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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엘륄2011~2013년 출간(개정)도서 세트(전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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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종교적 권력들이 심리적 영향력을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얻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이 선전이다.
엘륄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전의 필요성을 확립하였으며 현대인의 일상 속의 실재와 심리적 호소력을 부인하는 사람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는 선전의 정당성을 변호하기는커녕 분명하게 비난한다. 자끄 엘륄이 공격하는 금기는 현대인의 성숙과 책임이다. 이 신화에 맞서서 그는 모든 시대의 인간은 유연하다는 것과 오히려 시민 편에서 기술적 민주주의의 조건을 지탱하고자 무의식적으로 선전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끄 엘륄이 보기에 이 현상을 의식하는 것은 선전을 제압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우리가 기술하는 폐쇄된 세상 속에서조차도, 항상 출구가 열려 있고, 그가 그리는 너무도 침울한 풍경에서도, 한 가닥의 빛이 남아 있다. “인간에게 자유와 진리의 부분이 아직 잃어버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효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만약, 교회가 허구에 굴복하여 선전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반드시 자문해야 한다. 교회의 선전이라는 막다른 선택은 현재 교회가 당면한 가장 잔인한 것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선전으로 주물럭거려진 인간들은 점차 정신적인 현실의 침투를 외면하게 되고, 기독교적 삶의 자율성에 접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종교는 허구의 수단을 통해서 차츰 선전에 흡수되고 그 범주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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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합법적인 폭력은 '사랑의 폭력' 뿐이다.
이 폭력은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내면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며,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전투이다. 따라서 사랑의 폭력은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어떤 폭력에도 호소하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폭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도 없고, 폭력으로는 진정한 억압도 할 수 없다. 폭력에는 종속화만 있을 뿐이다.

엘륄은 기독교인들이 정당화하는 모든 폭력을 부정한다.
정당한 전쟁은 없다.
폭력은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사회의 토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된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엘륄이 이 책에서 반대하는 것은 단지 폭력 뿐만은 아니다. 엘륄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비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화된 생각일 뿐이다. 물론 제목이 말하는 대로 엘륄은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절대적인 비폭력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엘륄은 또한 “영적인 폭력”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폭력”으로서 적극적으로 이 땅에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폭력은 강요하지도 않고 강요당하지도 않지만 사랑은 감히 강요하고 강요당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에게 폐만 끼치지 않고 살면 그만”인 이웃 어느 나라의 윤리와는 다른 것으로 남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의 폐를 끼치겠다는 것이다. 남의 삶에 간섭하겠다는 것이자 이웃과 세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감히 기독교적 윤리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물리적 폭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사랑의 폭력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자 서문 중에서
계시와 실천 사이의 뒤집힘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모순이 시작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에서 오히려 세상이 기독교를 뒤집었다.
기독교는 하나님 외에 어떤 신성함도 파괴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규범과 의식과 금기사항을 만들고 기독교라는 이름아래 우상화에 앞장서고 있다.
예수가 계시한 기독교는 반인간적이어서 용납하기 힘든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와 무관한 호의적인 기독교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다루려는 문제는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며, 내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이고, 또 역사적 기이함이라는 심각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즉, 어떻게 기독교 사회와 교회의 발달이, 우리가 성서를 통해 읽은 것, 곧 토라와 선지자와 예수와 바울의 분명한 텍스트와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사회, 문화, 문명을 탄생시켰느냐는 문제다. 나는‘모든 면에서’라고 분명히 말한다. 즉, 모순이 발생한 것은 한 가지 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편으로 기독교가 본래의 텍스트와 영감의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은 과오와 범죄와 거짓을 총망라했다고 비난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 세계와 교회가 지니고 있던 실천을 본떠서 계시를 점진적으로 만들었고 재해석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말해진 진리를 따르기를 절대 거부하면서, 기독교의 실천, 곧 구체적인 실재만을 고려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계시와 실천 사이에는 단지 어긋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순, 곧 진정한 뒤집힘이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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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다른 인간을 위한, 신화가 해체된 혁명!
사회학적 분석과 자끄 엘륄의 신앙 사이의 연결이 이 책에서
변증법적 매듭과 절정에 이르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고, 산업화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산업화, 경제화, 도시화로부터 가속화된 근대화를 향하는 세계 어디에서나 어떤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더더욱 양산하고 있고 양산해 낼 것이다.
우리의 기술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적 조건의 분야들이 남아 있다. 기술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비참함을 제외하고는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특징과 소외를 보인다. 기술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뿌리를 잃고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기술에 의해 마비되고 전체적으로 그러한 자신에 만족하는 인간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된 미시 정보과학의 등장과 비국가적 사회주의 운동은 기술사회와 제3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권력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현대 기술의 잠재적 힘과 그 힘을 인간 해방의 유일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유일한 혁명의 길이다.” 자끄 엘륄은 다섯 가지로 이 혁명 프로그램을 요약한다. 실제적 필요를 만족하기 위할 목적으로 제3세계에 전혀 무심했던 원조에 의해서 서구의 생산력을 전체적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 비권력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이는 군사적 수단과 중앙집권적 국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영역에서 분산과 다양화, 노동시간의 급격한 감소, 부의 연간 생산을 노동자 비노동자 사이에 재분배함으로써 임금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지금 사실과 제약의 영역을 넘어서 개인적 확인, 증언 그리고 제안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믿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만이 궁극적으로 시금석과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우상으로 삼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모든 것을 비신성화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힘의 수단을 쓰지 않으려는 선택인 비능력Non-Puissance은 급진적 영적 회심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자끄 엘륄이 참된 혁명의 대가라고 분명히 말하고, 그 혁명의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음을 인정하는 이유이다.

