책을 반갑게 맞으며 저자를 잠깐 이메일로 만나 보았다.
1) 이 책을 쓰게 되신 배경이나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작년 8월말 제가 장로로 있는 두레교회에서 김포에 개척교회(주님의 보배교회)를 세웠습니다. 저도 함께 가서 돕기로 했지요. 장년 주일학교를 열기로 하고 저에게 신앙 고백에 관한 강의를 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이나 대소요리문답 또는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을 할까 생각하다가 사도신경을 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1500년경까지만 해도 서방교회만 통용되던 것이 그 뒤로는 동방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개신교회 거의 모든 교회가 보편적으로 이 고백을 수용하였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고, 다른 이유는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합니다만--사도신경은 12사도가 한 사람이 고백한 것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씩 다루면 12주면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 책을 집필하시면서 겪으신 어려움이나 깨달음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책을 집필할 때 어려움보다 책의 바탕이 된 강의를 시작할 때 당장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5시간을 강의했는데 겨우 한줄밖에 다루지 못한 것은 문제가 그만큼 복잡했기 때문이지요. 전능하다면 도대체 왜 이 세상에 악이 있는가?(악의 문제) 천지를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현대 우주론과 진화론은?(창조와 과학의 문제) 기독교가 환경 파괴의 원흉이라는 데 창조를 얘기할 수 있는가?(기독교 책임 문제)
지난 2-3세기 동안 무신론을 주장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무신론 문제),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뿐만 아니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는데?(하나님 호칭 문제). 이것들을 염두에 두고 강의를 했습니다. 이 강의를 바탕으로 지난 3, 4월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다섯 차례 강의를 하면서 최종 원고를 정리하였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는 그 때 했던 토론을 염두에 두고 몇 군데 덧붙여 썼을 뿐 아니라 읽고 생각해 볼 문제와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붙였습니다.
깨달음에 관해 물으셨지요? 둘만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는 사도신경 첫 고백은 동심원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발견입니다. (라틴어 원문을 차례대로 읽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아버지 되시고, 그 다음 전능자가 되시고, 다시 그 다음 창조주가 되신다는 것이지요. 나에게 가까운 분의 모습으로부터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시는 분으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양면적 모습입니다. 숨어 계시면서도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의 능력으로 늘 현존하시는 분이시고 아버지이면서도 너무나 어머니 같은 분이시고, 전능하시면서도 사랑 때문에 한없이 자신을 낮추시는 분이시고 피조물들에게 자유의 공간을 허용하실 만큼 자기를 비우시는 창조주라는 사실입니다.
3) 사도신경을 다룬 책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 책만의 차별성과 특징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지금까지 나온 책은 모두 신학자들이 쓴 책입니다. 저도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고 그분들의 영향을 입었습니다만 저는 철학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모두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철학과 신학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서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저의 관심은 철학과 신학을 넘어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늘 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현대의 물음을 염두에 두고 다루었다는 것도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쎄요, 이번 책이 사도신경 첫 줄만 다루었다는 것도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것일까요?
