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갓피플몰 앱   성경공부교재  교회 도서관  새신자선물  해외원서  도서대량주문  농어촌교회장터
  •  
  •  
  •  
  •  
 
성경연구

성경기획

95
구매고객 성향
남자 42% 58% 여자
교역자 34% 66% 성도
   
청년 0% 100% 장년
   
규장신앙위인북스 세트 (전9권)  
무료배송 상품입니다.소득공제도서정가제 
       
퍼가기
  
저자 : 오병학  |  출판사 : 규장
  • 판매가 : 63,000원56,700원 (10.0%, 6,300원↓)
  • 적립금 : 3,150원 (5.0%)
  • 배송비 : 무료배송
  • 지금 결제하면 05/27 월요일 출고 됩니다.  
    갓피플 출고
무이자 카드설명
주문수량  
  
규장신앙위인북스 세트 구성품중에서 일부는 품절로 세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청소년 및 초등부 고학년에게 추천하는 신앙위인 도서입니다.
 
내부이미지입니다. 크게 보시려면 아래 그림을 클릭하세요. ['세트이미지' 포함 총 5 페이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어요!!"

차별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로지 흑인 인권을 위해 맞서 싸운 마틴 루터 킹!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차별받는 흑인들을 위해 비폭력으로 맞서 싸움으로써,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역경과 시련에도 절대로 무릎을 굽히지 않았고,
끝까지 주님만 붙들고 나아갔습니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언 21장 21절)


"우리의 무기는 사랑과 무저항입니다.
이 무기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강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과 무저항의 무기로 승리한다면 후대의 역사가들은
반드시 '흑인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다'라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이 투쟁을 이끌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앞에는 승리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세상에 자유와 정의를 외치다

1963년 8월 29일, 마틴 루터 킹은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한 수십만 명의 군중을 향하여 이렇게 연설하였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그 노예를 부렸던 자들의 후손들이 형제의 사랑을 나누면서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것입니다. 그 꿈은 곧 야만성과 억압으로 가득 찬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땅으로 변화될 것을 희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그런 꿈이 있습니다…."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그는 서른아홉 살이라는 짧은 나이로 생애를 마쳤지만 그가 이루어놓은 일들은 짧은 생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으며,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이 살던 당시의 미합중국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상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들은 차별을 받았고, 온전한 국민으로 존중받지도 못했다. 노예의 족쇄만 풀렸을 뿐 교육, 생활, 취업 등 생활 곳곳에서 차별당하고 소외되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설움과 분노와 슬픔 속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원했고, 마틴 루터 킹은 이런 흑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다.
마틴 루터 킹은 세계 온 인류의 자유와 권리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상징이 되었다. 그의 투쟁 방법은 철저한 비폭력운동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불의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자유와 정의의 함성이 되어 온 미국과 온 세계에 메아리쳤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생전에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고,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직 침묵 속에서 정의만 외쳐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인류를 사랑하고 봉사했다고만 전해주십시오."

오병학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1929~1968

미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흑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비폭력으로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이다. 마틴 루터 킹은 유복한 흑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 투쟁을 보고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되고, 비폭력운동이야말로 흑인과 백인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갔다. 물론 이것은 원수도 사랑하신,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는 평생을 바쳐 평화로운 방법으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웠고, 그 결과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68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그의 삶은 아직도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따르지 않겠어요!!”

하나님만 바라보며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람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나는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존 번연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이 만든 법과 제도를, 그리고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듣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지체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행복만을 생각했다면
결코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빌립보서 1장 27,28절

“살아 계신 하나님,
제가 자유의 몸이 되어서 감옥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지금 풀려나게 하소서.
그러나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다면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이것이 당신의 진실한 자녀들을 일깨우는 것이라면
이곳에 갇혀 있어도 좋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소서.”
- 본문 중에서

