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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개혁사 마이클 호튼 시리즈 세트(전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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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 미국 복음주의 출판협의회(ECPA) 선정
'기독교와 사회' 부문 골드 메달리언상 수상!

 

마이클 호튼의 세속화된 복음주의 치료책!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만이 교회의 세속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마이클 호튼의 신선하고 해박한 주기도문 해석과 적용!

세속화에 포로 된 교회, 세상의 문화에 포로 된 교회가 다시

서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기도문의 진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이클 호튼의 강력한 외침!

"교회개혁의 일차적인 과제는 도덕이 아니라 신학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첫번째 심판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교회다"

나는 복음주의적인 문제를 단순히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로 바꾸려고 하는 사회적 정치적 자유주의자의 입장으로 이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내가 제기한 질문은 20세기 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전쟁'에서 어느 한 편을 들고 있지 않다. 내가 그러한 일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해서 교회가 더 이상 그 본연의 사명을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목회자들은 당연히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이십일세기를 헤쳐나가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 본연의 사명과 메시지와 그 일정을 재검토하라는 촉구이다.

종교개혁 신학의 진수를 소개합니다

종교개혁은 예배중심적이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통이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분이시므로 우리는겸손히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돌려야 한다. 더군다나 많은 종교개혁자들은 '소중한 것을 불필요한 것과 함게 버리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루터와 칼빈이 목적은 미사를 개혁하는 것이지,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전통에 속한 교회들은 교회사에서 가장 감명 깊은 찬송과 송영을 창작하였는데. 그것은 서정적일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풍성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실제로 루터는 '모든 열광주의자들은 음악을 경멸하지만, 나는 음악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종교개혁의 전통은 여러 가지 다양한 측면세서 크게 공헌했으며,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교회를 찾고 있다. 또한 세상은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으며, 왜 믿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목적을 이루시는 데 이 작은 책을 사용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 은혜에 대한 놀라움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마이클 호튼의 십계명과 21세기

 

21C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신선하고 명쾌한 십계명 해석과 적용!

 

기독교적인 삶의 매뉴얼인 십계명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을 보여 주는 인생 안내서.

 

 

[책 소개]
개혁신학은 언약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언약신학은 개혁신학을 가장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를 보아도 가장 통합적이고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위대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약신학의 바른 이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복음과 율법의 관계 등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와 논점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본서는 철저하고 탁월한 개혁주의자인 호튼의 언약신학 길라잡이로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분명하지 않았던 언약신학의 정의와 내용,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언약신학에 대한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명쾌하고 성경적이며 탁월한 본서를 통해 ‘약속’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에게 모든 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만나보십시오!

[역자 머리말]
성경 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준 잊을 수 없는 책

잊을 수 없는 첫 만남
마이클 호튼의 <언약신학 개론>을 원서로 처음 읽은 것은 2006년 유럽지역 코스테 강사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약 10시간 동안,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나가며 성경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집회가 열리는 약 4박 5일 동안 제게 주어진 강의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계속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성경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노트북에 계속 담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 작성된 수십 페이지 분량의 글을 보면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언약신학의 길잡이
마이클 호튼은 이 책에서 언약개념은 성경전체의 여러 주제를 총체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읽을 수 있는 성경의 뼈대 혹은 구조라고 말합니다. 호튼은 1장에서 서론적으로 언약개념이 성경의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포괄적으로 밝힙니다. 2장에서는 성경의 언약개념의 배경이 되는 고대중동지방의 2가지 국제조약의 형식을 소개합니다. 3장과 4장에서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다양한 언약들이 고대중동의 2가지 국제조약 형식과 같은 무조건적인 약속언약과 조건적인 율법언약으로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5장에서는 이러한 성경의 다양한 언약개념을 개혁신학이 말하는 3가지 언약인 구속언약, 창조언약, 은혜언약 개념의 틀로서 다시 한 번 총정리를 합니다. 이에 6장에서는 노아언약을 통해 일반은혜의 특징을 잘 설명해주며, 7장에서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의 연속성을 언약적 관점에서 보여주며, 8장에서는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언약의 표지와 인이라는 측면에서 잘 설명해줍니다. 마지막 9장에서는 오늘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율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율법의 여러 가지 의미를 구분해서 탁월하게 설명해줍니다. 호튼의 이 책은 언약신학의 여러 측면을 성경신학적, 조직신학적, 실천신학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잘 보여주는 언약신학의 입문서이자 개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개 걷힌 언약신학
저는 호튼의 이 책을 통해 개혁신학은 곧 언약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개혁주의 신학에서 언약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 신학교 다닐 때 언약신학이란 과목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때에는 강의를 하시는 분이 언약신학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무튼 언약신학에 대해 그렇게 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10여 년 전 성경의 맥이라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국내에서 발간된 언약신학에 대한 책들을 대부분 읽어본 적이 있지만 무언가 확실한 내용이 잘 잡히지 않고 모호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호튼의 언약신학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안개가 걷히고 성경이 말하는 언약의 개념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성경의 언약개념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틀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약속의 하나님이며, 약속한 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약신학을 통해 이런 약속-성취의 하나님을 풍성하게 보여준 신앙선배들에게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언약신학이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언약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성경 전체의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언약신학의 관점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특정 진리에 대해 극단적이 되거나 혼합적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인간과 자연의 관계,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몸과 영혼의 관계,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관계, 이론과 실천의 관계, 칭의와 성화의 관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관계, 구약과 신약의 관계, 말씀과 성례의 관계, 교회에 대한 양육과 세상에 대한 선교의 관계 등 여러 중요한 문제에 있어 양자를 서로 분리하거나 혼합시키는 잘못을 범할 때가 많습니다. 호튼은 이러한 여러 가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관계들이 언약신학적 관점으로 보면 서로 분리 되거나 혼합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여는 마스트 키: 복음과 율법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마이클 호튼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복음과 율법에 대한 분명한 이해입니다.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수없이 많은 말을 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내가 그동안 복음과 율법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던 율법과 복음이 사실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핵심이라는 사실, 율법과 복음은 성경의 다양한 언약 형식들을 둘로 요약해주는 내용이며 더 나아가 성경 전체를 둘로 구분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또한 한마디로 복음은 하나님의 행동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약속하시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행동이며, 율법은 우리의 행동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번개처럼 복음과 율법의 핵심을 순식간에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복음과 율법은 성경 전체 내용의 한 부분이 아니라 성경전체의 내용을 둘로 나누는 틀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복음과 율법은 이제 제가 성경을 여는 마스터키가 되었습니다.
둘째, 특별은혜와 일반은혜의 관계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와의 관계, 교회와 국가, 혹은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호튼을 통해 노아언약이 바로 일반은혜를 다루고 있는 것이며, 일반은혜의 중요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깨닫는 것이 실제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은혜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변되는 일반은혜의 가치를 깊게 깨닫게 된 것은 큰 수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는 흔히 우리가 문화명령이라 부르는 것, 세상의 문화에 대한 태도, 그리고 기독교인의 국가관등 기독교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의 지평을 한 차원 더 열어주었습니다.

