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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기독교 분별시리즈 세트 (전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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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비주의에 물든 기독교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에 신비가 있는 것은 맞지만, 기독교가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본서는 오늘날 실용과 다양성 등의 미끼를 던지며 기독교 안에 들어와 진리의 기둥과 터를 오염시키고 무너뜨리는 신비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뿌리와 정체가 무엇인지, 그 파괴적인 영향과 결과는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영적 훈련”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교회 안에 고대의 신비적인 수행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관상적인 영성이라고도 알려진 이 신념은 신비주의와 신비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새로운 영성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교사와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침묵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침묵이 성경 진리를 왜곡하고 기만하는 관문일까요?
미로찾기, 호흡 기도, 중심 기도, 침묵, 요가, 사막 교부들, 영적 훈련, 관상 기도, 그리고 고대의 지혜 수행에 대해 한 번이라도 의문을 품어봤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영성이 어떤 전술로 교회 안에 침투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놀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 이머징 교회, 영적 훈련, 영적 디렉터, 포스트모더니즘, 젊은이 사역,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들에서 그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서의 목적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 특히 가득한 동양적 신비주의가 기독교를 진리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시대 모든 신자들이 체험으로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체험을 판단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께서 이 책을 통해 토머스 머튼, 헨리 나우웬, 리처드 포스터 등을 거쳐 최근의 이머징 교회까지 신비주의가 기독교에 깊이 침투해온 과정을 살펴보시고 우리 시대 기독교를 바르게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책 소개]


이 책은 존 윔버, 베니 힌, 존 아놋, 밥 존스, 마이크 빅클, 릭 조이너 등 거짓 부흥 운동 지도자들의 비성경적인 주장과 행동을 통해, 성령 운동의 3의 물결이라 불리는 빈야드 운동과 최근 신사도 운동 등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기독교 왜곡 현상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진리의 깃발 아래 몸을 숨긴 채, 우리를 신비한 경험으로 유혹하고, 영적으로 기만하며, 거짓 경험을 부추기는 많은 자가당착적인 행위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21세기에 맞춘 개정증보판으로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빈야드와 신사도의 부흥 운동이 수많은 교회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나아가 현대 기독교의 핵심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근본적 변화를 막고자 명쾌한 성경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행크 해너그라프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자신의 재능, 지식, 풍부한 자료 조사, 경험 등을 총동원하여 오늘날 일어나는 가짜 부흥 운동을 평가한다. 해너그라프 문체의 특징은 읽기 쉽고, 암기하기 쉬우며, 방대한 증빙 자료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사탄은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의 우두머리다. 사탄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계몽’이라는 천사의 탈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사탄을 만날 때, 마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이런 사탄의 속임수가 바로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이다.


[머리말-추천의 글]
 
나는 한 번도 영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에 관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영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졌다. 내가 진리에서 그렇게 멀리 벗어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늘 빈야드 교회 연합회(AVC) 지도부에서 일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다른 지도자들과 무척 가깝게 교제 했다. 우리는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하고 교회를 개척하기도 하고 사역에 대한 비전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 모임의 리더는 대단히 존경받던 인물이었으므로, 우리 모임은 곧 새로운 교파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우리는 그 교파의 지도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확신했다.

  미국 중서부에서 리더 회의가 일주일 동안 열렸는데, 몇 사람이 사적인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모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예언자들’을 만나는 자리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영적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던 터라 이 만남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보여주실지 기다리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교회에 다섯 가지 사역, 즉 사도, 예언자, 목사, 교사, 복음 전도자의 사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이 회복된다는 것에 큰 도전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목사와 교사, 복음 전도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만 회복된다면 분명 이 땅 위에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우리가 바로 이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자들로 선택 받았다고 했다. 또한 이런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예언자들’에게 자신들과 우리 빈야드 교회 연합이 선택된 자들이라고 말씀 하셨다고 했다.

