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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획

현대 신학자 평전 세트 (전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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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천사무엘,최신한,김명수,정기철, 그 외 7명  |  출판사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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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등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 한신대출신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바로 그 한신대를 세우고 한 평생 지켜온 사람이 김재준 목사라는 것도 알고 있는가?

그의 삶은 평생 싸움의 삶이었다. 유교 사상에 경도된 아버지와의 싸움, 서울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유학 기간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던 가난과의 싸움, 목회와 교육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과 대면했던 근본주의와의 싸움, 군부 독재와의 싸움 등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싸움의 중앙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육에의 열의를 잃지 않았고,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있어 한국 교회는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으며, 그가 있어 한국 사회는 좀더 건강해질 수 있었다. 이 책 '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을 쓴 천사무엘 교수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의 여정과 그가 직접 말했던 것,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추적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천사무엘 교수는 방대한 김재준 전집을 일일이 검토하고 ‘범용기’ 등 김재준 자신이 썼던 글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필요한 부분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다.

창꼴 마을에서의 어린시절부터 서울, 일본, 미국으로의 유학 시절, 조선신학원의 설립과 근본주의와의 갈등, 기장의 출범과 군부 독재와의 투쟁 등 이 책에서는 그의 삶을 제3자적 입장에서 될 수 있는 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신학자 김재준의 열정과 땀과 눈물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김재준은 함북 경흥 출생으로 일본 청산학원 신학부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주립대학교 유니온 칼리지에서 명예신학박사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경동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으며, 한국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대학교를 설립하고, 한국신학대학교 교수 및 학장으로, 한신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대한일보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삼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위원장, 민주수호 국민협의회 공동의장, 북미주 한국인권 수호협의회 회장, 북미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위원장, 북미주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 의장 등 군부독재에 맞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87년 사망했다.

그는 평생 성경 본문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절대시하는 근본주의에 맞서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포함해야 함을 강조했고 이로 인해 장로교에서 분열하여 기독교 장로회를 세우게 된다. 또한 군부 독재에 맞서 의를 지키기 위해 몸소 실천한 실천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교육자였다. 한국신학대학을 세우고 이곳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학자이자 선생님이었다.
우리에게 슐라이어마허는 너무나 낯설다. 하지만 딜타이나 하이데거, 가다머, 리쾨르에 이르기까지, 또한 레비나스와 데리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해석학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이 슐라이어마허라고 한다면 그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게다가 그가 키에르케고르, 불트만, 틸리히 등 실존주의적 사고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면 어떤가? 그는 각자의 삶이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도외시하지 않았으며, 이 속에서 무한한 존재인 신의 만남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슐라이어마허 - 감동과 대화의 사상가'를 집필한 최신한 교수는 국내에 몇 안되는 슐라이어마허 전문가이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슐라이어마허의 책들은 거의 대부분 그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학적 추구와 글쓰기를 지향해 온 최신한 교수의 힘이 느껴진다. 서문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국내의 지적 갈증을 다소간 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아무런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지는 않는다. 엄밀하지만 친절함을 겸비하고 있기에, 글을 찬찬히 따라가 본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슐라이어마허가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며, 현대 사상의 한 축을 이해하게 되는 덤까지 얻게 될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독일 개혁교회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레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및 고전학을 공부하였으며, 목회활동과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할레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훔볼트와 함께 베를린대학을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으며, 이곳에서 신학부학장 및 철학부 교수, 그리고 베를린학술원 회원을 지냈다.

고전 문헌학자로서 플라톤 전집을 독일어로 옮기는 등 독일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철학자였고 베를린 삼위일체교회 설교자로서 국가와 교회의 개혁을 주도한 실천적 지성인이었다. 1834년 사망했다.

현대 신학자 평전 11 |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안병무 - 시대와 민중의 증언자

 

시대와 민중의 증언자

 

"어쩌다 내 일생에 주어진 중심 테마가 "예수만" 이라는 것이 되었나 하고 생각하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사상적인 혼란이 왔을 때도, 어떤 현실적인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예수만을 찾으리라! 그만 붙잡고 가리라! 이것이 내 일생의 재산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따르려면, 본격적으로 그를 붙잡고 그 산으로 올라가십시오. 어쨌든 내 생명 다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은 놓지 마세요. 끝까지 이 십자가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안병무는 신앙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특정 교리나 상에 매어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증언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에게 마치 벼락처럼 예언자의 소임을 다했다. 그런 과정에서 안병무는 교회주의자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결코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을 신학의 화두로 제시하여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기독교의 교리가 아닌 예수의 생생한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안병무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며 살았던 치열한 사상가요 실천가였다.