호튼의 여러 저서를 관통해 흐르는 두 가지 주요 테마
사실 그동안 부흥과개혁사를 통해 이미 발간되었던 마이클 호튼의 주기도문 강해서인 <세상의 포로된 교회>, 사도신경 강해서인 <기독교 핵심>, 십계명 강해서인 <삶의 목적>, 개혁신학 입문서인 <복음이란 무엇인가> 등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상은 바로 '복음과 율법', '일반은혜와 특별은혜'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발간된 마이클 호튼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복음과 율법에 대한 이런 언약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현대 복음주의 교회를 진단하고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밝힌 역작입니다.

해산의 고통으로 출생한 옥동자
호튼의 <언약신학>은 주께서 제게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해 주신" 잊을 수 없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끔씩 이런 성경 보는 눈을 열어주는 전환점이 되는 책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저는 이 책을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이 너무 커서 제가 직접 이 책을 번역함으로 그 고마움을 보답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몇 십 페이지를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계속 다른 일들이 생기면서 그만 몇 년 동안 번역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마침 최근 어떤 중국신학교 강의가 예상치 않게 취소되는 바람에 약 2주간의 시간을 번역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맙게도 4장, 6장, 8장을 윤석인 강도사가 초역 해 준 덕분에 그동안 남겨두었던 나머지 부분의 번역을 끝내게 되어 이제 해산의 진통이 끝나고 옥동자 하나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소 학문적인 책이라 번역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독자들이 읽기에도 그리 쉽지 않아 보여, 이 옥동자가 독자들의 사랑을 먹고 어느 정도 잘 자랄 수 있을까? 기대반 염려반입니다.

보약같은 책, 단비같은 책
이제 이 책이 그동안 복음 없는 율법에 지치고, 복음도 아니고 율법도 아닌 인간적인 자아계발식 조언의 달콤함에 너무 길들여서 영적 건강이 많이 상해있는 독자들에게 무공해 유기농 건강식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오염된 우리의 생각을 씻어내는 해독제도 되고, 허약해진 우리의 몸도 다시 회복시키는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금방 입맛에 좋기는 하지만 건강을 해치는 인스탄트식품, 패스트푸드와 달리 이런 책은 곰탕처럼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영양가도 높고 맛도 좋은 건강식품, 슬로우푸드와 같습니다. 이 책을 오랫동안 잘 씹어 삼켜서 독자들의 피와 살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이 이 땅의 개혁신학을 사랑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가뭄에 단비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혁신학의 진수를 알고 싶어하는 분, 언약신학을 분명하게 알고 삶속에 적용하고 싶어하는 분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단비에 온 마음이 적셔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실천이 삶의 열매 한 가득 맺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성경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는 감격과 감동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생겨나게 되기를 기도하며, 약속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완전히 이루어주실 그 날을 더욱 기다리며....
- 2009년 눈부신 5월의 봄을 맞이하며 백금산 드림. -

[책 소개]

교회는 세상 안 어디에 있는가?
: 기독교 문화관과 기독교인의 역할

  이 책이 기독교 세계관을 위한 신학적 기초나 예술, 과학, 철학 등의 본질을 다루는 난해한 해설서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 책을 평범한 독자들, 특히 하나님께 받은 거룩한 충동과 열망을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억누르려는 하부 문화와 씨름 중인 기독교인을 위해 저술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목회적인 성격이 있다. 나는 신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해 좀 더 배우기에 앞서, 그리고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기독교인이 자기 믿음을 삶과 “통합”하는 데 힘쓰기에 앞서 먼저 성경에 바탕을 둔 신학에 더 튼튼히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독자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느냐에 상관없이, 복음주의계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개념과 여기저기서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한 도전은 많을 것이다.
- 마이클 호튼