  너무나 솔깃한 말이었다. 매일 매일의 사역을 힘겹게 해 나가며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움도 느끼던 우리들에게 이 말은 정말 듣고 싶던 말이었다. 우리의 애씀과 노력이 하나님의 눈에 특별하게 보였다는 말은 위로 그 자체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놀랍고 기이한 일들이 나타나리라는 약속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첨하는 새 친구들의 말을 너무나 열심히 경청했다. 일말의 의구심도 의식 저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또 나중에 예언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이들이 우리를 한 사람씩 데리고 나가 우리의 비밀을 상세히 드러냈을 때 의구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예언자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자들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예언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예언자들을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며 개인적인 일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각자의 교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서 자신이 하게 될 역할과 위치와 성공 여부에 대해 ‘개인적인 예언’을 받았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회복’과 우리가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땅’으로 오게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즉시 짐을 꾸려 달려가 확신 가운데 예언을 받았고, 성공적으로 사역하게 되리라는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다. 심지어 예언자들은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교회 직원을 교체하기도 하고, 교회의 정책과 관행을 바꿔 버리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목사들 개개인에게 기름부음을 행하고 그들에게 치유와 사도적 약속을 주었다. 그러자 점점 목사들은 예언자들이 전화를 걸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예언자에게 전화를 걸어 가르침과 조언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불편해하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름부음을 받는 땅’으로 달려갔다가 뭔가 일이 실패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자신들이 영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예언자들의 꿈과 예언 때문에 잘못 비난받기도 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하기보다는 ‘점괘가 든 과자’를 믿으려는 신앙이 더 활개를 치게 되었다.
  몇몇 목회자들은 이런 모임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금 마음이 꺼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영적인 은사가 늘 완벽한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풀이 다 자랄 때까지는 베지 마라”는 철학을 들이대며 계속 밀어붙였다. 즉“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손을 놓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자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교회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약 2년이 지나자 모두가 예언자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수백 명의 빈야드 교회 성도들이‘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지도자며 성도며 할 것 없이 부지런히 예언을 하며 다녔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해 준 예언을 작은 노트에 적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격으로 열리는 예언 집회에 떼로 몰려다녔다. 노트를 들고 몰려다니는 군중은 더 많은 예언을 들으려는 희망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치유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세미나를 열어서 치유 기도의 공식과 방법을 가르쳤고, 몸에서 ‘열점: 연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도받는 사람의 몸에 육체적인 ‘떨림’이 일어날 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예언 집회에서 꿈과 꿈 해석이 중앙 무대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은 꿈을 그대로 노트에 일일이 적어서 가지고 오곤 했다. 그러면 이 꿈을 나중에 하나님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예언의 약속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조바심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다림은 수포로 돌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예언 행렬’이 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절박한 심정으로 목회자에게 상담을 받고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십 대들은 십 대에 성공하여 스타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십 대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이 위대한 사역을 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가 그런 자신의 ‘기름부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은사를‘발전시켜’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여 지도자들에게로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예언에만 치중한 나머지 점점 성경에는 무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보다는 그저 ‘직통 계시’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받은 예언이 성취될 수 없을까 두려워하며 이 예언자에서 저 예언자로 옮겨 다녔다. 예언자의 전화번호를 하나라도 더 알고 있는 것은 마치 보물지도를 얻는 것과 같았다. 이제는 예배 시간에도 성경보다는 작은 노트를 더 소중히 여기며 붙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떨고 눈을 깜빡이는 것이 성령이 임한 증거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사역팀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자신에게 달려와 손을 높이 들고 “주님, 더 임하소서!”라고 기도해 주기를 원했다. 몸을 떨고, 웃고, 울고, 눈을 씰룩거리는 것은 성도들이 지도자들과 동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 집회에서 8천 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던 설교가는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주석서를 보거나 원어 사전을 들척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목사들은 예언을 통해 주일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우리 교회의 한 성도는 뭔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손이 ‘뜨거워’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징조를 추구하는 현상은 바로 우리 교회에서부터 시작했다.

  내가 속한 노회의 교회들은 점점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가 신비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출석률이 뚝 떨어졌다. 이유인즉, 사람들이 다른 동네에 사는 자신의 친척들을 교회에 초대하기 꺼려해서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이상한 모습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5년 된 우리 교회에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깨달았다. ‘풀’이 이제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자라버렸다. 사역은 밑바닥을 치고, 실패가 눈앞에 있었다.
  목회 초기에 나의 멘토가 되어주셨던 분이 이런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신이 서지 않거든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라.” 바로 성경이다!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나는 그동안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당화하려고 과거의 부흥 운동과 교회 역사들을 살펴보는 데 완전히 지쳐 있었다. 목사로서 나는 내가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을 얻고자 분명히 알았던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말씀을 붙들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수년간 목회자로 훈련받고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알게 된 것은,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신앙을 바로잡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목자로 부름 받았으면서도 마치 끌려가는 자처럼 행동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목회는 푸른 초장은커녕 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있었다.
  많은 목회자가 자신이 목회자로서 바른 판단을 내렸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한 차례 큰 홍역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이런 감정적인 홍역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매년 매주 주일마다 일어난다. 목회자로서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양 떼를 늑대한테서 지켜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가르침이든 교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회자를 통해야 한다.