엘륄의 기독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평을 읽는 것은 마치 외과 수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왜 그의 수술에 탄복하는가?
자끄 엘륄에게 기독교는 기원과 계시의 개념 자체 때문에 반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에 대해 지나친 증거들을 제공함으로써 기독교를 순식간에 이데올로기로 변형시켰다. 교리, 신앙, 자유의 엄격한 실천이 그룹 전체를 위한 타협과 가담의 담화로 가치 절하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행위나 자신의 행위를 위한 논쟁과 정당성을 찾으려 성경을 읽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기독교적 이데올로기 안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일까? 이런 측면에서 검토한 마르크스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우리 시대의 기독교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란 말인가?
마르크스주의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양립할 수 없을까?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의 지지를 신학적으로 합법화하는 사고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이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아주 신나게 선포하며 복음서의 새로운 독서를 설립한다. 신학 자체까지 모든 것이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마르크스주의가 발견토록 하는 계급투쟁에 따라 재고되려 한다. 이런 역설적 흐름은 마르크스주의가 지나가는 시점에, 마르크스주의 한복판에서, 정체성과 신뢰성의 위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서도 확인된다.
시간이 흐를 수록 복음은 문화와 타협하면서 조각난다.
여기에 엘륄의 통찰력이 말하는 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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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륄은 핑크빛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엘륄은 우리에게 각자의 운명을 책임지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물질적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처럼, 정치적 착각에 근거한 조악한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설마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겠는가. 설마 킬링필드와 같은 야만적 행위를 저지르겠는가.
설마 자기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쿠데타를 일으키겠는가.
설마 아우슈비츠나 집단 수용소 같은 비인도적 처사를 하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정의나 자유,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설마를 믿고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이상주의적 지도자들이나 시민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기 위안을 위한 정치적 착각이라는 길을 통해 전제적인 국가는 시민을 효율성의 노예로 바꿔버렸다. 따라서 이 책이 내리는 경고를 겸허히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엘륄은 자유를 잃은 조작 대상으로서 인간이기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은 목적으로서 인간이 되기를 권유한다. 국가나 정치가 개인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줄 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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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무정부주의적 책이다"
"무정부"는 '지배와 정치 권력의 부재'나 '국가의 정죄' 개념이므로 '무질서와 혼란, 폭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회를 떠나라고 종용 받지 않았으나, 모든 정치적 개입을 거부하라고 권고 받는다.
권력은 부패하기 때문이며 독재 없이 정치권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성서는 국가의 권세에 대항해서 저항과 싸움을 유발하는 반정치적 메시지를 말한다. 이것은 국가의 사탄적 성격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는 기독교인이 국가에 대항하여 영적 전투를 하도록 촉구하는 무정부주의적 책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치적 행위에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하나님의 행동이 인간의 말로 표현될 때에 그것을 듣는 사람의 공격을 언제든 받을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를 보게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섬세함과 부드러움과 훈육과 선택과 연속적인 적응력을 모두 포함한 하나님의 행동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예비하고 개개인이 어떤 대안을 선택하든지, 인간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준다. 그렇게 인간의 정치에 대해 하나님이 행동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소명과 부름과 요청, 그리고 심판과 단절과 진노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행함은 은총과 조심스럽게 다가옴과 해방으로, EH한 준엄함과 그 뜻을 정확하게 이루는 결연함으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어떤 사건과 역사와 한 인생을 뒤집어 버리는 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매번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의 존재와 연관되어 일어난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다. 기적은 인간의 행위와 짝을 이루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인간은 기도함으로 함께하고, 기적이 끝날 때 인간은 증언하고 해석함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새롭게 하고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겸손함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는 그 증언이 열왕기하의 정치적 상황 전개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_서문 중에서