진리를 향한 순례자의 길

‘존 번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로역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가 이 책 외에 어떤 책을 썼는지,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생애에 대한 글은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신앙 위인들의 생애를 깊이 살펴보면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개혁자’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신앙에는 모두 개혁정신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존 번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훌륭한 고전을 남겼을 뿐 아니라 양심적 신앙을 지키면서 소신껏 행동했다. 그로 인해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언의 개혁정신을 남겨주었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라는 거대한 상대와 싸웠던 개혁자였던 반면에 존 번연은 영국국교회라는 조직적인 구조악에 대항하여 싸운 개혁자였다. 그는 평신도로서 사람들 앞에서 설교했다는 죄목으로 당국에 체포당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는 사람들이 만든 법이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리며 세속화되어가는 교회를 걱정했다. 그리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고통스런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불의에 항거했다.
그의 이런 정신적인 싸움은 결국 영국 국민들에게 개혁의 서광과 모든 비국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또한 그의 이런 행적은 한 영혼이 부르짖는 양심의 호소력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존 번연은 가난한 용접공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최하층 계급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랜 영적 싸움과 시련을 겪은 후에 마침내 승리를 거두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체험적인 산 복음을 들려주었다.
존 번연의 한 친구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많은 곤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누구를 비난하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자기 일로 남을 비난한 자를 꾸짖기까지 했다. 그의 훌륭한 인격과 굳은 신앙심은 정말 높이 살 만하다.”

오병학

존 번연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따르지 않겠다는 담대한 용기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던 존 번연!
《천로역정》은 선교지에 성경과 함께 전해질 정도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번연은 영국 베드퍼드셔 주 엘스토에서 가난한 용접공의 아들로 태어나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 아내를 맞이한 후 조금씩 신앙을 받아들였으며, 오랜 시간 동안 힘겨운 회심의 과정을 거쳤다.
그 후 무쇠 같이 변하지 않는 신앙으로 무장한 그는 영국 국교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뜻을 굽히라는 온갖 핍박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삶이 곧 신앙이자 예배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천로역정》 뿐 아니라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 등의 책을 남길 수 있었다.
“하나님 말씀과 어긋나면 용납해서는 안 돼요!”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을 외치며 부패한 자들과
당당히 맞서 싸워 세계를 흔드는 종교개혁을 이루어낸 마르틴 루터!



“참된 믿음 안에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루터는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패한 당시의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강력하게 또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향한 그의 신념과 열정은
전 세계를 뒤흔들며 타락한 기독교를
참되고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나의 신앙이요, 신념입니다.
이에 따라 면죄부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저는 절대로 그것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칙령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증거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전 세계를 참된 신앙의 길로
인도한 사람


세계적으로 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위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종교개혁을 일으켜 전 유럽을 뒤집은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이다.
종교개혁은 유럽을 지나 전 세계로 확산되어 기독교의 방향을 바꾸었다. 개신교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로마의 교황청 한복판에 앉아 있던 교황은 하늘의 별도 떨어뜨릴 만큼 엄청난 권세를 손에 쥐고서 전 유럽에서 온갖 타락을 일삼고 있었다. 종교는 물론 정치까지 쥐락펴락하면서, 심지어 각국의 황제를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라는 독일의 사제 한 사람이 그런 교황에게 대항하여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런 권력이 없는 사람이 교황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은 태산 같은 바위에 계란 하나를 던지는 격이다.하지만 루터는 생명을 내걸고 교황의 사슬을 부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안겨주었다. 누구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낸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하였다. 갑작스럽게 만난 벼락 앞에서 하나님께 수도사가 될 것을 서원하였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때까지 쌓은 모든 명예와 학문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그는 교황의 권세가 성경 말씀에서 빗나간 것임을 알았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을 실천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Sola Fide)의 신앙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청소년들은 가치관을 상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고 있다. 이런 때에 마르틴 루터의 생애야말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병학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그리스도로의 기독교를 부르짖은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는 에르푸르트대학교에 입학하여 일반교양과 법률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구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했고,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 사제, 신학박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길을 걸었다.

루터는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접근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시는 분임을 재발견하였다. 그리하여 1517년, 인간의 죄를 돈으로 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 반발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에 파문과 도피로 이어지는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종교개혁에 대한 자신의 기치를 늦추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그런 그를 위대한 종교개혁가의 자리에 두셨다. 진리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루터의 신념과 개혁정신은 소망의 빛을 점점 잃어 혼란한 오늘날에 더욱 필요하고 빛나는 위대한 정신이다.
“정의로움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맞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나타내려던 하나님의 사람, 이상재!