  나는 내가 처음 곁길로 벗어나 우리 교회에 잘못된 가르침을 허용 했던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성령의 불을 꺼 버렸으며” “지금이 바로 성령님을 교회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할 절호의 기회”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성령의 불을 끈” 교회의 중죄를 참회하기 위해서는 예배 때마다 “무슨 일이든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질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소서, 성령이여!”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는 혼돈이 도래했다. 이런 외침은 성령이 무슨 일을 행하실까 기다리는 가운데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 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는 말씀을 임의로 적용하며 어떤 불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위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마법의 ‘사탄 방패’가 어디까지 막아 줄까? 약 100미터? 아니면 한 60센티미터? 사탄의 앞잡이들이 다시 공격을 시작하는 데 시간제한이 있을까?
  우리 중 몇몇은 이런 속임수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죄의식을 감추려고 내가 그동안 너무 인간적인 리더십에 의존했고, 교회를 너무 통제하려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죄를 고백하며 몰려가자 나도 그들에게 슬쩍 동조했다.
  성경 어디에도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을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것을 옹호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고전 14:17~19) 질서를 명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혼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나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대신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회개해야 했고, 다시 참 목자로 서야 했다.

  아내와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빈야드 교회 연합 지도자 모임에 참석하려고 준비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연습해 보았다. 즉, 우리 교회에 파고든 주관주의를 제거하는 것과 복음주의와 제자도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성도들의 매일의 삶에 성경 공부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빈야드 교회 연합 지도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들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진리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모임이 계속되면서 많은 지도자가 이런 ‘예언’을 추구하는 경향이 미치는 결과가 심각하다는 데 관심을 모았다. 몇몇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고백했다. 그러자 즉각 경고가 들어왔다. ‘예언자’ 즉, ‘그들의 말이 한 번도 땅에 떨어진 적이 없는 자들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들을 것이고 그러면 분명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큰형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사역의 방향을 알려 주셨다고 말하며,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또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진정한 교회는 셀 교회고 따라서 모든 공적인 성경적 가르침과 복음 전도를 그만두고 소그룹 모임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는 ‘기사와 이적’을 통해 진정한 복음 전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복음 전도자들을 비웃으며 예언자들의 사역을 지지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들이 집회 때 자주 사용하는 속임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일주일 동안의 열띤 토론과 기도와 모임 가운데 한 사람이 전 날 밤 꾼 꿈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말고 그저 “기다려 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실망한 나는 덴버에 있는 교회로 돌아왔다. 나는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절친한 친구들,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향해 “교리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우리의 사역은 실패한 실험실 같아 보였다. 모든 것을 주관성에 의존한 것은 목회자로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모순되는 메시지를 ‘듣는’ 것일까?