자유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줄 유일한 것이지만, 인간에게 속한 것은 아니어서 인간에게서 나오는 열매가 아니며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 안에 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를 반영한다. 인간의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진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기도와 증언 같은 아이 같은 행위들 속에서만 표출된다. 자유 또한 열왕기하에 나오는 정치와 종교의 비극적 행위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_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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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사회에 대항한 혁명은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의 감소, 개인 행복의 퇴보, 공동 생산 체계의 축소 및 대중문화의 점진적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혁명의 해부, 제5장“진정으로 필요한 혁명”에서>

엘륄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혁명을 하려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우리의 욕심과 욕망 가운데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 더 큰 자아실현, 극대화된 쾌락….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욕심과 욕망은 인류의 공동의 가치, 공동체적 삶을 파괴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사는 환경, 지구를 황폐화하고 있다. 우리는 극도로 첨단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늘도 내 욕심과 욕망을 위해 이웃을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를 신음하도록 한다. 우리는 엘륄이 이야기한 대가(사회적 효율성의 감소, 개인 행복의 퇴보, 생산 체계의 축소, 대중문화의 포기)를 치르기 전까지, 이 고통이 더욱 심화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끄 엘륄의 혁명을 주제로 한 삼부작(『혁명의 해부』대장간 역간, 『혁명에서 반란으로』, 『인간을 위한 혁명』 대장간 역간) 중 첫 번째 책이다.
자끄 엘륄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 때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찌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엘륄이 이 책을 저술하던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68년 5월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젊은 프랑스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혁명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시대와 사상을 거치면서 그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보아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엘륄은 무엇보다도 역사를 통해 혁명의 정의를 내리려 하였고, 우리 시대의 거짓된 혁명을 벗겨 내려 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교회에도 혁명이 있어야 한다고, 아니면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첨단의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성장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문제이다. 교회 내의 성도들은 어떠한가? 각 개인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의 개인으로서의 가치와 소중함을 상실한 채, 교회의 성장과 생산성의 극대화,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위해서 소비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성도들은 똑같은 예배와 프로그램의 반복 가운데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으며, 대중의 익명성 가운데 개인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기술사회에 대한 선전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기술사회의 병폐를 여과 없이 수용한 한국 교회에, 그리고 예언자적 역할을 상실한 한국 교회에, 엘륄 읽기는 분명히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한 부분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내 생애 가장 깊숙하고, 가장 확실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해방되고 가장 신나며 가장 진솔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학서적을 뛰어넘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개인적 경험을 진술하고 분석하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실체와 힘을 펼쳐 보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가장 불확실하고, 가장 사실 같지 않지만, 역시 인간의 가슴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이 믿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를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회심으로 기독교인이 된 엘륄의 신학적 진술과 고백! "믿음은 자신이 종교심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의심하며 자신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엘륄은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이후에 반기독교 저자(셀수스, 홀바흐, 마르크스 등)들에 심취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를 물으면서 정반대의 사상들을 찾았다. 그러나 엘륄의 신앙은 그 저항들에게도 불구하고 굳건히 서갔다. 엘륄의 많은 절친한 친구들은 기독교와 기독교인에게 온갖 비난을 했지만, 그는 묵묵히 그들의 비난을 수긍했다. 디디에 노르동이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한다. "당신은 기독교 신앙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태도에 별로 충격받지 않습니다."
도시의 악한 영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왜 예수는 도시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는가?
'도시신학'은 가능한가?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할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예수는 도시의 성벽을 세우는 행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돈과 군대와 과학, 자본과 문명의 발전을 거부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만 적법한 안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방황을 받아들일 때, 이것이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세기에 걸친 도피를 멈추게 할 왕국, 진리 안에서 꽃피우게 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 만일 인간이 가인의 길을 계속 간다면, 만일 인간이 자신의 휴식처와 안전을 위해 도시를 계속 건설한다면, 예수의 행위는 헛된 것이 될 것이다. … 도시에 대한 예수의 심판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도시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러한 정착이 용서할 수 없는 반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에게 이것은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미친 짓이다.