“불의에 항거해 내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백성 전체가 죽는 것보다
나 한 사람 죽는 것이 낫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성격이 대쪽처럼 강직하여 조금도 불의와 타협할 줄 몰랐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이상재는 국왕과도 한 차례 맞선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관리들의 정신이 썩어 있는데 온갖 부패의 뿌리가 되는
관청까지 복귀시켜 놓으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국왕의 명령이라고 해도 나라를 망치는 길인 것을 뻔히 아는데
어찌 시행하겠습니까? 명령을 어겨 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백성 전체가 죽는 것보다 나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시편 99편 4절)


고종은 아끼는 신하가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반항했다고 하자
더 화가 났다. 그러다 고종은 이내 마음을 돌이켰다.
‘평소 나를 아끼고 나라 일을 걱정하던 그의 품위가 어디 가겠는가.
일시적 감정으로 그에게 벌을 내린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뻔하다.
비록 국왕이더라도 차라리 내가 뜻을 바꾸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종은 이상재의 뜻을 높이 사 그를 따라주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겨레의 등불로 우뚝 서다

1949년 3월 29일, 해방 후 월남 이상재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도회가 열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추도사를 읽었다.

“나는 해방이 되고 얼마 후 미국에서 귀국할 때 일본의 도쿄를 거쳐서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도쿄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는데, 미국 공군기들의 폭격때문에 도시 전체는 폐허였습니다. 그 순간 생전 이상재 선생께서 일본의 병기창을 보고 외쳤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월남 선생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예리한 통찰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일제의 암흑시대에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1957년 이상재 선생의 유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경기도 양주군 장흥명 삼하리로 이장되었고, 1962년 이상재 선생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그가 떠난 후 그의 행보는 더욱 빛이 났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의로운 그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상재 선생은 의(義)에 맞지 않는 일은 국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날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구한말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암흑기인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민족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몸을 바쳤다.

그가 이처럼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투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기독교청년회(YMCA)를 이끌면서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그는 오늘까지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스승이 되어 참 길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젊은이의 참된 이상(理想)인 이상재를 만나보길 소원한다.

오병학


이상재
李商在 1850~1927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의한 세력에 맞서 정의를 실천했던 월남(月南) 이상재. 왕 앞에서 탐관오리의 뇌물을 태워버린 일화는 이상재의 정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재는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이들이 고종에게 뇌물 바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는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일갈한 뒤 고종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그 뇌물을 난로에 넣어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통곡하며 왕 앞에 엎드려 대죄했고, 이에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듯 이상재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는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랐다.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오늘날 부정과 부패로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를 일깨워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잡아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월남 이상재는 독립협회, 신간회, 3·1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젊은이가 나라의 미래라는 소명을 가지고 YMCA, 조선교육협회의 일에도 힘썼다.
“긍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예수님은 정말 귀하게 여기세요!!”


하나님이 부어주신 긍휼한 마음으로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도우며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의 방해에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노예해방에 대한
그의 신념은 하나님이 주신 긍휼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예제도는 절대적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짐승 사회에도 없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집에서 같은 형제가 어찌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한 사람은 노예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하나님은 흑인도 백인도 똑같은 자유를 가지고
권리를 누리면서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 평등합니다.
누구라도 이 나라에서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미합중국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믿음과 신앙과 인격의 사람,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은 가난한 개척민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정규 학교 교육도 겨우 1년 정도 받았다. 무수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링컨의 삶에서 빛나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직위만이 아니다. 그의 훌륭한 인격,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격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링컨은 진실하고 성실했다. 사람의 생명을 자기 몸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으며,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기 목숨 버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링컨의 인격과 정신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면 반드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당신께서 돌봐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출현했던 정치가들 가운데 링컨만큼 큰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알렉산더,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 글래드스턴 그리고 워싱턴 같은 사람들을 위대하다고 말해왔지만, 인격의 크기로 말하면 링컨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링컨이야말로 온 인류가 자랑할 만한 인물인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고, 풍부한 사랑을 가진 성자였다. 그러기에 그의 이름은 오고가는 세대를 통해 수천 년 동안 길이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링컨은 온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에 대한 책만 해도 지금까지 5천 종류가 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 링컨의 위대한 점은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훌륭한 인격에 있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도 그런 그의 인격을 배울 수 있기 바란다.