  나는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돌보라고 주신 교회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해야 할 때임을 말이다. 그러자 진리가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선포했다. 우리가 만일 다시 기독교의 기본으로 돌아가, 기본을 잘 행한다면 하나님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도들도 동의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성경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요한복음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응했다. “왜 요한복음이죠? 이건 초신자였을 때 이미 읽었는데요.”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령 안에서’ 떨고 비트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불평했다. 4,400명이었던 교회가 사람들 이 ‘거룩한 웃음’ 집회에 참여하려고 떠나 버리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나를 증오하는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심지어 그 운동의 지도자는 공적으로 나를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내 ‘죄’ 때문에 나를 죽이실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에 우리가 ‘모략을 받은 해’라고 부른 그 시간들을 참고 견디자 하나님이 말씀에 신실하게 응답하시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알고자 찾아왔다. 세례 받는 자의 숫자도 늘어났다. 사람들의 삶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다시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1년도 채 안 되어 우리는 주일 예배를 세 번이나 더 드려야 했다. 현재 우리 교회는 6천 명가량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고자 애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매우 간단하다(히 4:12~13; 왕하 22:8~13; 렘 15:16).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과 같은 책은 반드시 출판되어야 하고 독자들은 읽어야 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 시대에도 바울의 사역을 막으려는 거짓 예언자들과 이교도들과 율법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잘못된 교리를 심어 놓으려 애썼다. 몇 달씩 집을 떠나, 열기와 먼지 속에서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먼 거리를 여행하고, 또 힘들여 성경을 하나하나 베껴 쓰는 일을 한 것은 바로 거짓 교리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은 이상하게도 거짓 교리가 너무나 철저하고 신속하게 파고든다. 성경적으로 바로잡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한 때다. 15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교회는 요한 테첼이라는 세속적인 사제의 계책에 말려들어 오염되어 있었다. 테첼은 사람들을 속여 형벌을 면하려면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현혹했다. 분노한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사람들의 영적 불안감과 무지를 이용해 구원의 중재자로 자처하는 것을 반박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항목의 반박문을 붙였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가짜 부흥 운동이 출몰하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그런 시대라면『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 이 책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진정한 영적 은사를 사모하고,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에 현혹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자들의 손에 들려진다면 좋은 도구가 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가짜 부흥 운동에 현혹되었던 사람들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는 진정한 개혁을 경험할 때, 비로소 진정한 부흥을 맛볼 것이다.

톰 스타이프
덴버 십자로 교회 목사
1997년 1월

16,000 → 14,400원 (10.0%↓)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800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 잠 16:25

이머징 교회는 새로운 교회 개혁인가 새로운 교회 변질인가

이 책은 최근 미국 신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머징 교회 운동의 신비주의적 뿌리에 초점을 맞추어 이머징 교회가 드러내고 있는 각종 신비주의적 요소와 특징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다. 교회가 현시대에 맞추어 복음을 효력있게 증거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과거의 교회에 불만을 품고 새 운동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기독교사에 있어서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가운데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려는 인본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중세 시대와 그 이전의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체험을 추구하는 모든 종교인들에게 강한 매력을 풍길 뿐만 아니라 건전한 기독교로 자신을 속여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그러나 이머징 교회 운동은 성경적 기독교에 생소하고 이상한 종교 관습들과 체험들을 가져온다. 특히 이머징 교회 운동은 종교 다원화로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심각하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머징 교회 운동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 주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종교개혁을 이루는 것이 그 목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앞으로 이머징 교회 운동은 이 땅의 많은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는 이머징 교회 운동 뒤에 세상 신이 있으며 그 세상 신은 이머전트들에게 여러 전략과 수단과 자원을 골고루 갖추게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의 이 운동은 앞으로 세계로 급속히 퍼질 것이다. 결국 이머징 교회 운동은 수백 수천만의 영혼을 바른 믿음에서 떠나게 하여 믿음을 파산시킬 것이다.

 

[책 소개]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영성, 종교 다원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대정신과 풍조 속에서 심리학, 실용주의, 신비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영성, 종교 다원주의 등이 오늘날 어떻게 진리를 왜곡하면서 우리 시대의 교회를 미혹하여 배교 혹은 배도의 위험에 빠트리는지를 보여 준다.