무신론의 시대를 헤쳐 온 융엘

 

1934년 12월 5일 엘베 강가의 막데부르크(Magdeburg)에서 태어난 융엘은 나움부르크/잘레(Naumburg/Saale)에 있는 신학교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베를린(Berlin), 취리히(Zurich)와 바젤(Basel) 대학 등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1961년 <바울과 예수>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동베를린 신학대학에서 교수자격논문을 제출하여 신약학사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가 교의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 후 1966년부터 1969까지는 취리히 대학에서 조직신학과 교의학사 교수로 봉직했다. 1969년부터는 튀빙엔(Tubingen) 대학 조직신학과 종교철학 교수로 활동했고 같은 대학 해석학 연구소 소장을 겸직했다. 1987년부터는 튀빙엔 복음주의 신학재단의 교장직도 수행했고, 1999년 정년퇴임한 후로 여러 종교재단의 교장직과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산주의 시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융엘은 공산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교회 탄압이 아니라 오히려 무신론이었음을 보게 되었고,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함으로써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교회만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을 가장 좋아하는 융엘은 그 자유케 하는 진리를 알기 위해 교회를 위한 학문의 길을 떠나게 된다.

 

진리의 현대적 해석자, 융엘의 사상

 

융엘이 순례자처럼 어떤 한 학자나 학파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현대인들에게 말하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에 어떤 이들이 있을까? 어떤 학자들이 융엘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을까?

 

철학교수였던 스탐러에게서 칸트 철학을 배운 융엘은 새로운 해석학의 주창자인 신약학자 에른스트 푹스(Ernst Fuchs)에게서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받았다. 푹스에게서 하이데거(Heidegger) 철학과 불트만(Bultmann)을 연구하도록 권유받은 후 그들의 사상에 대해 공부했다. 취리히에서는 에벨링(Gerhard Ebeling)을 통해 루터의 사상을 접했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강의를 들었으며, 바젤에서는 바르트(Karl Barth)의 강의를 들었다. 이런 여정을 볼 때, 융엘은 진리를 현대적으로 말하기 위해 해석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서 정통 신학과 말씀의 신학, 인간의 삶에 대한 실존적 이해 등을 통해 폭넓은 사유의 스펙트럼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성서해석은 불트만 학파에 속한다 할 수 있지만, 그가 바르트의 조직신학 계열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도 한 학파에 정착하기보다 무엇이 진리인지 끊임없이 탐구해 가는 그의 학자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융엘의 사상에 대해 기독론, 신론, 인간학, 자연신학, 해석학 그리고 칭의론이라는 주제들에 대한 융엘의 입장을 정리하여 접근하고 있는데, 이를 요약한 저자의 입을 빌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석학은 융엘 신학의 신학적 단초이다. 그 출발점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 ……

둘째, 말씀 신학에서 시작하는 그의 기독론의 논쟁점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란이었지만 역사적 증명뿐만 아니라, 신앙적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을 포함시킴으로 해결한다.

…… ……

셋째, 무신론의 주장인 ‘신의 죽음’을 신학적 차원에서 답하면서 죽음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준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만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밝힌다.

…… ……

넷째, 『하나님의 존재는 되어감 속에 계신다』라는 책 제목에 드러나 있는 신론의 핵심에서 ‘되어감’은 대상으로서의 존재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으로, 행위 속에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 ……

다섯째, 무신론 시대의 하나님의 사유 가능성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신의 본질과 신의 존재를 통일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

…… ……

여섯째, 바르트와 브루너의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논쟁에서 융엘은 바르트를 따라 계시신학을 옹호한다.