오병학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1865

자기 일생을 노예 해방에 바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특별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링컨은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나 미합중국의 존경받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애통해하며 기도했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가 있었다. 이런 그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더없이 부어주셨다. 그래서 그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자신에게 맡겨주신 국민들을 지극히 사랑했다.
링컨은 나라 일로 바쁘고 힘든 중에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까지도 외면하지 않았다. 다섯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아들을 모두 잃은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손수 편지를 써서 위로했을 정도였다. 이런 그였기에 그는 미국의 대통령일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온 세계에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규장 신앙위인 북스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뜨거운 사랑과 탁월한 능력으로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거룩한 사명을 품고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4절)


나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합니다!
오늘 우리 민족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굳게 신뢰하고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현재의 상황 앞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차게 나아가도록 합시다.
- 본문 중에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며
하나님만을 굳게 믿는 참 신앙인



도산공원에 세워진 도산 안창호의 기념비에는 안병욱 교수가 짓고 김기승 선생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도산 안창호는 일제의 침략에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60 평생을 구국운동에 바친 위대한 애국자, 한국 민족을 인류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민족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부단한 자아 혁신과 국민의 품격 향상을 힘쓴 민중 교화의 교육자, 무실역행과 인격 혁명과 대공주의의 사상으로 민족의 지표와 역사의 진로를 밝힌 탁월한 사상가, 이상촌 건립과 사회 개혁과 산업 진흥과 교육 건설로 백년대계의 경륜을 보여준 훌륭한 선각자, 진실과 사랑의 실천으로 위대한 인격을 갈고 닦아 국민의 사표가 된 뛰어난 지도자, 그는 겨레의 등불이요 이 나라의 자랑이다.

도산 안창호라고 하면 누구나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훌륭한 애국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한 사람의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것도 살펴보고 배워야 한다. 그가 평생 한 사람의 훌륭한 애국자요 인격자요 지도자로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을 굳게 믿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도산의 신앙생활은 17세 때 서울로 올라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들어가 공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그는 평생을 철저하고 일관된 신앙인으로 살아갔다.

사람들은 대개 뿌리는 보지 않고 나무와 열매만 본다. 하지만 우리는 도산의 일생을 살피면서 그 삶의 원동력과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근간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그의 사상과 삶과 인생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도 뿌리 깊은 애국심과 신앙의 재정립이 있기를 바란다.

오병학

안창호 安昌浩 1878~1938
'민족의 지도자'라 불리는 도산 안창호는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서당에 다니며 유학과 한문을 공부했다.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나라 안팎의 상황은 시골에 사는 안창호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는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구세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이 그의 사상과 삶의 근간이 되었다.

평생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힘 있는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대동단결하는 한민족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점진학교와 대성학교, 또 그가 설립한 공립협회와 신민회, 대한인 국민회, 청년학우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중심으로 하는 흥사단 등도 같은 노선 아래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실질적인 수반 역할을 하며 흩어져 있는 세력을 하나로 모으려고 노력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만나 자신의 뜻을 굳게 주장하기도 했다. 평생 한 사람의 훌륭한 신앙인이자 민족의 참 지도자로서의 삶을 산 안창호는 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38년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불가능이란 없어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소녀에서 전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여성이 된 헬렌 켈러에게서 인내로 소망을 이루는 법을 배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장애를 뛰어넘어 소망을 이루십니다.”

삶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몸의 장애뿐 아니라 외부적인 장애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고난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소망은 우리의 생각보다 큽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3,4절)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부터 세상에는 많은 불행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인생에 그런 불행이나 고통이 없다면
어떤 일에 참고 견디며 용기를 갖는 훌륭한 정신을 배울 수 없겠죠.
그래서 나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모든 괴로운 일과 슬픈 일 전부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기면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장애를 이기고 소망을 전파한 삶

태어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게 된 헬렌 켈러. 그러나 그녀는 최고의 스승들을 만나 어둠과 침묵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개인교사인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으로 점자를 익히게 되어 마음과 정신이 열리게 되었고, 후에는 농아(聾兒)학교 플러 선생님의 지도로 발성법을 익혀 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눈물겨운 인내와 노력으로 명문학교인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녀 자신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헬렌 켈러의 위대함과 숭고한 삶의 가치는 그녀가 단지 불행한 삶을 극복한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명문대를 졸업한 후 남은 생애를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바쳤다.
그녀는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을 하던 어느 날, 동행했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인간이 의지만 강하면 얼마든지 불행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설리번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들의 사랑의 교육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 행복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 행복을 나누어줘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마땅히 그래야만 이제까지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헬렌 켈러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고난의 짐을 기쁨으로 짊어졌던 사람이었고, 그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배워 그대로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헬렌 켈러의 위대한 정신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과 같이 연약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전해지기를 바란다.