[머리말]

  나는 찬송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유명한 두 찬송이 완전히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져 고개를 갸웃거리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 중 한 곡은 “이 세상은 나그넷길 나는 다만 나그네”였고, 다른 한 곡은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우리 아버지의 세계’인데 ‘내가 다만 나그네’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처럼 더 큰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인인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요소는 비단 찬송만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은 살면서 영적으로 유익하거나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합리화하는 태도를 당연시했다. “현세적인” 교육, 활동, 직업, 일 등은 기껏해야 생계를 꾸리고 십일조를 바치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데 필요한 악에 불과했다. 최악의 경우 세상 활동은 기독교인다운 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이었다. 현세적인 활동은 의심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을 불신과 침체의 암초로 끌어들이는 사이렌의 노래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사업가가 되길 꿈꾸는 사람은 기독교 단체나 기관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교회에 출석하는 젊은 미술가에게서 렘브란트 같은 미술 재능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우리는 주보를 만드는 일을 그에게 도맡기고 (그가 정말 뛰어나면) 세례식 무대를 장식하게 한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심지어 생명 공학과 인류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경우에도 창조론을 지지할 만한 근거들을 제출하도록 요구받았다. 음악가들은 찬양대에 참석(혹은 찬양팀을 구성)하거나 여러 지역 교회에서 순회공연을 하도록 요구받았다(물론 교회 규모는 개인의 재능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는 예술가, 연예인, 톱스타들로 구성된 우리만의 “특별 지대”를 만들어 왔는데, 특별 지대가 되어 버린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특별히 현대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르네상스, 특히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중세 시대의 인생관에 대한 반발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철학, 미술, 음악, 과학을 종교와 크게 혼동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각 영역을 서로 구분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철학은 사실상 철학이 아니었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중세 시대 교회가 좋아한 철학자들)에 대한 중세 시대 교회의 해석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실제 작품과 얼마나 다른지를 꼬집었다. 당시 미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일자리를 얻으려고 또 한 번 교회를 찾아야 했는데, 미술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과 일생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갈릴레오(1564~1642)가 받은 재판은 성경이 특정 과학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영적 가치 혹은 복음 전도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입각해 예술, 과학, 예능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결국 창조가 주는 선물과 복음이 주는 선물을 모두 손상하고 만다. 

  종교개혁 덕분에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의 유용성을 교회나 선교 단체에 해명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세상에서 위엄 있고 소중하게 추구할 자유를 얻게 되었다. 소명은 창조에서 비롯된 선물이었다. 불신자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창조의 거룩한 소명을 받았다. 하나님은 신자와 불신자가 모두 자신의 일을 탁월하게 추구하도록 작정하셨다. 신자는 하나님을 이처럼 탁월성의 창조자와 목표로 인정하는 반면, 불신자는 하나님을 탁월하신 창조주로 인정하길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종교개혁은 수도원의 세계관에 반대하고 세상을 포용하는 신학을 옹호했다. 과학을 발생시키고 네덜란드 미술과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 문학에 “황금시대” 를 가져오고, 교회를 정치에서 해방시키고 문맹을 퇴치하고, 공교육을 보급하고 널리 퍼져 있는 전제 정치에 맞서 시민적 자유를 요청하게 된 주원인이 바로 종교개혁이 옹호한 세상을 포용하는 신학이었다. 

  물론 완전한 운동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처럼 깊숙이 개입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종교개혁도 죄로 물든 사람들의 실책과 오점 을 동반했다는 점에서는 전혀 예외가 아니다. 그래도 종교개혁이 다시 발견한 성경적 주제들 덕분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에 자신이 한동안 속해 있다는 인식(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상의 ‘소유’는 아니라는 인식)을 다시금 회복했다.