…… ……

일곱째, 융엘은 칭의론을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본다.”(250-252쪽 중에서)

하이데거, 불트만, 푹스, 에벨링, 그리고 바르트와 같은 이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어느 한 학파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진리의 이해를 위한 해석학적 이해 속에서 십자가 신학의 기독론에 근거한 논의들을 펼쳐가고 있는 융엘, 그에 대한 평가는 독일 신학자의 전형이라는 평가에서부터 신학을 사변화시킨 장본인이라는 평가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이러한 평가 중 어떠한 평가가 융엘을 가장 잘 이해한 것인지, 융엘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앞으로 우리의 신학적 논의가 깊어질수록 깨달아 갈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융엘은 현재 생존해 있는 독일 신학자 중 몰트만과 판넨베르크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대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융엘의 사상은 불트만 학파, 특히 푹스와 에벨링의 해석학적 학풍과 바르트의 신학 사상의 융합으로 형성되었다. 또한 하이데거 사상에도 빚지고 있다.…그러나 융엘은 바르트나 불트만 학파의 어느 편에 서지 않았다. 그 보다는 개혁가들의 사상을 더 중시했다. 그것은 항상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정신을 소유한 자들로, 모든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좋은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바로 그 겸손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한다.”

 

- 맺음말 중에서


 

잊혀진 거목을 찾아서
한국 기독교 출판에 한 획을 그은 기획 ‘현대 신학자 평전’ 시리즈의 16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는 한국 신학의 잊혀진 거목 정경옥을 국내 최초로 본격 소개한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 많지 않지만, 정경옥은 박형룡, 김재준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1930년대의 대표적 신학자. 한국 신학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한국 신학의 광맥』에서 유동식 교수가 평한 그대로다. “그의 공적은 혜성같이 뚜렷했다. 그의 활동 기간은 혜성같이 짧았다. 그리고 혜성이 사라진 후 기억하는 이가 적듯이 오늘날 신학자 정경옥 교수를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정경옥은 1930년대 감리교신학교 교수를 지내며, 진보적인 감리교 신학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1935년도에 저술한 『기독교의 원리』는 한국 감리교회의 신앙고백인 ‘교리적 선언’을 해설한 것인데, 지금도 감리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힌다. 그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업적이라면 조직신학자로서 한국 최초로 체계를 갖춘 조직신학 개론서인 『기독교신학개론』(1939)을 저술하여 한국 교회에 학문적 신학의 장을 마련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더불어 저자는 ‘시대화’와 ‘향토화’를 역설하며 토착화 신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토착화 신학의 개척자로서의 면모도 이 책에서 제시한다. 독학으로 성서를 연구, 득도하여 천태산 골짜기에 은둔해서 수도생활을 하던 이세종이라는 이를 만나 감화를 받은 정경옥은 조선의 토양에서 성경을 읽으려 노력했고, 예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정경옥판 예수전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이렇게 살았다』(1938)였다는 것이다.

정경옥 신학에 대한 재평가: 종합적 복음주의 신학
저자는 정경옥을 그저 자유주의 신학자로만 보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정경옥이 실제로 슐라이어마허, 리츨, 프랭클린 롤 등 자유주의 신학자의 영향을 받았고, “신앙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요, 신학에 있어서는 자유주의란 입장을 취한다.”라는 말을 남긴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주의 신학자로 쉽게 규정될 수는 없음을 주장한다. 정경옥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을 신학의 4대 표준으로 삼고 있는 웨슬리 신학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1932년『신학세계』에 실린 「위기신학의 요령」이란 논문에서 보듯,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바르트 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자유주의를 비판한 인물도 다름 아닌 정경옥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신학적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적 신학과의 균형을 도모한 그의 신학을 ‘종합적 복음주의 신학’ 혹은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신학’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불필요한 오해의 장막을 걷어내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함은 물론, 이것이 그의 신학에 대한 통합적인 평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속으로

▶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다. 정경옥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오던 중 어느 날 마음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네 이놈, 개릿 신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의 내용을 필기한 노트 열 상자를 믿고 공부를 게을리하려고 하느냐? 이것이 너의 우상이 될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후 그는 선원실에 들어가 그 상자를 창고에서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선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정경옥은 선장에게 달려가서 사정을 했다. 다행히 내주어서 열 개의 상자를 전부 태평양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하여 정경옥은 자기가 읽은 것을 기록해 둔 노트에 의존하지 않고 늘 새롭게 책을 읽고 연구생활을 하고자 하였다.(16쪽)