_ 오병학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규장 신앙위인 북스 (Greatman Kyujang Books)를 발행하며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규장은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부모들과 그 자녀들의 사랑을 받아온
<규장신앙위인전기 시리즈>를 새롭게 개정하여 출간한다. 청소년들이 더욱 읽기 쉽게 문체와 구성을 새롭게 편집했으며,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특히, 각 위인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성품에 주목하여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한 인격을 쌓을 수 있도록 하였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총 20권 출간 예정)


“어려움을 만나도 예수님만 바라보아요!!”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설교로
쉬지 않고 구원의 복음을 전한 찰스 스펄전의 불꽃같은 삶!


찰스 스펄전 (C.H. Spurgeon 1834~1892)
영국의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찰스 스펄전은 소년 시절 폭설이 내리는 어느 날, 작은 시골교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전하는 “예수를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듣고 회심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설교를 했고, 이듬해 워터비치에서 목사가 되었다. 철저하게 성경에 바탕을 둔 그의 설교는 영적으로 방황하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목회의 능력을 인정받아 20세에 런던의 유서 깊은 ‘뉴 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이후 ‘설교의 황태자’라 불릴 만큼 탁월한 설교로 영국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1861년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인 ‘메트로폴리탄 교회’를 건축하여 침체된 영국교회를 깨웠다. 또한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고, 목회자 양성학교인 ‘패스터즈 칼리지’를 설립해 전도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을 훈련시켰다. 뿐만 아니라, 문서전도를 위해 잡지를 발행하고 ‘컬포쳐스 협회’를 통해 영국 구석구석까지 성경과 전도책자를 보급했다. 그는 이런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주 6권 이상의 책을 읽고, 500여 통에 이르는 편지를 썼으며, 3,600편 이상의 설교와 49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주옥같은 설교와 저서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생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건강이 악화된 중에도 설교와 집필과 사역에 열심을 다하던 그는 1892년 1월 31일, 5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출판사 서평]

“하나님을 믿는 자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반드시 장애물을 만나게 되지요.
내 의지가 약해질 수도 있고, 상황이 바뀔 수도 있으며,
방해자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심히 노력하며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뜻을 세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루어주실 분도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2장 29절)


찰스 스펄전은 많은 고충과 고민거리가 있었지만 거꾸로 그만큼 큰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기도 했다.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런 일을 통하여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매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강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면 그로 인해 주저앉고 말지만,
그는 어떤 곤경에 부딪쳐도 그것을 비약의 디딤돌로 삼았다.
 

 [ 저자의 말 ]

한 세기를 등불처럼 밝힌 위대한 설교자
영국에서 태어난 복음주의 설교자 찰스 해든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은 구원과 복음에 대한 바르고 확신에 찬 설교로 전 세계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신학교의 문턱도 가보지 않은 그였지만 얼마나 많은 신앙서적들을 독파했던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백과사전적 두뇌를 가진 존재’라고까지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지요.
찰스 스펄전은 런던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테버네클(Metropolitan Tabernacle,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거의 평생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또한 매주 강단에서 전한 설교를 인쇄물로 만들어 발간하고, 각처에 전도집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던 그는 자신의 휴양처인 프랑스 망통에서 58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요. 당시 영국의 주요 신문들은 그의 죽음을 머리기사로 실었고, 전 세계 언론들도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의 시신이 런던으로 옮겨지고 영구차가 노우드 공동묘지로 향할 때는 그 길이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만 해도 5만 명이 넘었을 정도니까요.
메트로폴리탄 교회의 장로였던 던 씨는 생전의 찰스 스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상담실로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그에게 다녀가는 사람들은 모두 죄의 억눌림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감리교회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스테픈슨 박사는 “찰스 스펄전이야말로 설교의 위엄을 보여주고, 설교의 위치를 높여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설교를 듣고 감히 설교의 위력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습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한 세기를 등불처럼 밝힌 위대한 설교자이자 자신의 양들을 열심으로 돌본 목자 중의 목자였습니다.
 