  영적 가치 혹은 복음 전도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입각해 예술, 과학, 예능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창조가 주는 선물을 평가절하하게 하며, 그런 와중에 복음이 주는 선물도 왜곡해 결국 양쪽을 모두 손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음악”이라는 말은 기독교 하부 문화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류 예술가를 위한 핑계일 때가 종종 있는데, 기독교 하부 문화는 고유한 시상식 환경과 톱스타를 포함한 일반 연예계의 현란함과 화려함을 모방한다. 물론 기독교 음악이 현대 기독교 음악에 공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수많은 예술가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기독교 음악 산업은 대중음악을 창의성 없이 천박하게 반복 모방하는 작품을 양산하는 형태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소비자 중심 문화의 무감각한 기호에 순응해 음악을 창작하는 일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라디오 광고나 텔레비전 광고를 제작할 의도가 아니라면, 상업 예술을 ‘본뜨는’ 것은 자기 재능을 허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비판은 모든 기독교 예술가를 비난하려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이해한 성경 메시지를 창조적인 음악 양식과 통합할 만큼 음악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대단히 세련된 예술가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문화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말이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과 혼동하는 속물이 된다는 뜻도 아니다. 결국 “진리”는 건축의 측면에서 보면 대중음악에 해당되는 “지하철 내벽에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이 사실일 때가 많다. 내가 가끔씩 대중음악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음악이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음악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해 더 고차원적인 기준에 반발하는, 상업 지향적인(다시 말해, 금전 지향적인) 하급 예술 형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다시 말해, 창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확실히 “기독교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중압감은 창조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창조를 불완전하게 보는 전제는 기독교 모든 분야에서 복음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흔히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앞으로 우리는 창조를 불확실하게 이해하는 전제에 숨겨진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이 책이 기독교 세계관을 위한 신학적 기초나 예술, 과학, 철학 등의 본질을 다루는 난해한 해설서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 책을 일반 독자들, 특히 하나님께 받은 거룩한 충동과 열망을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억누르려는 하부 문화와 씨름 중인 기독교인을 위해 저술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목회적인 성격이 있다. 나는 신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해 좀 더 배우기에 앞서, 그리고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기독교인이 자기 믿음을 삶과 ‘통합’하는 데 힘쓰기에 앞서 성경에 바탕을 둔 신학에 더 튼튼히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독자들의 처지와 상관없이(박식한 학자든 하버드에 다니는 자녀가 괜찮은지를 알고 싶어 하는 부모든 상관없이), 복음주의계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개념과 여기저기서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한 도전은 많을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폭넓은 의미로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는 대중문화(스포츠, 정치 운동, 공교육, 대중음악, 연예 등)와 고급문화(원예학, 학술, 고전 음악, 오페라, 문학, 과학 등)를 모두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논의에서 이처럼 편리하게 포괄적으로 정의한 ‘문화’를 사회의 이익, 오락, 풍요를 위해 의도된 인간 활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나는 종교개혁에서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성례를 적절히 시행하는” 제도적 교회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정치, 예술, 과학 등의 분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신자 개인이 이런 분야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를 결코 함축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로) ‘제도로서의’ 교회가 하나님께 부여받은 자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제도적 교회는 모든 세대와 장소를 통해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몸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제도적 교회는 말씀 선포와 제자 양성을 고유한 임무로 부여받았다. 따라서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교회’라는 용어는 비단 신자 개개인이 모인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의 인격적 사역을 위임받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가리킨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목적과 관련해서 대체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듯한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틀에 박은 단조로운 순서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단히 혁신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찰력 있게 고찰하는 이 책에서, 마이클 호튼은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논증한다. 호튼은 오늘날 벌어지는 예배 전쟁의 이면을 파헤치고,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성경적 토대와 신학적 토대를 재발견하도록 우리에게 당부한다. 호튼은 그렇게 한 다음에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되돌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이 목회자이든 예배 인도자이든 자기 믿음을 심화하기 갈망하는 일반 신자이든 간에, 이 책은 여러분의 창조 목적인 감격적이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예배를 보임으로써,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제자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감사의 글

이 책에서 유익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점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이 대단히 많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나는 여기에 이름을 거명함으로써 그런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몇 사람은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책을 써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중에는 이 책을 준비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글들을 보내 준 사람이 많다. 이 점에 대해 애너하임에 소재한 크라이스트 개혁교회(미국 개혁교단 소속)와 킴 리들바거 교수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는 여러 해 동안 로드 로젠블라트 교수와 케네스 존스 목사와 함께 교류하면서 예배에 관해 대단히 많은 것을 배웠다. 다음으로 이 책에 수록된 자료들을 시험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점에 대해, 나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를 많이 도와준 스티브 몰슨과 에릭 랜드리 군에게도 감사한다. 또한 베이커 출판사에 사의를 표하며, 특히 도널드 스티븐슨과 로드니 클랩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책을 쓰는 동안 인내로 나를 참아 주었고 초고를 읽고 편집하는 과정에 대단히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준 점에 대해 나의 아내인 리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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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칼빈주의에 대한 과장된 왜곡을 넘어서서 참되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칼빈주의로 알려진 신학 체계는 16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인간의 행위와 선택을 부적절한 것으로 만드는 숙명론적 신념 체계라는 부정적 평가에 직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호튼은 칼빈주의가 대단히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이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임으로써, 우리가 그런 과장된 왜곡과 오해를 극복하고 또한 개혁주의 신학으로 널리 알려진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마이클 호튼은 칼빈주의의 역사적 뿌리를 조사하고 ‘5대 강령’으로 알려진 독특한 가르침을 독자들에게 차례로 보여 주면서, 21세기에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을 위해 칼빈주의에 담긴 풍성한 자산을 깊이 숙고하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서문]

마이클 호튼이 쓴 이 책에 서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열성적인 아르미니우스주의자로서 이 책에 관해 어떤 좋은 말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였다.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야 했다. 나는 호튼과 약 20년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우리는 서로 간의 신학적 차이와 관련해서 건설적인 대화를 많이 나눴다. 나는 호튼에게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영향을 끼쳤으면 하고 바라는데, 호튼도 나에게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영향을 끼쳤음을 알고 있다.

나는 호튼이 관대하면서도 스스로 ‘은혜의 교리들’이라고 부르는 것(개혁주의 신학)을 헌신적으로 신봉하는 인물임을 늘 깨닫는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도 나는 호튼이 아르미니우스주의의 특성으로 묘사하는 여러 가지 설명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데, 특히 호튼이 옹호하는 ‘5대 강령’ 칼빈주의 체계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 그 점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호튼이 쓴 이 책과 짝을 이루는 나의 책 『칼빈주의 반대』(Against Calvinism [Zondervan, 2011])를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호튼이 내 주위에서 가장 다정하고 가장 우호적인 진정한 칼빈주의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정한 칼빈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런 교리들을 바르게 믿고 그런 교리들이 복음에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호튼은 참으로 학자인 동시에 점잖은 그리스도인인데, 그 점은 이 책에서 증명된다. 이 책에 제시된 칼빈주의에 대한 설명과 변호는 단호하지만, 그렇다고 오만하거나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고전적 형태의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에서도, 호튼은 내가 종종 칼빈주의자들의 논법에서 발견하는 것 같은 형태의 고의적인 허위 진술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논법들은 관점의 문제다. 호튼은 주로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비판하는데, 내가 그런 비판을 고맙게 여기는 것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순전히 거짓된 복음이나 ‘다른 세계관’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것보다 그런 비판이 더 낫기 때문이다.