▶ 낙향 이후 정경옥의 생활은 단순한 삶이었다.
“내가 이 마을을 찾아 온 후로 나의 생활은 극히 단순하다.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을 가질 수 있는 흙의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기쁘다. 노동하는 것, 세끼 밥 먹는 것, 밤이면 잠자는 것, 이런 것밖에는 아무런 원망도 공명심도 없이 운명을 달게 받고 그날그날을 즐기는 단순한 생활이 그 얼마나 거룩한가. 자동차를 타고 먼지를 피우며 거리를 달리는 것보다 꽃 피고 새 노래하는 들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 보는 것이 얼마나 깨끗하고 엄숙한가.
어제도 종일토록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웠다.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노래도 부르고 뛰기도 하였다. 이 세대는 목표도 없이 바쁘게 서둘기만 하는 것 같다. 복잡하게 늘어놓기만 하고 통일도 조화도 조직도 없다. 누구나 힘은 적게 들이고 이익은 많이 얻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따지고 권리를 다투고 원수를 맺는다. 여기에서 감각은 발달하여 성화(聖化)되고 영은 시들어 천시를 당한다.
나는 아무런 비밀도 술책도 비방도 조롱도 가장도 외화도 없는 이 마을의 생활을 숭경(崇敬)한다.“
정경옥은 1937년 3월부터 1939년 3월까지 고향인 진도에서 고향의 ‘흙’을 밟으며 단순한 생활을 하는 동안, 몇 사람의 친구, 혹은 몇 사람의 원수로 살았던 자신을 반성하고 ‘모든 사람의 원수’와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신 예수를 사모하게 되었다. 결국 정경옥이 고향에서 재발견한 것은 예수였다.(25-26쪽)

▶ 정경옥은 신학의 사명을 ‘시대화’와 ‘향토화’로 제시하였다. 시대화가 기독교의 독자적 전통을 ‘시대가 이해하고 요구하는 방법에 의하여’ 진술하는 작업이라면, 향토화는 그 전통을 ‘각각 자기 문화에 대한 자아반성’을 바탕으로 ‘각자의 문화 형태에 비추어’ 설명하는 작업이다. 시대화 작업을 통해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독교 전통을 오늘에 재생하고 향토화 작업을 통해 나라와 민족 밖에서 형성된 기독교 전통을 여기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신학자는 기독교 전통 속의 진리에 확실해야 하고 시대의 흐름에 예민할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 고유의 문화 전통에도 진실해야 한다.(100쪽)

▶ 대체로 정경옥은 “나는 신앙에 있어서 보수주의요 신학에 있어서 자유주의란 입장을 취한다.”에서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측면만 꼬리표가 붙어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의 계시신학”의 입장에 서 있고, “바르트 신학의 근본정신에 찬동”한다고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서는 유난히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아마도 자유주의라는 부정적 인상을 씻으려는 한국 교회 특유의 에토스가 아닐까 한다. 특히 박형룡에 의해 진보적 경향의 모든 신학은 바르트의 신학일지라도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되었다. 박형룡은 슐라이어마허, 리츨, 하르낙의 구(舊)자유주의와 바르트주의를 구분 없이 사용하며, 이 전통은 아직도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자들에게 이어져 오고 있다.(87-88쪽)

정경옥은 누구?
1903년 5월 전라남도 진도의 철마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훗날 그가 자신의 호로 삼은 철마(鐵馬)는 이 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부잣집 맏아들로 어린 시절을 진도에서 보낸 뒤 서울로 유학,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에는 삼일운동 학생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당한다. 낙향한 뒤로도 그는 『독립신문』 등을 제작하여 배포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감옥 생활 중 성서를 접하고 기독교 신앙인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고, 결국 일본의 아오야마학원 대학, 감리교 협성 신학교, 개릿 신학교(B.D.), 노스웨스턴 대학(Th.M.) 등지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로는 1931년부터 감리교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는 해박한 지식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자세, 깊이와 넓이를 겸한 열정적 강의로 명성이 높았다. 교지인 『신학세계』 주간을 맡는 동안 60여 편의 신학논문을 발표했고, 감리교 신앙 고백서를 해설한 『기독교의 원리』(1935)를 집필했다. 그 후로도 예수의 생애를 그린 『그는 이렇게 살았다』(1938), 한국 최초의 조직신학 개론서인 『기독교 신학개론』(1939) 등을 저술했다. 1945년 4월 1일, 광복을 4개월여 앞두고 42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소천했다. 서구의 진보적 신학을 국내에 소개했을 뿐 아니라 ‘향토화(토착화)’의 선봉에 선 193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학자였던 그는 또한 학문과 영성이 균형 잡힌 목회자로 기억되고 있다.