4) 특별히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끝으로 앞으로의 사역과 집필 계획을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러 계층과 연령, 배경을 가진 교인들에게 한 강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 어떤 의미 있는가 물음을 갖는 분이면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를 이어서 강의하는 것이지요. 최근에 몇 달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만 이제 거의 회복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몇 개월 쉬게 하신 분의 그 오묘함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현대 과학 문제, 무신론 문제, 악과 고통의 문제 등을 좀더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더 절실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결과가 늘 더디게 나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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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본 서양 근대 철학 칸트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철학자이자 일상 생활과 신앙, 신앙과 지성이 어떻게 서로를 지지하는가를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자는 서양 근대 철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근대 철학자들은 어떤 문제로 씨름했고, 왜 그런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는가? 그 씨름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추적하는 일은, 오늘날의 시대 정신이기도 한 근대성의 명암을 이해하고 우리시대에 복음과 신앙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금 인식하는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기독교와 관련해서 근대가 지닌 이중성입니다. 근대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고대 희랍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근대 과학의 출현, 자본주의의 형성,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 자유와 평등 이념과 같은 것들은 성경을 통한 기독교의 가르침 없이는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경향으로 흐른 시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데카르트와 칸트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도덕적 언어로 전환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하나님을 밀어내고 얼굴 없는 하나님, 얼굴 없는 신을 찾고자 했지요. 신과 자연을 동일시했던 것입니다. ..... 데카르트와 칸트가 자연과 자유에 대해 이원론적 입장을 취했다면 홉스와 스피노자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자연을 중심한 일원론적 입장을 취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에 비하면 파스칼은 하나님이 지으신 광대한 세계의 침묵, 그것의 무한함에 경탄합니다. 아니, 전율합니다. 이 우주에 비하면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하는 인식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이러한 생각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는 역설적 인식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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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와 기독교에 대한 빛나는 통찰과 혜안!1. 기독교 지성 강영안 교수와 복음주의 운동가 양희송 대표의 만남우리 시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와 복음주의 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가 만났다. 2008년 9월 경기도 양평 모새골에서 두 사람은 2박 3일간 우리 시대와 신앙 전반에 걸쳐 종횡무진하며 격의 없는 질문과 답을 쏟아 놓았다. 죽음, 고통, 일상 등 일상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에서 교회, 공동체 등 교회의 문제와 대안, 그리고 지성, 과학, 의심 등 믿음과 앎의 영역까지 다루었다. 양희송 대표는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강영안 교수는 질문을 심화시켜 더 넓고도 깊은 인식의 지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병선 대표(한병선의영상만들기)가 찍은 사진도 16컷 삽입되어 있다.
2. 일상, 한국 교회 그리고 지성의 문제 1장에서 5장까지는 죽음, 고통, 웃음 등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다룬다. 혁명을 꿈꾸던 시대가 저물고 일상적인 삶이 우리에게 고통이 되는 시대가 왔다. 일상을 마주할 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비일상을 계속 부추긴다는 문제의식이 두 저자의 대화에 깔려 있다. 소크라테스와 달리 예수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와, 2007년 중반부터 몸이 아팠던 강영안 교수가 활동을 접고 1~2년을 쉬면서 깨달았던 고통과 병에 대한 이야기, 지나치게 근엄한 우리 시대 기독교에 비해 예수는 늘 근엄한 분이 아니었다는 내용이 이어지면서 일상에 대한 담론이 더 깊어져야 한다는 주제로 마무리된다.
6장부터 10장에서는 한국 교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답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만인제사장을 주창하며 가톨릭에서 분리된 개신교에 왜 아직 성직과 세속적 직업이라는 이분법이 있는지, 공동체에 대한 강조가 왜 집단주의로 변질되는지, 개인의 회복과 공동체성의 강조는 어떻게 병행되는지 등등이 논의된다.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면서 대화는 심화되고 이어 해결의 실마리가 제시된다. 양희송 대표가 주장하는, ‘교계 패러다임’에서 ‘기독교 사회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엿볼 수 있다.
11장부터 14장에서는 신앙에서 지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믿음과의 관계는 무엇인지가 논의된다. 과학이 객관적 진리의 자리를 차지한 지금 기독교는 어떻게 과학과 관계 맺음을 해야 하는가, 이론적 무신론이 아니라 실제적 무신론 즉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믿는 대로 살지 않는 태도가 위험하다는 논의가 이어진다.
마지막 15장은 강영안 교수를 만든 책,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고신대 시절 만난 교수들과 책들, 레슬리 뉴비긴과 은사 손봉호 교수와의 인연 등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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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진리는 안전한가요?
기독교 신앙으로 과학의 문을 걸어 잠근다고 위태로운 상황이 멈출까요?
오래된 진리를 오늘의 진리로 재발견하는, “대화”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조영헌(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김근주(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추천진리가 사라지는 시대에영원한 진리도 없고, 모두가 동의하는 진리도 없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면 어제의 진리는 폐기되고, 새로운 진리가 떠오릅니다. 그러니 오늘의 진리는 언제라도 ‘오늘까지의 진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수천 년간 견고했던 기독교 신앙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학적 무신론의 거센 도전에 점점 그 자리를 위협받는 요즘입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응답하며문제는 실증적 데이터를 아무리 축적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우종학 교수는 자연과학이 답할 수 있는 질문과 그 너머를 향하는 질문을 신중하게 분리합니다. 그 경계를 상호 인정할 때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풍성하게 살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와 과학을 뒤섞어 출구를 만들려는 무리한 시도를 그칠 때, 오히려 창조의 본모습(眞境)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열립니다.