예수는 도시를 떠났고, 우리 역시 도시를 떠나야 한다. 도시의 악한 영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 가운데 있을 때에만 견딜 수 있다. 율법의 예언을 완성하고자 도시 안의 모든 세력이 연대한다. 희생 염소는 장막 바깥, 광야로 데려가야 한다. 죄 때문에 희생되는 동물의 몸은 장막 바깥으로 보내지거나 도시 바깥에서 태워져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도시는 정확하게 율법과 같은 계획 속에 있다. 율법에 순종한 예수는 도시에서 버림 받았다. 도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었고, 예수의 죽음은 외부에서 오는 하나님의 도시 정복을 영원히 보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모든 세력과 도시의 천사가 동시에 예수를 못 박고 옷 벗기려고 십자가 앞에서 모인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전히 비밀이며, 그 이유는 이와는 반대로 예수의 죽음이 겉으로는 예수를 대항하여 연합한 세력들의 승리를 보증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도시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침묵해서는 안된다. 도시의 과밀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도시와 주거 정책이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과 공동체적 관점에서 수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모든 시민들이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건설한 바벨에서 하나님 없는 안정과 평안을 추구하고 도시의 죄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도 안된다. <역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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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엘륄은 강력하게 묻는다.
기술은 자신의 제국을 끊임없이 키우는데 도대체 언제까지냐고?
이러한 확장은 속도가 느려지거나 혹은 교착될 것인가?
이러한 예견된 정체는 무엇을 위해 사용될 것인가?
타락한 사회에 질서를 다시 부여하기 위해서인가, 효율적 조직체를 허용하기 위해서 인가, 이루어진 엄청난 진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인가, 인간에게 거기에 정착하고 적응하도록 허용하기 위해서인가?

엘륄은 신앙의 사람이다.
엘륄은 중앙집권주의를 거부하였고 당대 최고의 지성 샤르트르에 반대하였으며 공산당이 프랑스 전체를 지배할 때 반공산주의자임을 선언한다. 종교적 믿음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사상으로 유럽이 소용돌이칠 때도 자신이 개신교도임을 숨기지 않았다. 엘륄이 기술의 진보를 비판하고 "진보"를 적대시하는 끔찍한 자로 여겨진 것도 인간의 자유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기술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엘륄의 논지는 하이데거와는 달리 너무 명확하고 근본적이어서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개신교 내에서 엘륄은 여전히 주변적이고 분류할 수 없으며 통제할 수 없는 인물로 간주되었다. <본문중에서>

엘륄에게 기술은 정치나 경제보다 더 사회의 결정 요인이다.
기술은 자체의 논리를 따르면서 스스로 성장한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천연자원을 고갈시키며, 문명을 획일화한다. 기술은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미래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기술은 사회 안에서 기술체계를 형성한다. 정보처리기술은 전신, 항공,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 등과 같은 모든 하위체계를 통합하면서, 기술로 하여금 ‘조직된 전체’가 될 수 있게 하는데, ‘조직된 전체’는 사회 안에서 존속하고 사회의 형태를 만들며 사회를 이용하고 사회를 변모시킨다. 그러나 스스로 생성되는 맹목적인 이 체계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자체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한다. 더구나 기술을 통제한다고 자부하는 인간도 사실상 기술을 더는 통제하지 못하고, 기술체계 속에 편입되어 기술체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역자 서문 중에서>
그린국가는 법에 따라서 창설된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왕들이 법 위에 앉으려 할 때 그들을 고발한다.

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대로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상호관계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을 통해서 인간은 창조의 선한 질서를 창조주의 의지에 부합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자끄 엘륄이라는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인간의 모든 법적 행위는 세상의 최고 원리이며 조정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끄 엘륄은 1912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신학자, 환경운동가, 프랑스 개신교 전국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53권의 저서와 100여편의 기고물을 남기고 1994년 82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기술, 선전, 정치, 혁명, 대도시, 돈 등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기독교에 대한 고찰 및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 윤리로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책무를 강조한다.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 곧 은혜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정의의 표현으로서 법은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유기적인 연합을 이룬 법의 적용, 즉 재판은 무엇보다 ‘긍휼’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정당한 법은 그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드러내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법에는 약자를 위한 보호가 있고, 가난한 자를 위한 구원이 있다.” 성서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듯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구원’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_시82:2-4
“그는 백성들 가운데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리라. 그는 가난한 자의 자녀들을 구원할 것이며 압제자들을 진멸할 것이라.” _시22:3
<역자서문 중에서>
왜 엘륄이 때론 마르크스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때론 가차없이 신랄하게 비판했는지 이 책이 답한다.