규장 신앙위인 북스 (Greatman Kyujang Books)를 발행하며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규장은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부모들과 그 자녀들의 사랑을 받아온
<규장신앙위인전기 시리즈>를 새롭게 개정하여 출간한다. 청소년들이 더욱 읽기 쉽게 문체와 구성을 새롭게 편집했으며,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특히, 각 위인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성품에 주목하여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한 인격을 쌓을 수 있도록 하였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총 20권 출간 예정)




"하나님은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단다!!”

나쁜 짓만 일삼던 아이가 존경받는 성자가 되기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어거스틴 (AUGUSTINE 354~430)

중세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자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게 살았지만, 진리를 향한 불타는 열정과 어머니 모니카의 한결같은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회심하게 된다. 이후 북아프리카에 수도원을 세워 예수를 따르는 삶을 몸소 실천했으며, 히포 교회의 감독(지금의 주교)으로서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널리 알리고 이단을 비판하는 데 힘썼다. 그의 탁월한 신학과 사상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기독교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사도 바울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전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며, 참된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자체에 있다고 말했다.


[ 저자의 말 ]

바른 신앙의 성벽으로 우뚝 선 어거스틴
후기 로마제국 시대에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당대에 비길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수사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웅변가였던 그는 당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카르타고뿐 아니라 멀리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지요.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그의 신앙은 철저했을 뿐만 아니라 치밀하기까지 해서 현대의 신학자들조차 그의 신앙을 바른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있을 정도입니다.

어거스틴은 그 인격에서도 가장 높은 영봉(靈峯, 신령스러운 산봉우리)에 도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믿음대로 사는 크리스천들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회심한 직후부터 성경대로 사는 일에 온몸을 바쳤습니다. 한 예로 그는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며 자기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어거스틴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방탕하여,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진리를 찾는답시고 이단에 빠져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헤매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 또한 그가 새사람이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거스틴이 7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룩한 신앙적 업적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가 남긴 저서만 해도 일일이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니까요. 그중에서 《참회록》과 《하나님의 도성》은 불멸의 고전이 되어 1,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어거스틴의 이야기는 참으로 귀한 영적 감동을 줄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바로 그때였다. 정원의 담장 밖으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갔다.
“집어 읽으라, 집어 읽으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랫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거스틴의 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어서 성경책을 집어 들고 읽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성경을 펴 들고 눈이 닿는 곳을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_로마서 13장 13,14절)

순간 어거스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온몸과 마음을 결박하고 있던 온갖 죄악의 사슬들이 끊어지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거스틴의 마음에 새로운 힘과 용기와 기쁨이 차올랐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하늘의 평화였다. 어거스틴은 환희가 넘치는 얼굴로 친구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오, 친구여! 나는 이제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어. 맞아, 이제야 나는 예수님을 만난 거야!”

-133p.


어거스틴은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다음과 같은 결심부터 했다.
‘이제부터 나 자신은 다 던져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 살아야지. 그게 바로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니까.’
그리고 수도사 안토니우스가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 했다. 먼저 그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유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조리 나눠 주었다.
“어거스틴이 머리가 돌아버렸나?”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인데.”
“하여튼 알 수 없는 일이야.”
고향 사람들은 어거스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어거스틴은 그 다음으로 자기 집을 수도원으로 바꿨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 이제 하나님을 모시게 된 것이다. 이 수도원이 훗날 하나의 완전한 조직체로서 ‘어거스틴 수도회’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인 1246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 당시엔 수도원이라고 부르긴 했어도 지금처럼 엄격히 지켜야 할 어떤 규율이나 규칙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가진 것을 필요한 대로 나누어 쓰며, 마음을 서로 주고받고,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어거스틴은 식구들에게 늘 그렇게 가르쳤다. 말하자면 그것이 초기 수도원의 규칙이었던 것이다.
-167p.