호튼이 자세히 설명하고 변호하는 칼빈주의에 관해 내가 근본적으로 항의하는 점도 마찬가지로 칼빈주의에 나타나는 일관성 부족이다. 그런 항의가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하고 의아해할 독자도 더러 있을 텐데, 나는 호튼과 내가 ‘어리석은 일관성’과 같은 개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튼이 즐겨 말하듯이(그리고 나도 거기에 동감하는데) “만일 우리가 메시지를 알리고자 한다면, 먼저 그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편이 낫다.”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일의 일환은 그 메시지가 명료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 견해로는 이 책에 표명된 신학, 곧 높은 수준의 언약적 칼빈주의가 아담의 타락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과거에 미리 정해졌고 지금도 미리 정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정당하고 필연적인 결과로서’ 부득불 하나님을 죄와 악의 장본인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꿔 말해, 나는 이런 신학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손상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서(그리고 더욱 적게는 고등한 칼빈주의를 변호하는 다른 책들에서) 칼빈주의자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손상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지지되는 신론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선하신 하나님과 관계있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그런 견해에서 몇몇 요소로 인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포함된 특정 측면들이 무효화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학은 역사적으로 인상적인 내력이 있으며, 호튼이 논증하듯이 성경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다.

칼빈주의를 가능한 한 최대로 지지하는 논증을 읽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유익하고 매력적이고 명쾌하고 자기비판적이다. 이 책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토론과 논쟁에 유익하게 기여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핵심적 주장들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조건으로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다. 오늘날 신학 논쟁의 풍토에서는 그런 태도가 일관성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잘못된 것이다. 헌신적인 동시에 공정하고, 비판적인 동시에 관대한 태도를 갖는 것은 가능하다. 이 책은 그 점을 입증하며 진심에서 우러난 나의 보증이 그 점을 밝히 보여 준다.

-로저 올슨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개혁신학 사상가가 안내하는 기독교 교리 여행
이 책은 마이클 호튼의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2012년 ‘크리스천투데이 올해의 책’ 수상)에 기초한 요약본으로, 보다 넓은 독자층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저작된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 다양하게 제시된 교리를 탐구하고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핵심 교리를 정리한 도표와 질문을 통해 필수적인 신학 용어의 구분이 필요함을 제시하고, 분별력 있는 신앙과 신학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성경적·역사적 토대를 쌓기 원하는 모든 성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 대해..
설교와 설교자가 있다. 교회도 있고, 많은 프로그램도 있다. 교회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기독교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거기에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시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복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진리/복음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 책은 왜 오늘날 기독교가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떨어지다 못해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의 모습은 얼마나 허망하며 끔찍한지를 거침없이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펠라기우스주의, 조엘 오스틴의 형통 복음, 이머징 교회 운동, 영지주의 영성이 가져온(또 가져올) 끔찍한 폐해에 우리가 정직하게 직면한다면 우리는 저자가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실제적인 대안 또한 거침없이 제시하고 있는 후반부를 읽으면서 크게 기뻐하며 용기를 낼 것이다. 이 책은 온갖 인본주의가치관과 자아중심적 세계관에 빠져 병들어 있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 가장 탁월한 치료약이 될 것이다.


포로 된 교회를 해방하라
윌리엄 윌몬 (연합감리교회 감독)

 
우리는 북미주에 있는 교회들이다. 보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 복음주의든 주류교단이든,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교회 갱신을 주장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우리는 아무튼 간에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 다운사이징을 하느라 분주하고, 문화적으로 좀 더 적응력을 갖기 위해서 바쁘다. 이뿐이랴. 선교를 떠나고, 새신자들을 끌어들이고, 제자훈련을 하고, 예배에 동원되는 기계들을 관리하고, 성경적인 원리들을 극대화하고, 회복을 축하하고, 새가족이 편안하게 정착하도록 하고, 첨단 프레젠테이션 기술에 뒤떨어지지 않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발견하고, 정의구현을 위해 평화 운동을 하고, 영적인 제자도를 만들고, 자아상을 높이고, 우리 자신을 좀 더 효율적인 기업형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아니 무엇보다 우리가 이룬 일들에 대해 좀 더 뿌듯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필사적이다.