복음주의 신학의 대변자

 

칼 헨리는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을 재확립하고 전홍적인 시앙을 적대시하는 현대성(modernity)에 변증적으로 반박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그리고 신학자 칼 헨리는 미국의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빌리 그레이엄이 복음주의 운동의 실천적인 지도자요 지미 카터가 복음주의 신앙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칼 헨리는 신학적 대변자, 즉 이론적인 측면에서 활동한 복음주의 신학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저자에 의해 코넬리우스 반틸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최초의 책


진정한 ‘개혁파 변증학(Reformed Apologetics)'을 제시하는데

전 생애를 바친 개혁파 변증학의 선구자, 코넬리우스 반틸을 드디어 만난다!


개혁파 변증학의 선구자, 반틸
“첫째, 우리는 장로교의 신앙 고백이 설명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참되다는 것을 믿습니다. 둘째, 우리는 기독교가 학적인 변증을 환영하며,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셋째, 우리는 두려움이나 편애 없이 그리고 교회 내에서든지 교회 밖에서든지 기독교가 죽음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반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분명히 반대하여 기독교를 선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929년 5월 25일, 구(舊)-프린스턴 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설립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개교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메이천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앙에 대해 위와 같이 선언했다. 이러한 신앙 고백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평생 철저한 개혁파 변증학을 수립하고자 힘썼던 코넬리우스 반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구-프린스턴의 신학적 전통과 신앙 고백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입각해 변증 작업을 할 때에는 찰스 핫지나 벤자민 워필드에게서 발견되는 약점들을 지적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전통이 성서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변증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전제하고 시작된다. 이러한 전제는 그의 기독교적 실재론이나 인식론, 가치론에 있어서 변함없이 일관되게 작용한다. 모든 존재는 궁극적인 존재인 하나님에게 의존하며, 그로부터 파생된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지식은 궁극적 존재인 하나님 자신의 온전한 성격과 지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의 완벽한 지식 안에서 완전히 해석된 세계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알고,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 없이는 참된 지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참된 가치들 또한 가치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반틸은 역사적 개혁파 신조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다고 하신 것만이 선하다고 주장한다.


반틸의 이러한 입장은 가장 철저한 개혁신학과 개혁파 변증학을 전개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기독교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철학이 계시에 기초해 전개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자가 서문에서 “코넬리우스 반틸은 20세기의 가장 철저한 개혁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자”라고 평가한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종, 반틸
반틸을 개혁파 변증학의 선구자로 얘기하면서,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보인 태도만을 생각할 때, 그를 극한의 이성적 사유를 추구한 철학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자(VDM: Verbum Dei Minister)라 불리길 선호했다. 실제로 존 프레임이나 에드먼드 클라우니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주 수려하고 도전적인 설교를 했으며, 그의 설교가 가르침보다 더 나았다고 한다. 반틸에 대한 비판 중에 철학적 논의를 신학적 입장에서 시작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는 그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서 그의 모든 사상적 체계를 놓고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인격의 사람, 반틸
또한 그는 따뜻한 인격의 사람이었다. 존 프레임은 반틸 자신의 책 안에 나타난 반틸은 강하고 대립자에게 가혹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자애롭고 매력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며, 그레그 반센도 “반틸을 개인적으로 안 사람들은 누구나 반틸이 원칙과 확신의 사람일뿐만 아니라, 따뜻함과 동정심을 지닌 사람임을 증언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학식이 많지 않은 이들과도 오랫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고, 자주 병원을 찾아 환자들을 돌아보고 기도하였으며, 양로원에서 기꺼이 설교하려 했던 반틸. 냉정한 이론가 반틸이 아니라 한 인간 반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또한 만나 볼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코넬리우스 반틸은 20세기의 가장 철저한 개혁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자이다. 물론 그는 평생을 변증학자로서 활동하면서, ‘개혁파 변증학’을 제시하고, 실제로 그런 입장에서의 변증 작업을 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의 철저한 개혁신학에서 온 것이요, 그의 독특한 변증학적 태도와 강조점도 그가 가진 개혁신학에 가장 충실한 신학과 변증 방법에 대한 추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의식적으로도 철저한 개혁신학을 추구하였으며, 그의 모든 독자들에게도 철저한 개혁신학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사람과 온 세상을 살피고 가장 철저한 개혁신학적 체계를 제시하여 그에 근거한 변증 활동과 증언을 할 것을 요구한다.