오병학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크리스천문학협회 회원이며 푸른성서연구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4년간 극동방송국에서 설교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규장 신앙위인 북스〉, 〈동화만화 시리즈〉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어거스틴의 참회록》 등이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평점
이름
공감
작성일
답변유무
문의 제목
이름
작성일
수고하십니다. 언제 입고될까요? 있는책 만이라도 살수 있나요? [수정]

샬롬~ 고객님,


문의하신 제품의 세트 중

존 웨슬리, 존 칼빈, 조지뮬러 이렇게 세권이 품절인데요~

출판사에 문의해본 결과, 아직 재입고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품절되지 않은 도서는 별도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컴퓨터로 보신다면, 세트 상세페이지 안에 있는 [세트 낱권 구성]의 목록에서

장바구니에 다 담아 주문해주시면 되구요~

모바일로 보신다면, [저자소개]에 있는 저자의 다른도서에서 확인이 가능하십니다.


PC로 보시면 더욱 구매가 수월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9-25 10:18

조지뮬러책이 같이 구성되어있지않으면 가격이 달라야 하는거아니에요~?

 [수정]
샬롬^^ 조지뮬러 책은 다시 재입고 되었습니다. 특이사항을 수정하였으니 참조부탁드려요^^ 상품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2-13 14:48

도서명규장신앙위인북스 세트 (전9권)
저자오병학
출판사규장
크기set
쪽수
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출간일2014-05-08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배송방법 택배
배송예상기간 [ 주문 ] 후 [1~2일 이내] [ CJ택배 ](으)로 출고 예정입니다. (토/일/공휴일 제외)
소비자 변심(구매착오)에 의한 반품비용 편도 2,000원 (최초 배송비 무료인 경우 4,000원)
청약철회가 불가능한 경우 상품 수령일로부터 7일이 지난 경우 및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한 청약철회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청약철회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교환 반품 보증 조건 및 품질보증기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및 관계법령에 따릅니다.
주문취소 및 대금 환불 방법 마이페이지 1:1문의를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판매자는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지연이자 지급의 책임이 있습니다.
A/S 관련 전화번호 1522-0091
거래에 관한 이용약관 확인 방법 당사 홈페이지 하단의 이용약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오병학) 신간 메일링   출판사(규장) 신간 메일링  
배송정보

1. 본 상품은 [ 주문 ] 후 [1~2일 이내] [ CJ택배 ](으)로 출고 예정입니다. (토/일/공휴일 제외)
2. 배송비 : 무료배송 (단, 도서산간지역은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정보 및 절차

1. 상품 하자가 아닌 소비자의 단순변심 또는 구매착오에 따른 교환/반품은 상품 수령일로부터 7일 이내에 신청 가능하며,
상품 회수 및 배송에 필요한 비용 왕복배송비 [ 4,000 ]원은 고객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2. 갓피플몰 고객센터에 반품 신청을 하신 후 안내에 따라 배송된 택배사를 통해 반품하시면 됩니다.
빠른 처리를 위해 주문자명, 연락처, 반품/교환 사유를 메모하시어 박스 안에 동봉해주세요.

3. 상품의 교환/반품/보증 조건 및 품질 보증 기준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내용이 표시정보와 내용이 상이할 경우에는
물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또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무상으로 교환해드립니다.

4.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받으실 수 있습니다.

5.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합니다.

반품교환 불가 안내

1. 반품요청 기간이 지났을 경우
2.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상품이 훼손된 경우.
3.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4. 시간이 지나 다시 판매하기 곤란할 정도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5. 비닐 등으로 포장되어 있는 상품의 포장이나 봉인 라벨이 훼손됐을 경우
6.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음반, DVD, 소프트웨어 등)
7. 인쇄 및 고객 요청에 의한 주문제작 상품일 경우
8.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한 반품규정이 판매자가 지정한 반품조건보다 우선합니다.
상품별 교환/반품불가 사항
의류/잡화 · 상품 상태가 온전치 못한 경우·세탁을 했거나 수선했을 경우
소프트웨어 · CD, DVD, VCD, VIDEO Tape 등 박스 포장을 제거했거나 바코드가 손상된 경우
· 장착 또는 운영체제 등을 설치했을 경우
스포츠 · 사용 흔적이 있는 경우
가구/인테리어 · 주문 제작의 경우 실측 후 제작 중일 경우
식품 · 발송과 동시에 상품의 훼손이 진행되는 경우
악기/음향영상기기 · 사용 흔적이나 설치를 한 경우
· 부품이 망실되었거나 임의로 탈착시켰을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