이 멋진 그림에서 빠진 게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가 지은 거칠고, 섬뜩할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 『현명한 피』(Wise Blood)에서,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인 목회자 헤이절 마티스(Hazel Motes)는 다른 목회자들을 경멸하는 사람인데 이런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에서는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에는 구속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구속할 죄가 없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죽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1) 나는 오코너의 작품이 극단적이고, 설마 그럴 리가 하고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풍자를 담고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이클 호튼이 나와서 지금 우리의 교회 현실을 “그리스도 없는 교회”라고 하는 게 아닌가! 호튼은 우리가 기독교 역사 전체를 들여다봐도 결코 떠오르지 않는 괴물을 만들었노라고 일갈한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우물쩍거리며 설교를 하지만, 찔림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때 화염과 연기를 발하시던 하나님은 갑자기 상냥해지셨다. 복음에는 거치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아마 우리가 거칠 것이 없는 사람으로 길든 탓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만만하지 않은 조건을 꿈쩍도 않고 부과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무릎 꿇을 수 없으니까, 우리 입맛에 맞는 신을 하나 고안해 냈다. 현란하고, 현대적인 기독교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 책은 거칠다. 그러나 역작이다. 거리낄 것 없이 치고 나가고, 정통한 개혁 기독교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의 처량하리만큼 낡고, 절충적이며, 오냐오냐하는 교회는 이 책에서 도마 위에 올라 날카로운 신학적인 비판을 당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재 앓고 있는 신학적 질병의 근원이 노출되고,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더 애지중지하기 시작할 때 어떤 전복이 일어났는지 보게 된다. 현대 교회에 만연한 따분함과 판에 박힌 모습들이 거칠게 공격당한다. 마이클 호튼은 우리가 빠져 있는 곤경을 충격적이고, 피할 수 없는 솔직함으로 진단한다. 심리요법적이고 공리적인 이신론을 들춰내서 못 박아 버린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막강한 무기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물리쳐 버린다. 으레 말하는 복음주의란 바람 빠지고, 문화적으로 절충된 자유주의의 최신판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나도 찔림을 받았다. 로버트 슐러의 내용 없는 교회론이 우리 모두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내 설교도 조엘 오스틴의 설교에 비해 약간 덜 우스꽝스럽고 약간 덜 물 탄 것에 불과하다.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 내 큰 탓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비판 일변도만은 아니다. 호튼은 놀랍도록 희망적인 주장도 적극 펼친다. 그의 외침은 직설적이지만 힘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예수로 귀납되는 이 시비 거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복음, 이 위대한 지적 유산을 팔아 치우고, 겨우 심리학으로 물들고 실용주의적이며, 공리주의적인데다가 자기계발이라는 잡동사니를 사들인 우리를 용서하신다.

호튼은 기쁜 마음으로 상기시킨다. 신학적인 사색이, 우리를 늘 바쁘게 만들지만 영양가는 하나도 없는 온갖 잡무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복음이 윌리엄 제임스, 혹은 찰스 피니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수많은 후계자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죄인들을 사랑하고 침노해 오는 하나님 왕국 안으로 그들을 들어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굳은 결심은 인간의 진정한 조건을 놓고 볼 때, 자기도취적인 북미의 소비자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 주려는 우리의 급한 마음보다도 훨씬 더 적합하고 적실하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막힌 모험으로 떠나보길 바란다. 호튼이 펼치는 복음 구출 작전을 통해서 부르르 떨쳐 일어나는 기독교, 이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흠뻑 빠져들기 바란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문화적인 억압에서 해방될 것이고,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함으로 자유롭게 예배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그리스도가 기독교 안에 계시도록 하자.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를 고치는 특효약
복음을 복음답게, 율법을 율법답게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현대 교회의 그리스도없는 기독교 증상

문: 사탄이 한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면 어떤 모습일까?
답: 교회는 매주일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사탄이 만들려고 하는 교회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인가, 아니면 '그리스도 없는 교회'인가? 호튼은 이 물음에 대해 오늘날 미국 기독교의 현실을 한 마디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고 진단한다. 이것은 자유주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유주의와 복음주의를 막론하고 미국 교회 전반에 대한 진단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선언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어떠할까? 우리는 미국 교회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미국 교회에서 만든 제품을 가장 빠른 시간에 직수입해서 쓰고 있는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의 쌍둥이라 해도 좋을 터인데, 호튼이 말하는 미국 교회의 현실이 한국 교회에서도 그대로 복사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바짝 긴장하고 호튼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호튼은 현재 미국 교회의 메시지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막론하고 "더 열심히 하세요. 더 노력하세요" 일색이며, 보수 진영에서 자유주의 진영에 이르기까지, 로마 가톨릭에서 재세례파에 이르기까지, 뉴에이지에서 남침례교에 이르기까지, 미국 교회의 '영성 탐구'에 대한 열광적 분위기에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의 증상을 발견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그리스도 없는 중세 교회를 '바벨론의 포로 된 교회'라 불렀듯이 호튼은 '그리스도 없는 미국 기독교'를 '미국 문화의 포로 된 교회'로 생각한다.

펠라기우스주의적 도덕주의
호튼은 미국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증상을 질병명을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가 말한 '도덕적이 심리적인 이신론'이라고 규정한다.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적이고 심리적인 이신론'의 핵심 내용은 첫째,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이 착하고, 멋지고, 서로 공평하기를 원하신다. 세째, 인생의 중심 되는 목표는 행복이고, 자신에 대해 뿌듯하게 느끼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할 때 외에는 사람의 삶에 굳이 간섭하지 않는다. 다섯째, 착한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었으며, 그러므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이고 심리적인 이신론'의 신학적인 명칭은 펠라기우스주의다. 호튼은 미국 교회가 펠라기우스주의로 심하게 기울기 시작한 것은 2차 대각성 이후 즉 찰스 피니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찰스 피니는 미국 교회에 펠라기우스를 유행시킨 전도사였다. 오늘날 미국 기독교의 심각성은 찰스 피니의 이러한 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이 미국 교회에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명목적으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까지도 일부 침투했다는 점이다.