30년간 개설된 이 강의에 앞서 엘륄이 한 말은 지금 이땅에서도 유효하다.
“나는 마르크스 사상이 19세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20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지적 도전이다. 우리는 마르크스 사상에 관해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마르크스 사상을 무시한다면, 그에 대해 우리는 그 무엇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심술궂은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마르크스에 대한 동조나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는 이유를 인식하게 되는 방향으로 이 강좌를 진행하고자 한다. 만일 여러분이 마르크스 사상에 동조한다면, 여러분은 왜 거기에 동조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교조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수용할 수 없는 교조주의가 존재하고, 항상 마르크스를 하나의 물신처럼 다루기를 거부하는 틀에서 본다면, 나 자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사상은 지속적으로 내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준다.
정치, 경제, 사회 현상들에 접근하는 마르크스의 방법론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을 주는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방법론보다 더 과학적인 방법론은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우리를 초대하는 매 순간, 자아비판이 실행되는 조건에서 그렇다.”

18세부터 마르크스 저작을 읽은 엘륄은 마르크스에 대한 매우 심오한 인식을 보여주며,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엘륄의 설명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자끄 엘륄은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신앙 사이에 모순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배타적이고 치명적인 전투에 참여가 아닌 변증법적 갈등 관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칼 마르크스에 호소하는 현대인을 향하여 기독교신앙을 증거해야 할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는 엘륄이 이 세계를 이해하고거기에 사는 인간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에게 성서는 인간적 그리고 사회적 실재를 읽을 수 있는 좌표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답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넘쳐나는 예술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매우 드물고도 값진 예술에 대한 설득력 는 비판서이다. 엘륄은 오늘날의 예술은 이전의 예술과도 선사시대 이후로 인간이 예술이라고 불렀던 것과도 어떠한 공통된 척도도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부연하면, 오늘날의 예술은 기술적 질서에 묻혀 있고, 또한 그 질서 속에서 특성을 얻게 된다. 따라서 예술이 더는 미도, 조화도, 기쁨도, 고귀함도, 심지어 어떠한 의미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술이 늘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실재를 전환하는 것이라면 현대 예술은 상황을 지배할 능력이 없고, 반대로 우리를 공포와 광기에 빠지게 한다. ‥·기술은 이데올로기적 예술을 낳는다. 이데올로기는 비단 기술적 실재에 대한 반영, 폭로 그리고 정당화일 뿐 아니라, 기술적 환경의 참을 수 없음을 해결하는 것이다.

예술의 문화적 근대화의 기능이 기술적 세계로 인간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서, 근대의 예술가들은 “기술 체계 속의 군수 담당 하사관” 이다.
자끄 엘륄은 자신에게 현대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그것은 조화도 의미 없이 “계속해서 폭음을 내는 모터”와 같다. ··· 팝 음악은 무엇보다도 기술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급진적이라고 자부하는 저항은, 사실상, 기술 체계에 완전히 순응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체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예술은 기술 체계 속에 인간을 통합하는 주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술은 사실 현재의 상태를 정당화하고, 기술의 승리, 인간에게 자신의 상황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고 몇 가지 보상들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반란의 환상, 주도권의 환상, 자유의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전 세계적 규모의 사고 이상이 아니라는 확신을 부어 넣는다. 바로 이것이 현대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고 창조적이지도, 해방적이지도 않고 자유의 수단도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엘륄은 예술의 비약을 통한 개현을 소망한다. 예술은 “인간이 진보에 종속됨과 소비적 행복에 맞서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을” 책임이 있다.
자끄 엘륄
Jacques Ellul (1912~1994)
1912년 보르도 태생.
1937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지명되었으나 비시(Vichy) 정부에 의해 해임되었다. 1936~1939년 사이에 프랑스 정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고, 1940~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열렬히 가담했으며, 1953년부터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총회 임원으로 일해왔다. 법학박사인 그는 수많은 책을 저술하여 사회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다. 보르도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신앙과 삶』(Foi et Vie)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였다. 사후인  2002년에 얏 바셈(Yad Vashem)재단에 의해 나치 치하의 유대인 가족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것이 밝혀져 “열방가운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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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자끄 엘륄2011~2013년 출간(개정)도서 세트(전15권)
저자자끄 엘륄
출판사도서출판 대장간
크기SET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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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3-12-12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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