탁월한 저자이며 학자인 D. A. 카슨의 “이머징 교회”에 대한 면밀하고 해박한 평가

“이머징 교회” 운동은 많은 흥분을 불러일으켜 왔고 놀랍도록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운동은 미래의 물결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환상인가?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누구이며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이제 신중한 평가를 내릴 때가 되었다. D. A. 카슨은 이머징 교회 운동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 운동을 통찰력 있게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의 신학적 견해에 대한 탁월한 평가도 제시한다. 카슨은 이 운동에서 나머지 기독교 전체가 배워야 할 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이 운동의 몇 가지 곤혹스러운 약점을 솔직하고 사려 깊게 검토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이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2004년 2월에 시더빌 대학에서 세 번에 걸친 스탤리강좌때 이 책의 내용을 단순화된 형태로 강연한 적이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나를 따뜻하게 환영해 준 대학 총장과 교수진, 그리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내 강연을 사려 깊게 경청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내가 첫 장에서 분명히 밝히려 하는 바와 같이 “이머징(또는 ‘이머전트’) 교회” 운동은 출현한 지 십여 년도 채 안 되었지만 놀라우리만치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책과 세미나에서 서로의 견해를 인용하고 지지하는 가운데 이 운동과 관계된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의 자기 정체성은 이미 확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 내의 다양성과 모호한 경계 때문에 이 운동을 바르게 기술하기란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 나는 되도록 이 운동을 정확히 기술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끝없는 조건 제한을 피하기 위해) 논의를 진전시킬 목적으로 일반화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독자들은 이 운동 내에서 그런 일반화가 잘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과 스스로 이머징 교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의 가치관과 우선순위의 대부분에 공감하는 이들을 거의 언제든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또한 어떤 교회 지도자들은 이 운동이 아직 운동의 차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이 운동을 “담론”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한다는 점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나는 지나치게 기술적인 논의는 피하려고 애썼지만 연속 강의의 성격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은 아마도 일부 독자들을 서로 상반된 방식으로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너무 초보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일부 내용을 꽤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자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각주가 도움이 될 것이고 후자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원래 강의 내용의 초고보다 몇 배 더 자세하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에게 책의 내용이 너무 간결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상세한 논거 제시에 집중하거나 많은 미묘한 차이와 예외를 다 소개하기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특히 일부 이머징 교회 지도자들이 그런 미비한 점을 들어 여러 블로그에서 이 강연을 비판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나는 이 책에서 강연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자 가능한 한 노력했다.

개혁 운동을 표방하는 기독교적인 운동이 출현할 때마다 그 운동을 간단하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 운동은 많은 우려스런 약점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그 운동에도 나머지 기독교 진영에서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주장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들의 말을 경청하려고 애썼다. 나는 이 “운동”의 지도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주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색인 작업을 해 준 조너선 데이비스와 마이클 세이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 - D. A. 카슨.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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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우크리 교회와 새들백 교회를 본받지 말라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와 새들백 교회로 대표되는 교회가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심리학 등 세상 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캘리포니아 주 레이크 포레스트에 자리 잡은 새들백 교회 그리고 일리노이 주 사우스 배링턴에 자리잡은 윌로우크릭 교회가 거둔 놀라운 성공에 고무되어 온 세계의 교회들이 교회 성장과 확장을 위해 마케팅 철학을 마구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예배당을 사람들로 가득 채우는 대가로 이 교회들은 어떤 값을 치렀는가? 마케팅 기법이 거둔 성공은 복음주의 부흥과 같은 역사적인 운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교회들은 문화 전쟁에서 진 것인가?
길리 박사는 교회가 저 전쟁에서 졌고, 문화의 영향력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를 압박하는 가장 두드러진 세력으로는 오락, 마케팅적인 사고 방식이다. 오락과 마케팅적인 사고방식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경악스럽게도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에 팽배해 가고 있다. 길리 박사는 미국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전 세계 교회들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가적인 자료들로 가득한 이 책은 교회들에게 너무 늦기 전에 성경적인 뿌리로 다시 돌아오라는 진지하고도 시의적절한 호소를 하고 있다!

[머리말]
꽤 오랜만에 로버트 씨 부부를 만났다. 내가 친구들과 점심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식당의 한 구석에 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시지만, 인간에 불과한 우리는 외모를 보는 법이다. 경박한 생각이었음을 인정하지만, 솔직히, 로버트 씨 부부가 지난 몇 년 간 몸이 좀 불었구나 하는 생각이 맨 먼저 뇌리에 딱 떠올랐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로버트 씨 부부는 딱 봐도 살이 무척 쪘다.

이 가벼운 마주침은 한 가지 작은 사실을 제외하곤 살면서 부딪는 작은 우연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부는 수년 간 자영업에 종사해 왔다. 하지만 그냥 자영업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어떤 다이어트 약을 열심히 팔아 왔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들어 있는 모든 지방을 태워 버린다는 약이었다. 이 약을 복용하면 무엇을 먹든, 얼마 만큼을 먹든 살이 찌지 않는다고 광고했다. 이 부부는 마땅히 살아있는 증거, ‘특급’ 간판으로 통해야했다. 두 사람은 볼록 튀어나온 배, 하마와 같은 둔부를 하고서는 약을 사 줄 만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서, 그 기적의 약이 자신들을 오늘처럼 날씬하고 군살이 없는 사람들로 놀랍도록 변신시켜 주었다며 침을 튀기곤 했다. 믿기지 않는 것은 이 대목이 아니다. 더 경악할 만한 것은 이 부부가 그 지방 연소제를 정말 잘 팔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에게 정색을 하고 당신이 ‘S라인 몸매’라고 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당신의 바지 단추를 못 보고 지나갈 것이다.