미국 기독교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펠라기우스주의적 경향은 종교개혁에 역사적 뿌리를 둔 교회들에서조차 드러나고 있다. 크리스천 스미스와 제임스 헌터와 같은 종교사회학자들은, 루터파 교회와 개혁 교회의 평신도들이 이와 똑같은 전제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기억시킨다. 로버트 슐러도 그렇지만, 노만 빈센트 필이 미국 개혁 교회에서 안수받은 목사였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좀 더 보수적인 장로교와 개혁교회들에서도 스미스가 지적한 도덕론적이고 심리요법적인 이신론에 딱 맞아떨어지는 설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주류 교단의 신학자인 브라이언 게리쉬는 위기의 본질을 이렇게 진술한다. "은혜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증언이 16세기보다 현재 더 절박하게 필요하다. 지금은 개혁교회들에서도 펠라기우스주의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조엘 오스틴 비판
오늘날 미국 교회에서 이러한 펠라기우스주의적 도덕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조엘 오스틴이다. 조엘 오스틴은 베스트셀러가 된 <긍정의 힘>과 <잘되는 나>라는 책과 레이크우드 교회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미국과 전 세계에 이러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호튼은 '개신교 자유주의에서 나온 일종의 부드러운 도덕주의가 슐러를 통해 복음주의의 주 메뉴가 되었고' 오스틴은 "입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얻어라"라는 형통주의 철학을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라 말하면서 오스틴의 신학은 ' 펠라기우스주의의 자기 계발과 영지주의의 자기 신성화가 접목된 형태' 라고 진단한다. 조엘 오스틴의 책은 미국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에서도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 교회에도 조엘 오스틴의 긍정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병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한 사람도 별로 없고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책을 제시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 심각한 병은 점점 더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염되고 있다. 물론 왜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잘되는 나>에서 가르치는 자기 계발식 메시지가 문제가 되는가?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항변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살면 된다는 조엘 오스틴의 메시지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호튼은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오스틴과 요즘 활동하는 다른 많은 설교자들이 약속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리스도가 없어도 된다. 유명한 자기계발 강사 토니 로빈스처럼 성경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복음서들에 약속된 구속과 같은 것도 필요 없다.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하나님이 필요할 데가 어디 있을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인들에게는 더 나은 가정, 재정, 건강 혹은 나아가서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예수가 필요 없다.


맥클라렌의 이머징 교회 운동 비판
최근 미국 복음주의에서는 맥클라렌 같은 인물이 주도하는 다소 자유주의신학적 성향과 신비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머징 교회 운동이 떠오르고 있다. 호튼은 '조엘 오스틴의 형통복음에 나타나는 자기도취와 개인주의와는 동떨어져 있기는 하나 맥클라렌의 메시지는 중요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오스틴이 말하는 죄와 구원은 하나님에서 도덕적 개선을 통한 자아의 행복과 향상으로 옮겨갔다면, 맥클라렌에게서는 지구온난화, 가난, 에이즈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탐심으로 옮겨간 정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스틴은 구원을 전적으로 지금 여기에서의 형통이라 말하는 반면 맥클라렌은 주로 지금 여기에서의 평화와 정의라고 말한다.' 이 두 경우 모두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형동 복음을 주장하는 조엘 오스틴 류의 <믿음의 말씀 운동>이나 맥클라렌 류의 <이머징 교회 운동>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호튼은 이들은 복음과 율법을 혼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복음을 "지금의 길에서 돌이켜서 새로운 길을 따르라"고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초대(맥클라렌)라고 규정하든, 혹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오스틴)라고 하든, 우리는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고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가 죽음, 정죄 그리고 죄의 폭정을 종식시켰고, 장차 영광과 권세 가운데 다시 오셔서 먼저 심판하신 후 이어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하늘의 선언과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와 닮은꼴인 미국 기독교 영성
펠라기우스주의적 도덕주의와 더불어 최근 미국 기독교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영지주의적 영성이다. 영지주의는 오늘날 '뉴에이지' 혹은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종교 시장의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되고 있다. '영성에 대한 탐구'가 미국의 시사 잡지 커버스토리에 자주 등장하고, 역사학자, 사회학자, 소설가 등이 '영성'이라 부르는 영지주의적 탐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호튼은 복음주의자들이 자주 진리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실은 복음주의자들의 예배, 전도, 영성은 역사적인 기독교라기 보다 여러 면에서 몰몬교나 뉴에이지 그리고 자유주의자를 닮았다고 말한다. 미국 영지주의 전문가 브룸에 따르면 고대 영지주의는 즉 브룸은 유대교와 기독교 신비주의, 피오레의 요아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재세례파, 천년왕국 열광주의자, 내면의 빛 분파주의자, 미국의 모든 초월주의(위트만, 소로 그리고 에머슨), 몰몬주의,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역사를 통해 계속적으로 다양한 변종의 모습으로 지속되어왔다. 그렇다면 최근 미국의 영성이 고대 영지주의자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요소란 무엇일까? 호튼은 고대 영지주의와 최근 미국의 영성을 이렇게 비교한다.