유행하는 진리에 휩쓸리지 않고 무신론과 유신론의 경합은 최근에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 뿌리는 깊습니다.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원리를 밝히려 했던 그리스 철학자부터 20세기 철학자와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실체를 탐구한 인류의 역사는 무척 장구합니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전통에 서 있는 초대 교부부터 종교개혁가와 현대 신학자까지 기독교 유신론이 나란히 자리합니다. 강영안 교수는 이들 가운데서 인간과 세계의 존재를 더 정확하게 기술해서 우리를 빛으로 이끄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추적합니다.
세계의 실체를 바로 보려면 질문이 많으면 믿음이 쇠약해진다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두 저자는 이 같은 의견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질문과 믿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합니다. 질문 없이는 믿음이 오지 않는 셈입니다. 질문 없는 믿음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질문하지 않고, 존재에 대한 탐구 없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는 없으니까요. 세계의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대화』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특징- 과학과 철학의 시각에서 기독교와 무신론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비교, 검토
- 진리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인류의 오랜 사상적 연원과 기독교의 유신론적 시각의 독특성 대조
- 과학을 기초로 한 현대 무신론의 등장과 이에 대응하는 기독교의 논리 제시
독자 대상- 과학을 기초로 한 새로운 무신론의 도전에 응대할 답을 찾으려는 그리스도인
- 기독교 신앙에 회의가 들거나 교회의 기존 주장(창조과학)에서 출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진리와 존재를 탐구하면서, 유신론을 가능한 대안으로 살펴보려는 비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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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믿음에 대한 사유와 고백들!
-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이찬수(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김종호(IVF 대표) 추천
“나는 정말, 제대로 믿고 있는가?”신앙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어야 제대로 믿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정말 제대로 믿고 있는가, 하는 자책도 여기에 당연히 곁들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나 설교 요청을 받았을 때 ‘믿음’을 주제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가르치거나 증언하기에 앞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어야 제대로 믿는지 제 자신이 먼저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쌓아 온 생각들을 ‘질문’, ‘응답’, ‘실천’ 세 단어를 중심으로 연결하여 강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믿음의 내용보다 믿음의 행위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믿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믿을 때 어떻게 믿어야 제대로 믿는 것인지, 이런 물음을 가지고 믿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참된 믿음의 길을 생각하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님으로 믿는 순간, 믿음 이전과 믿음 이후가 확연하게 구별됩니다. 이때 믿음은 순간적 의미를 갖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삶을 통해 지속됩니다. 삶을 통해 지속되는 이 믿음과, 그와 연관된 소망과 사랑으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갑니다. 그 여정 가운데, 아무쪼록 이 책이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징-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믿음’에 관한 사유과 고백들
- ‘믿음’의 행위를 ‘질문’, ‘응답’, ‘실천’ 세 요소로 조명하며 기독교 신앙의 기초와 실제를 풍성하게 다룬다.
- 저자가 청중에게 강의를 하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구성
독자 대상- 믿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
- 기독교 신앙 입문서를 찾는 이들
- 이 시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
- 복음 메시지를 선포하고 전하는 목회자, 신학생, 선교단체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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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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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_아우구스티누스
한국 철학계의 숲에서 큰 나무로 자리 잡은
한 그리스도인 철학자의 열 가지 주제 특강!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일컬어 ‘포스트모던 시대’이니 ‘세속 시대’이니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 저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가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질병의 증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확인해 보려는 생각도 없이,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숭상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참이고, 반대편의 주장은 무엇이나 거짓으로 보는 태도가 ‘포스트 트루스’ 속에 담겨 있습니다. 시대의 혼란을 이토록 잘 드러내는 단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럴수록 쉽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믿는 태도보다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고, 다시 묻고, 더듬어 찾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 가지 명구(名句)를 강의 형식으로 다루었습니다. 무엇을 변호하거나 주장하거나 설득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잘 알고 있지만 오해하고 있는 문장들을 가운데 두고 우리 삶을 조금 여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저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걸어오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응답을 여백에 써 나가며 읽는다면, 함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징]-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농축된 사상을 맛볼 수 있다.