이 책에서 다이어트 보조 식품 업체를 겨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겠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교회를 사랑하고 평생 교회 안에서 사역해 왔다. 선교 단체들 역시 그리스도인의 싸움에서 일정한 몫을 하고 있지만 교회는 실제 전투가 발발하는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30년 넘게 다른 사역에 곁눈 팔지 않고 목양만을 해 왔다.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교회가 ‘변질되고’ 있다.

오해를 당하기 전에 말해 둬야겠다. 나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변화는 인생의 순리이며 또한 교회의 순리다. 하지만 어떤 위험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러한 교회의 변화가, 교회로 하여금 더 이상 교회이길 포기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은데도 자기들이 날씬하다고 떠들고 다닌 저 뚱뚱한 로버트 씨 부부처럼, 교회 역시 허위광고의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쩍 이런 허위 광고에 속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설명해 보겠다.

성경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예, 고전 12장). 우주적인 교회라고 할 때는, 교회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산 자든 죽은 자든 구속받은 모든 자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우주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진정한 신자로 구성된 특정 단위들을 통해 기능을 발휘한다. 신약 성경에서 교회라고 쓰인 용어의 대부분은 지역 교회들을 가리킨다(예, 계 2~3장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왜 이런 지역 교회들이 존재했을까? 이 교회들은 어떤 기능을 한 것인가?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가 보여 준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사도행전 2장 41~42절은 세부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구절들은 지역 교회 회중의 기본적인 기능을 보여 준다. 즉, 전도, 말씀의 교육, 성례 참석, 기도와 교제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과 더불어 예배와 훈육이 있었다. 이
러한 활동들이 신약 교회를 규정했고, 교회를 사회적인 모임 또는 정치적인 집회와도 구별해 주었다.