- 본문 중에서


개혁신학에 대한 그의 확신과 헌신을 보면서, 우리는 반틸을 개혁신학 전통 속에서 가장 철저하게 개혁파적 태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 정상(正常)을 회복한 또는 정상(頂上)에 이른 기독교의 참 모습을 믿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 강조하며, 특히 그런 신념과 입장을 가장 성경적으로 변증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실존적 신앙고백과 구원사의 신학

신약의 구원사건은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의 역사의 확대이자 그 결론이다

 

폰 란드의 신학적 뿌리는 철저히 마르틴 루터에 닿아있다. 폰 라드는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나 개혁교회 전통에서자랐다. 나치스 시대에 인간 히틀러가 우상이 되어가고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미증유의 역사적 혼돈을 경험한 젊은 시절, 폰 라드는 유대인의 성서인 구약성서를 연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치열한 실존적 고민을 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 그의 '신앙고백'의 신학이었다. 그리고 루터가 '개인적인 구원론의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 시대의 중심문제와 맞섰다면, 폰 라드는 '역사적인 구원사의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 시대의 중심문제와 맞섰다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헤르만 리덜보스는 신학생들이나 신학자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이지만, 일반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이름이다. 유럽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깜뻔신학대학으로 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깜뻔을 오늘날의 깜뻔으로 만든 사람이 헤르만 리덜보스이다. 이 글을 쓴 정훈택 교수 역시 깜뻔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자신의 스승의 스승이었던 리덜보스에 대한 평전을 위해 올 초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그와의 인터뷰를 갖고, 깜뻔신학대학교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등 벅찬 사명감으로 이 글을 완성했다. 그리하여 이 책 '리덜보스 - 교회를 위한 신학자'는 리덜보스의 집을 방문하여 그를 만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리덜보스 가문의 역할을 찬찬히 고찰한 저자는 리덜보스의 성장 과정, 두 교회에서 활동했던 목회와 깜뻔에서의 교수 시절, 잡지 발행인으로서의 임무, 실천의 모습 등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추적한 다음, 마지막으로 그의 주요 저술을 소개해줌으로써 어느새 그의 신학의 한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 책은 쉬운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어느 누구에게나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교회를 위한 신학을 위해 그가 한 평생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목회자, 교역자, 성도들이 과연 교회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위해 교회가 움직여지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헤르만 리덜보스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개혁교회의 테두리 속에서 살았던 신학자였다. 깜뻔신학대학교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졸업하고, 두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중 아버지에 뒤를 이어 깜뻔신학대학교에서 정년때까지 신약신학 교수를 지냈다. 우리가 그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신학연구가 상아탑에 갇혀 현란하고 수사적인, 그리고 난해한 논문만을 쓴 학자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결과를 교회라는 현장에서 적용가능하게 하기 위해 항상 고민했으며,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평생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전개해나갔다. 성경 부분에 대한 주석을 끝마친 후 늘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던 다음의 질문을 보면 이러한 그의 신학관을 확인할 수 있다.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
 
'내 학문이 내게 준 유익은 무엇인가? 내 교의학 또한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오직 신앙만이 나를 구원한다'
'신앙이 받은 약속은 세상을 이김이다. 이 신앙은 보편적이어서 때와 장소,어느 국가와 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신앙은 모든 상황에 적합하며, 본연적인 삶의 모든 형편과 연관되고, 모든 시대에 합당하며, 유익하며, 모든 환경에 적당하다.'
 