- 출처나 의미가 잘못 알려진 10가지 명구(名句)를 화두 삼아 상식의 오해를 바로잡아 준다.
- 하나님, 인간, 세상에 대해 철학적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반성하며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코로나19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제안한다.
[해설]이 책 『철학자의 신학 수업』은 우리 시대 한국 철학계의 숲에서 큰 나무로 자리 잡은 한 그리스도인 철학자가 신앙과 신학의 여러 주제를 철학적으로 반성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데카르트, 칸트, 레비나스, 폴라니, 주자, 함석헌 등 동서양의 저명한 철학자들에 관한 탁월한 해석을 담은 글을 썼고,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 철학의 주요 분과 전반에 걸쳐 통찰력 있는 연구를 수행해 온 학자입니다. 또한 그는 단순히 이론적 연구를 넘어 철학 이론과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적용하는 실천적 연구도 함께 펼쳐 왔습니다. 특별히 삶과 죽음, 일상과 초월, 주체성과 타자성 등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인 인간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실천적 주제를 탐구함은 물론, 더 최근에는 본인이 의지하고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데 깊은 관심을 두고 여러 의미 있는 저서를 내놓고 있습니다(아마도 이것이 현재 저자의 최고 관심사일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 이 그리스도인 철학자는 본인의 다른 저술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한길사, 2012)에서 “철학은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묻고 답하고 읽고 대화하는 가운데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철학의 장소와 철학함의 의미에 대한 좋은 정의일 뿐 아니라 저자 자신의 철학적 실천의 중요한 면모를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 상당 부분을, 심지어 엄밀한 이론적인 글에서도 먹고, 자고, 일하고, 병들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랑받기도 하는 우리의 일상적 삶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을 수행할 때, 그는 우리보다 먼저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성찰한 바 있는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사유의 밑거름으로 삼습니다. 저는 이 책 『철학자의 신학 수업』에 이러한 저자의 사유 방식이 잘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 일반의 삶이 아닌 종교적 인간의 삶, 곧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 삶의 방식으로서의 신앙을 검토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에 철학의 자리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빌려 표현하자면, “신자의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신앙에 대해 묻고 답하고 읽고 대화하는” 것이 본서를 통해 감행한 신학 수업의 방향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1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들을, 2부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들을, 그리고 3부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올바르고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부와 2부의 주제가 이론적인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저자는 이를 철저히 신앙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룹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언급하면서 죄로 일그러진 인간의 비참함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만든다는 사실을 체스터턴과 파스칼을 경유하며 밝혀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찾는 일 자체가 삶의 역설에서 비롯한다는 말이지요. ‘신학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6강에서도 저자는 삶에 대한 관심을 계속 보여줍니다. 저자에 의하면, 신학은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하나님을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때 신학은 하나님만을 탐구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배제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이 그리스도인 철학자가 잘 지적한 것처럼, 참된 신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인간의 삶, 그리고 역사와 문화 전반을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저자가 에라스무스와 칼빈을 통해 발견한 기독교 철학에 대한 정의, 곧 “영원한 삶을 향하는 도정이며, 자기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 지혜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정의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렇게 본서에서 펼쳐지는 철학자의 신학 수업은 그저 하나님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삶을 역시나 선물로 받은 이성을 통해 그리고 그 이성을 잘 사용했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텍스트에서 비롯하는 지혜를 거쳐 진지하게 검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철학자로부터 신학을 배운다고 할 때,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습득한다기보다 ‘삶의 방식’(ars vitae)으로서의 신앙과 그 신앙을 구체적으로 반성하는 신학을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수업 방향에 집중하면서 제가 제시하는 본서의 두 가지 기능에 함께 주목한다면 독자들은 더 많은 통찰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교정적(敎正的) 기능입니다. 저자는 거의 모든 장마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지식을 거론하고 이 통념을 바로잡는 가운데 논의를 전개합니다. 이를테면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진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이 사실은 그의 말도 아니고, 또 항간의 주장대로 루터의 말로 보기에도 어렵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한 말로 알려진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말 역시 그가 한 말이 아니며, 교회개혁의 구호마다 빠지지 않는 ‘오직’(Sola)이라는 수식어를 정작 교회개혁자들은 구호처럼 사용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한 오류가 생겨난 근원을 따져가며 친절하게 밝혀 줍니다. 이런 안내를 잘 따라간다면 독자들은 교회나 사회를 통해 잘못 전승된 통념을 교정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교훈적(敎訓的) 기능입니다.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 것은 그야말로 교정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철학자의 더 중요한 역할은 우리의 실제 행동과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가르쳐 일깨우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깨우고, 전도서의 코헬렛이 신자들을 깨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 예로 저자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말을 테르툴리아누스가 한 적이 없음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했음을 밝혀냅니다. 말하자면 테르툴리아누스도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는 역설을 합리적으로 논증했으며, 이렇게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신앙의 이치를 깨우쳐 알아가는 일이 참된 신앙임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알려 주고자 합니다.