전도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성경을 볼 때 전도는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 수행하도록 부여받은 기능 중 하나다. 성도들은 지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기 위해 지인들을 교회 모임에 초대하지 않았다. 교회의 예배는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 교회 모임 때 전도를 논의하는 가장 친숙한 곳은 고린도전서 14장 22~25절이다. 그 일부는 이렇다.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바울은 예배를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드리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단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 할 기회가 있을 뿐이다. 모인 교회의 강조점은 전도에 있지 않지만, 흩어진 교회의 초점은 전도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벧전 3:15)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초대 교회는 모였을 때 많은 시간을 전도하는 데 보낸 것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 또는 신약 성경 신학에 초점을 두었음을 본다. 초대 교회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체험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일을 했다. 초대 교회는 이 책임을 막중하게 여겼다. 어린 신자들을 양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도들은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히 5:11~14를 보라). 이 성숙의 과정을 돕는 것은 지역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심적인 기능의 하나였다.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고 했다. 교회가 잃어버린 자들에게 그리고 구속받은 자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입장이라면, 진리의 유포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는 또한 예배, 기도, 성만찬 시행 그리고 교제를 했다. 초대 교회는 이 일들을 중요하게 여겼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해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디킨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어쩌면 가장 좋은 시절 그리고 가장 나쁜 시절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음주의 교회는 성공이라는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다.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고, 새로운 교회 건물들은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있다. 윌로우크릭 협회와 같은 단체들은 불신자들을 우리의 예배와 메시지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고, 자고 일어나면 대형 교회들이 탄생한다. 여기에 더하여 ‘프라미스 키퍼(Promise Keepers)’ 운동과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책들의 영향을 생각하면,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뻐서 공중제비를 돌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호시절이다.
하지만 왠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교회가 성공을 못할 거라고는 전혀 염려하지 않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들, 특히 시장에 민감한 교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예민한 관찰자라면 경종을 울려야 하는 문제들도 상당히 많음을 발견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태평가가 들려오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역 교회가 갖춰야 할 성경적으로 본질적인 구성 요소들과 기능을 분석 해 볼 때는, 경고등 또한 여기저기 켜져 있다. 전도는 한 예에 불과하다. 시장에 민감한 교회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대단히 강조한다(윌로우크릭 교회는 이들을 “교회에 별 마음이 없는 해리와 메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모를 때, 사도 바울이 듣고 의아해할 정도로 복음이 대중 심리학과 얼버무려졌을 때라면 어떻겠는가? 교회에 별 마음 없는 해리가 과연 이런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런 모호한 복음의 결과로서 복음주의 교회들에 교회와 친해진, 그러나 여전히 구속
받지 못한 ‘해리와 메리’가 우글거릴 수도 있는 것일까? 만약 이런 복음 전도가 전반적으로 유행을 끌고 있다면, 오늘날 교회의 현상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심장이 꿰뚫릴 때 성장한다면, 교회가 더 이상 진리를 모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교회가 하나님의 무오한 진리를 시대의 사조 그리고 유행과 뒤섞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만약 인본주의, 포스트모던 철학과 시대정신이 정성스럽고 체계적인 하나님 말씀의 연구를 대체한 것이 입증될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교회의 현황에 대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교제, 성만찬, 기도 그리고 예배라는 요소가 언제나 지역 교회를 이루는 구성 요소라면, 이런 활동들이 오락과 섞이거나 또는 오락이라는 물에 희석되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예배”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은 오락에 불과함이 입증될 수 있다면,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애써 분별하고자 하는 것은 황제가 어떤 옷이라도 입고 있느냐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동화를 기억할 것이다. 어떤 황제가 자신은 위엄 서린 어의를 입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황제가 근엄한 황제복을 입고 있다는 말을 황제와 백성이 모두 들었기에, 그들이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는 것이 놀랍다. 재단사들이 오직 바보들만이 그 옷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에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아무도 바보 취급을 받기가 싫었다. 천진무구한 아이가“황제가 벌거벗었다.”고 외치기 전까지는 모든 게 다 좋았다. 모든 사람이 갑자기 보게 되었다.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이 동화에서 황제는 그 우스꽝스러운 짓을 계속했다.

교회가 어느 정도는 같은 곤경을 겪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근자에 가장 성공하는 복음주의 교회의 진영은 성장, 헌금 그리고 특권 의식이라는 면에서 시장에 민감한 (비신자를 의식하는, 새로운 유형의, 고객 중심의) 교회다. 이러한 교회들은 이 성공 때문에 이곳저곳, 아니 전 세계에서 비웃음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회가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가? 전도, 훈육, 예배 그리고 훈계라는 성경의 옷을 갖춰 입었는가? 아니면 진리의 조각들을 공허한 인간의 철학으로 덧대 기운 헝겊을 겨우 걸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이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그리 없단 말인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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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적으로 문맹이며, 교리적인 문제는 일축해 버린다. 성경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지만 적은 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있을 뿐이며 인생을 이해하거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성경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정말로 적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야 할 모든 세대의 신자들이 교리를 가르치기는커녕 교리의 진가도 알지 못하는 교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른바 복음주의라고 하는 대부분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이 진리를 찾아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망각했거나 또는 잘못 행사하고 있다. 실용주의, 교회 성장, 포스트모던 사상들, 이교도 관습 그리고 쾌락주의 등과 같은 제단 위에서 진리는 희생 제물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성도들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능력과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포로가 된 이머징 교회에 대한 다각적 분석
이 책은 이머징 교회가 시장 논리가 만들어 낸 대형교회의 마케팅 중심적인 신앙의 공허함, 신비감 상실, 무미건조함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지만, 이머징 교회 역시 포스트모던 문화에 물들어 바른 기독교 신앙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다양한 저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설명한다.

우리는 특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풍요로움이 확산되어 가는 이 시점, 기독교 기관들은 늘어나고, 기독교 언론들은 많은 생산물을 쏟아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기독교 신앙 그 자체는 사위어 가고 있다. 또한 우리가 크게 놓치고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서구 문화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기독교 대학까지 수많은 기관들에게 허락된 풍요와 안전 그리고 언론 매체에서부터 선교단체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제도들에 주어지는 엄청난 편의 자체가 기독교를 지탱해주고 있지는 못하다.