루프가 고대 이단에 관해 논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시대 미국 영성에 관한 기술은 영지주의의 주요 특성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 특성들로는, "교리보다 경험을 우위에 둔다, 공적 제도가 아니라 사적이다, 인식의 문제를 피하고 신화적이고 몽환적이다, 공공의 종교가 아니라 대중의 종교를 지향한다, 부드럽고 마음 써 주는 신관을 가지고 있다" 등이다. ..고대 영지주의처럼 우리 시대 미국인들이 영성에 접근하는 방법은 전형적으로 개인적인 관계의 축으로서 내면의 영을 강조한다.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변형판들마다 표면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호튼은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미국 기독교를 관찰했을 때, 오늘날 개신교 자유주의와 개신교 복음주의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 기본적인 종교 형태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한다.


미국제 기독교의 특징:펠라기우스주의와 영지주의의 결합
호튼은 현재 미국제 종교의 특징을 도덕주의와 신비주의의 결합으로 본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펠라기우스주의와 영지주의의 결합이다. 현대 미국 기독교는 바로 이 두 가지 이단이 결합한 절묘하게 결합한 형태라는 것이 호튼의 주장이다.

펠라기우스주의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로 귀착된다. 구세주가 아니라 좋은 모범이 필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 이르는 영지주의의 길은 선한 창조주, 죄를 부른 타락,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처참한 죽음 그리고 육체의 부활 이야기를, 한 악신, 물질을 악하게 한 타락, 내면적인 계몽으로 인한 구속이라는 신화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서 우리 밖을 보도록 하는 반면, 펠라기우스주의와 영지주의는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안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이 둘은 합쳐서 미국제 종교라는 완벽한 기습작전을 성공시켰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다시 회복하는 길
펠라기우스주의건 영지주의건 이 모든 그리스도없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복음이 없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고, 결국 각기 독특한 복음없는 율법을 주장한다. 호튼은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는 것은 타락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기독교라고 전혀 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는 어떤 형태의 자력구원을 가정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튼은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복음과 율법이란 무엇인가? 호튼은 복음과 율법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말한다. 율법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말한다. 이 둘은 아주 다른 말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지쳐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호튼의 진단에 따르면 복음이 강조되지 않고 복음없는 율법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복음의 이야기를 강조하기 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해야 할 요구사항만 자꾸만 늘어놓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를 벗어나 다시금 그리스도 충만한 기독교로 변화될 수 있을까? 질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바른 치료를 할 수 있다. 호튼에 따르면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복음과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채 율법과 복음을 혼동한 것이며, 결국 교회가 복음을 복음답게, 율법을 율법답게 선포하지 못하고 복음없는 율법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튼의 해결책은 명확하다. 복음과 율법의 차이를 바로 알고, 복음과 율법을 바르게 선포하며 복음을 복음답게 율법을 율법답게하는 길이다. 호튼의 책을 읽고 나면 호튼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율법은 복음이 아니다. 이 차이를 자각하고 나면, 복음은 복음, 율법은 율법으로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은 율법, 복음은 복음이 되게 하자.

이제부터 호튼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라. 첫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둘째,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셋째, 복음과 율법의 차이는 무엇이며, 복음과 율법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 또한 그리스도없는 기독교의 일원으로 살아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율법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복음의 원수로 살아가는 것 곧 성경이 말하는 '다른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호튼의 여러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복음과 율법'의 의미였다. 그동안 호튼의 <세상의 포로된 교회>, <언약의 하나님:언약신학 입문서>등을 통해서 복음과 율법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를 통해서 교회사의 모든 이단들이 사실 이 복음과 율법의 의미를 혼동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자유주의와 복음주의를 막론하고 오늘 우리시대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를 만든 가장 중요한 뿌리요 원인이 '복음과 율법의 혼동'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호튼의 기존의 책들을 통해 복음과 율법의 원리를 배웠다면, 이번 호튼의 <그리스도없는 기독교>를 통해 복음과 율법의 실전을 배운 느낌이다. 복음과 율법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요,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를 형성하는 데 기초다. 나는 앞으로 호튼의 <그리스도없는 기독교>가 우리 조국 교회가 다시금 복음과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달고 복음의 중심인 그리스도로 충만한 기독교가 되는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이클 호튼의 신선하고 해박한 사도신경 해석과 적용!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의 본질과 의미를 밝혀 주는 역작.

 

나는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많은 도전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신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책은 사도신경에 분명히 진술된 기독교의 '핵심'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의 핵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켜 줄 것이다. 이 책은 구속사에 나타난 사도신경의 기본 순서를 따른다. 다시 말해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개과정에 나타난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사도신경의 각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독교의 주장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다룰 것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이해와 '포스트모더니즘' 사고방식이 팽배한 오늘날의 현실과 연결해서 기독교의 주장을 설명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몸소 행하신 일들을 좀더 잘 이해하고 인정하고 감사하기를 원하는 여러분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마이클 호튼
현재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주의 조직신학자로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신학과 철학, 성경신학과 현대 신학에 모두 박학다식한 학문성을 바탕으로 학문적인 글쓰기만이 아니라 현대 복음주의 교회의 세속화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성경적인 개혁을 제시하는 대중적인 글쓰기도 병행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바이올라 대학교를 마치고 프랑스에 있는 국제 인권문제연구소와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위클리프 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마이클 호튼의 저서로는『복음이란 무엇인가』,『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핵심』,『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주기도문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세상의 포로된 교회』,『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개혁신학의 뼈대를 세워주는 언약 신학』등이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마이클 호튼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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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부흥과개혁사 마이클 호튼 시리즈 세트(전10권)
저자마이클 호튼
출판사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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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1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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