이런 교훈적 기능은 본서의 3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른바 사실이나 진실보다 나와 내가 속한 진영에 유리한 것을 진리로 믿게 만드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와 전염병으로 인해 온 인류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작금의 팬데믹 상황에 놓인 그리스도인들이 거짓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온유하고 겸손한 삶,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일깨우려 합니다. 특별히 이런 저자의 가르침은 근거 없이 선포되는 설교조의 강권이 아니라 성경과 교부, 그리고 교회개혁자들의 지혜에서 벼리어진 것이기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는 분들이라면 저자가 해당 원천에서 세심하게 길어 낸 가르침을 지혜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의 교훈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포스트 트루스와 팬데믹이라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일상을 더 풍요롭게 누릴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Memento mori, Carpe diem!
_김동규(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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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공부 여정과 철학함의 의미를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강의실 밖 질문을 통해 듣는다!!
* 네이버,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생물학자 최재천의 서재 추천도서
* <동아일보> 추천: ‘대학 새내기 철학 입문서’ 20선일상의 철학자 강영안 교수와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소크라테스부터 데카르트, 칸트를 거쳐 마이클 폴라니, 장-뤽 마리옹, 레비나스까지 고대와 근현대 철학사를 넘나들며 나눈 대담집.
스승과 제자, 다시 만나다1980년대 후반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강영안과 표정훈은 2007년,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다섯 번에 걸쳐 10시간 동안 대담을 나누고 《철학이란 무엇입니까》(효형출판사, 2008)를 펴냈다.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다가 절판된 이 책을 새롭게 내기 위해 2019년 12월 다시 모인 두 사람의 대담을 토대로 《철학한다는 것》이 탄생했다. 《철학한다는 것》은 10여 년간 변화된 두 사람의 삶의 자리 이야기와 더불어 더욱 깊어진 질문과 답을 통해 ‘모든 철학은 결국 삶의 철학’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철학한다는 것은?강영안은 고대, 중세, 근현대철학과 기독교 철학, 일상의 철학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며 대가만의 통합적 시각으로 강의실 밖 ‘철학개론’을 펼쳐 간다. 고대 그리스철학과 중세 기독교 철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철학으로 이어져 왔는지, 현대철학은 어떻게 분화되었고 철학과 신학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을 살핀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표정훈의 질문에 강영안은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철학”이며, 철학은 곧 “지혜 사랑”이자 “지혜의 친구”라며 일상 속 철학함의 의미를 드러낸다.
질문 속에 답이 있고 답 속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철학의 줄기가 어떤 종교적, 규범적 성격을 띠는지 들여다보며,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 현대 기독교를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장-뤽 마리옹, 겸손한 주체를 말한 레비나스 등 주목해야 할 동시대 철학자도 비중 있게 다룬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독자는 형이상학적 원리의 나열이 아닌 우리 삶의 윤리적 판단 근거로서 철학을 만나게 된다.