기독교의 알맹이는, 많은교회, 많은 책 그리고 숱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문화로 만미암아 더럽혀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지금 근대화와 포스트모던 세계의 거센 조루에 끌려가고 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유일한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기독교 문화와 일전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문화가 걸어온 싸움에 휘말릴 것인가?'
마셜 데이비스
목회 경력 30년의 침례교 목사다. 켄터키 주 남 침례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펜실베니아 주 로체스터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매료시킨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고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느끼고 ‘목적이 이끄는’ 교회 성장 모델의 배후에 깔린 역사와 철학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많은 연구와 생각과 기도 끝에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을 바라보는 새들백 교회의 관점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워렌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해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복음은 성경적 복음의 회복이 아니며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며,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기독교가 잠시동안 기독교이기는 하지만 많은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생략되고 많은 세속적인 요소들이 도입된 위험한 영역으로 미끄러져가는 생략된 형태의 기독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D. A. 카슨
(D. A. Carson) 저자는 카톨릭 교회가 전권을 쥐고 복음주의적 교회들을 심하게 박해하던 프랑스령 캐나다 퀘벡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의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 B.S.)에서 화학과 수학을 공부하였고, 토론토에 있는 센트럴밥티스트신학교(Cenrtal Baptist Seminary, M.Div)와 영국의 캠브리지대학교(Cambridge University,Ph.D.)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의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신약학 교수로 있으며, 10년째 세계복음주의연합(World Evangelical Fellowship)에서 봉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Sermon on the Mount: An Evangelical Exposition of Matthew 5-7」,「Exgetical Fallacies」등이 있다.
박순용
박순용 목사는 열 살 때 목사로 서원하여, 총신대 신학과와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국 에든버러 프리 처치 칼리지와 웨일스 복음주의 신학대학에서 영적 대각성과 청교도에 대핸 연구했습니다. 그 후 호주 퍼스(Perth) 한인 장로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습니다. 귀국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각 그리스도인의 삶과 조국교회 가운데, 나아가 모든 민족 가운데 선명히 드러나는 것을 목회의 비전으로 삼고, 현재 서울 강동구 암사동 소재 하늘영광교회를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상 지평서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생명의말씀사)이 있습니다.
로저 오클랜드
로저 오클랜드는 저자이며 강연자이고,‘국제 시대 분변 기관(Understand the Times International)’의 창설자다. 그의 쉽고 명료한 내용과 가르침의 스타일은 나이와 배경을 망라하여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는 지난 20년 이상 50여 개 나라를 다니며 수없이 많은 교회와 콘퍼런스, 대학, 교육 기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새 포도주와 바벨론 포도나무』(Band of Puritans 역간),『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 ), 『또 다른 예수? 성체 그리스도와 새 복음주의』(Another Jesus? The Eucharistic Christ and the New Evangelization) 등이 있다.
게리 길리Gary E. Gilley
길리 박사는 1975년부터 설교 및 교육으로 써던 뷰 채플(Southern View Chapel)을 섬겨온 목사이며 동시에 현시대의 신학적 쟁점들을 다루어 발행하는 월간 「Think on These Things」의 저자 및 편집자다. 미국은 물론 해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집회 강사로, 또한 브라질 복음 선교 연합회(Brazil Gospel Fellowship Mission) 고문이사로 섬겨오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무디 성경 신학교(Moody Bible Institute)와 캠브리지 대학원(Cambridge Graduate School)을 졸업했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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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레이 윤겐 / 부흥과개혁사
가격: 16,000원→14,400원
행크 헤네그라프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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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오클랜드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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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용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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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A. 카슨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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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길리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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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길리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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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존슨, 로널드 글리슨 편집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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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잘못된 기독교 분별시리즈 세트 (전8권)
저자마셜 데이비스,D. A. 카슨,박순용,로저오클랜드,게리 길리,게리 존슨, 로널드 글리슨 편집
출판사부흥과개혁사
크기SET
쪽수
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발행일2011-11-04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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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마셜 데이비스) 신간 메일링   저자(D. A. 카슨) 신간 메일링   저자(박순용) 신간 메일링   저자(로저오클랜드) 신간 메일링   저자(게리 길리) 신간 메일링   저자(게리 존슨) 신간 메일링   저자( 로널드 글리슨 편집) 신간 메일링   출판사(부흥과개혁사) 신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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