바빙크는 자신이 확신한 보편성 위에서 기독교와 문화, 일반 계시와 특별계시, 창조와 제창조 그리고 일반 은혜등의 문제에 대해 평생 동안 씨름하였다. 그가 취한 방법이나 남긴 업적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야 있겠지만, 그가 보편성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추구한 모습은 배울만하다

 
 

해석학의 역사와 새로운 해석학

 

본 책의 목적은 슐라이어마허,딜타이,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원리들과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학, 그리고 후기 하이데거 사상을 포함하는 해석학의

전 역사를 조명해 봄으로써 훅스와 에벨링에 의해 제기된'새로운 해석학'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 있으며, 이와 함께 성서 언어의 해석학적

이해에 대해'새로운 해석학'이 가지는 의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도리어 그 말을 풀이하여 그 손이'펴진 손'인지'주먹을 쥔 손'인지를 밝힐 때에만

그 말뜻을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성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밝히지 않고서는 성서를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바로 성서 해석학의 과제가 있다."

천사무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M.Div.)를 받았으며,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부(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를 졸업(S.T.M.)하고,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하트포드 한인교회, 새크라맨토 연합장로교회 등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최신한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헤겔연맹과 국제슐라이어마허학회 정회원이며, 한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명수
약력 충남 홍산에서 태어나 성균관 대학교, 한국신학대학, 그리고 동 신학 대학원을 거쳐 독일 함부르그 대학에서 수학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theol. Dr.).70년대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학생 운동에 연루되어 오랫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한국신학 연구소 학술부장을 역임한 바 있고, 부산 신학 대학교 교수 및 에큐메니칼 신학 연구 소장을 거쳐 현재 경성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그의 관심분야는 원시 그리스도교 예수 운동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와 탈 현대성 문제이며, 이 분야의 논문 40여 편이 지상에 발표되었다. 저자 도서 리스트 1 (현대신학자 평전11) 안병무 - 시대와 민중의 증언자 | 살림(출) 2 역사적 예수의 생애 | 한국신학연구소 3 초대 기독교의 민중생명 신학담론 | 한국신학연구소 4 그리스도교와 탈 현대성 | 대한기독교서회 5 매일성경첫걸음(사도행전) | 성서유니온 6 그룹 성경공부 지도 요령 | 성서유니온
정기철
정기철은 숭실대학교 철학과(B.A)에서 공부했으며, 독일 보쿰대학에서 철학박사(Ph.D)와 신학박사(Th.D)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시간, 해석학, 종말론 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Der hermeneutische Ansatz zu einer Theorie der Erzaehlung bei Ricoeur (1993), Das Zeitproblem in der Theologie unter besonderer Beruecksichtigung der Eschatologie(2004), 『시간 문제와 종말론』, 『종말론과 윤리』(이상 한들출판사), 『상징, 은유, 그리고 이야기』(문예출판사), 『해석학과 학문과의 대화』(문예출판사),  『설교자를 위한 성서해석학 입문』(공저, 대한기독교서회) 등이 있다. 편저로는 『철학과 신학』(한들출판사), 『성서 해석학』(한들출판사), 『신학적 해석학』(한들출판사), 『시간과 종말』(쿰란출판사) 등이 있으며, IVP에서 출간한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의 제5장 폴 리쾨르를 쓰기도 했다.
김영명2
한양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사후 88기)로 공군사관학교에서 근무하였다. SK텔레콤에서 근무하다가 신학으로 전향,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M.Div.), 호서대학교에서 한국교회사 전공으로 박사학위(Th.D.)를 받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천성교회 부담임목사로 섬기면서 배재대, 전주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양대목회자협의회 총무, ‘김영명의 신학과 세계(http://theology world.cyworld.com)’ 운영자, 한양대목회자협의회 상임총무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한국 감리교 인물사전』(공저, 기독교대한감리회)이 있다. 한국신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통신(소통), 통일, 통합의 삼통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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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현대 신학자 평전 세트 (전11권)
저자천사무엘,최신한,김명수,정기철,김영명2,박찬호,이승구,박호용,정훈택,유해무,소기천
출판사살림
크기(153*225)mm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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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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