모든 철학은 결국 삶의 철학이다강영안은 이 책 전반에서 철학과 신학의 관계, 철학과 기독교, 철학신학 등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철학함의 의미를 표현한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을 세세히 설명하거나 옹호하지는 않다. 다만 강영안의 철학함에 밴 일상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드러났을 뿐이다. 강영안이 말하는 철학이란 먹고, 자고, 놀고, 공부하고, 쉬는 모든 일상에서 묻고 생각하고 답하는 과정이다. 곧 생의 철학이며 일상의 철학이다. 성경의 전도서를 좋아하는 강영안은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지금 주어진 삶을 즐기라)으로 일상을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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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회 전체를 개혁한,
아니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말씀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과 개혁자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살아있는 역사로 다시 불러내다!500년 전 1517년에 하나님께서는 루터와 그의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통해 중세교회의 거짓과 부패를 통렬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이 후 멜랑흐톤,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 등의 개혁자들을 통해 교회를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토대 위에 새롭게 세워가셨습니다. 이 같은 뜻 깊은 해를 맞이해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우리를 성찰하며, 다음 세대에게 그 정신을 잘 전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유럽 사회 전체와 모든 영역을 개혁한 전무후무한 말씀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종교개혁의 의의를 교회내의 활동으로 국한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말씀 위에 선 개혁신앙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이 시리즈가 종교개혁이 우리 시대에 살아있는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도서 소개 ▒▒종교개혁과 학문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었습니다. 그런 종교개혁을 학문과 연관시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소책자에서는 첫째, “종교개혁과 학문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둘째, “학문도 개혁의 대상인가?” 셋째,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와 같은 세 가지 물음에 답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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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다정한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핵심 키워드, ‘생각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통전적 고찰!지금 우리에게 그가 묻는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철학은 물음에서 시작하고, 신학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강영안 교수의 생각이다. 동서고금의 사상과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알지만, 구체적이고 소박한 일상의 ‘복음적 생각’으로 안내하는 우리 시대의 다정한 철학자이다.
전세계 어디든 현대인의 삶은 고단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지키고 버텨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다만 이 위기의 시간 속에서 자칫 ‘생각의 주체’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채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되는 참혹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질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권하고, 그 출발 지점에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라고 친절하게 묻고 있다. 저자가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고 싶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만나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생각하지 않기는커녕 생각이 너무 많아 도리어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형국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각들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서양철학과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히브리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들을 다루기에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체 3장에 걸쳐 생각의 방향과 방식을 풍성하게 안내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마주해야 할 세 가지 질문,
그 답에 그리스도인의 통전적 삶의 열쇠가 있다저자는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믿음과 생각은 서로 배척한다는 오해가 있는지, 그러면 생각이라는 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의 생각 방식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지적 탐구와 교양을 갖추면서도 성경과 충돌하는 듯한 간극 속에서 어떻게 생각을 수용하고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탐독하기를 권한다. 지혜가 담겨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기에 복음적이며 자아 중심에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이타적 넘침의 삶으로 다가가도록 돕는다. 선택과 자유의지, 책임과 사명, 그러면서도 기독교가 갖고 있는 믿음의 공동체성 즉 타자를 위한 삶을 독자에게 떠오르게 하고 질문의 답을 찾아가게 한다. 데카르트, 반 퍼슨,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엘륄, 칸트, 한나 아렌트, C.S 루이스 등의 사상이 성경에 기록된 방대한 말씀들과 교차되며 풍성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예수님의 생각과 삶의 근본 태도를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것인지 구체적인 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거주한다면 끊임없이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넘쳐흘러 타자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방식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에 왜 ‘생각한다는 것’이 자리하는지 알게 한다. 앎과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따르기 원하는 개인 혹은 공동체라면 차근차근 읽고 나누기에 좋다.
* 독자 대상- 철학, 신학,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
- 생각하기를 좋아하지만 생각의 방향이나 목적을 잃어버린 분
- 동서양의 고전과 사상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접목하기 원하는 분
- 앎과 믿음을 통해 신앙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기 원하는 목회자와 리더
- 자신의 지성과 인문학적 소양들을 복음적 기준으로 살펴보고 싶은 그리스도인
- 교회의 문턱 경계에서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싶은 교양인
- 질문이 많은 젊은 자녀 혹은 세대들과 복음적 생각과 토론을 공유하고 싶은 분
* 들어가면서그리스도인에게는 단순한 생존이나 성공이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부름 받은 자로, 보냄 받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 이 세상을 생각하면서 사는 목적은 이 정체성에 따라 반응하고, 책임지는(responsible)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희생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삶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품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