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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 신앙위인북스 세트(전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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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병학  |  출판사 : 규장
  • 판매가 : 28,000원25,200원 (10.0%, 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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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신앙위인북스 세트 구성품중에서 일부는 품절로 세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청소년 및 초등부 고학년에게 추천하는 신앙위인 도서입니다.
 
내부이미지입니다. 크게 보시려면 아래 그림을 클릭하세요. ['' 포함 총 1 페이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어요!!"

차별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로지 흑인 인권을 위해 맞서 싸운 마틴 루터 킹!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차별받는 흑인들을 위해 비폭력으로 맞서 싸움으로써,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역경과 시련에도 절대로 무릎을 굽히지 않았고,
끝까지 주님만 붙들고 나아갔습니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잠언 21장 21절)


"우리의 무기는 사랑과 무저항입니다.
이 무기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강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과 무저항의 무기로 승리한다면 후대의 역사가들은
반드시 '흑인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다'라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이 투쟁을 이끌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앞에는 승리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세상에 자유와 정의를 외치다

1963년 8월 29일, 마틴 루터 킹은 워싱턴 대행진에 참여한 수십만 명의 군중을 향하여 이렇게 연설하였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그 노예를 부렸던 자들의 후손들이 형제의 사랑을 나누면서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것입니다. 그 꿈은 곧 야만성과 억압으로 가득 찬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땅으로 변화될 것을 희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그런 꿈이 있습니다…."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그는 서른아홉 살이라는 짧은 나이로 생애를 마쳤지만 그가 이루어놓은 일들은 짧은 생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으며,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마틴 루터 킹이 살던 당시의 미합중국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상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들은 차별을 받았고, 온전한 국민으로 존중받지도 못했다. 노예의 족쇄만 풀렸을 뿐 교육, 생활, 취업 등 생활 곳곳에서 차별당하고 소외되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설움과 분노와 슬픔 속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원했고, 마틴 루터 킹은 이런 흑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다.
마틴 루터 킹은 세계 온 인류의 자유와 권리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상징이 되었다. 그의 투쟁 방법은 철저한 비폭력운동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불의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자유와 정의의 함성이 되어 온 미국과 온 세계에 메아리쳤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생전에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고,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직 침묵 속에서 정의만 외쳐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인류를 사랑하고 봉사했다고만 전해주십시오."

오병학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1929~1968

미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흑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비폭력으로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이다. 마틴 루터 킹은 유복한 흑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 투쟁을 보고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되고, 비폭력운동이야말로 흑인과 백인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갔다. 물론 이것은 원수도 사랑하신, 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는 평생을 바쳐 평화로운 방법으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웠고, 그 결과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68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그의 삶은 아직도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정의로움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맞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나타내려던 하나님의 사람, 이상재!



“불의에 항거해 내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백성 전체가 죽는 것보다
나 한 사람 죽는 것이 낫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성격이 대쪽처럼 강직하여 조금도 불의와 타협할 줄 몰랐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이상재는 국왕과도 한 차례 맞선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관리들의 정신이 썩어 있는데 온갖 부패의 뿌리가 되는
관청까지 복귀시켜 놓으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국왕의 명령이라고 해도 나라를 망치는 길인 것을 뻔히 아는데
어찌 시행하겠습니까? 명령을 어겨 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백성 전체가 죽는 것보다 나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시편 99편 4절)


고종은 아끼는 신하가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반항했다고 하자
더 화가 났다. 그러다 고종은 이내 마음을 돌이켰다.
‘평소 나를 아끼고 나라 일을 걱정하던 그의 품위가 어디 가겠는가.
일시적 감정으로 그에게 벌을 내린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뻔하다.
비록 국왕이더라도 차라리 내가 뜻을 바꾸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종은 이상재의 뜻을 높이 사 그를 따라주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겨레의 등불로 우뚝 서다

1949년 3월 29일, 해방 후 월남 이상재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도회가 열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추도사를 읽었다.

“나는 해방이 되고 얼마 후 미국에서 귀국할 때 일본의 도쿄를 거쳐서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도쿄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는데, 미국 공군기들의 폭격때문에 도시 전체는 폐허였습니다. 그 순간 생전 이상재 선생께서 일본의 병기창을 보고 외쳤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월남 선생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예리한 통찰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일제의 암흑시대에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1957년 이상재 선생의 유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경기도 양주군 장흥명 삼하리로 이장되었고, 1962년 이상재 선생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그가 떠난 후 그의 행보는 더욱 빛이 났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의로운 그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상재 선생은 의(義)에 맞지 않는 일은 국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날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구한말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암흑기인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민족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몸을 바쳤다.

그가 이처럼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투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기독교청년회(YMCA)를 이끌면서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그는 오늘까지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스승이 되어 참 길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젊은이의 참된 이상(理想)인 이상재를 만나보길 소원한다.

오병학


이상재
李商在 1850~1927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의한 세력에 맞서 정의를 실천했던 월남(月南) 이상재. 왕 앞에서 탐관오리의 뇌물을 태워버린 일화는 이상재의 정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재는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이들이 고종에게 뇌물 바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는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일갈한 뒤 고종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그 뇌물을 난로에 넣어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통곡하며 왕 앞에 엎드려 대죄했고, 이에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듯 이상재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는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랐다.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오늘날 부정과 부패로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를 일깨워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잡아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월남 이상재는 독립협회, 신간회, 3·1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젊은이가 나라의 미래라는 소명을 가지고 YMCA, 조선교육협회의 일에도 힘썼다.
“긍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예수님은 정말 귀하게 여기세요!!”


하나님이 부어주신 긍휼한 마음으로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도우며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의 방해에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노예해방에 대한
그의 신념은 하나님이 주신 긍휼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예제도는 절대적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짐승 사회에도 없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집에서 같은 형제가 어찌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한 사람은 노예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7절)


하나님은 흑인도 백인도 똑같은 자유를 가지고
권리를 누리면서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 평등합니다.
누구라도 이 나라에서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미합중국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

믿음과 신앙과 인격의 사람,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은 가난한 개척민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정규 학교 교육도 겨우 1년 정도 받았다. 무수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링컨의 삶에서 빛나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직위만이 아니다. 그의 훌륭한 인격,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격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링컨은 진실하고 성실했다. 사람의 생명을 자기 몸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으며,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기 목숨 버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링컨의 인격과 정신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면 반드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당신께서 돌봐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출현했던 정치가들 가운데 링컨만큼 큰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알렉산더,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 글래드스턴 그리고 워싱턴 같은 사람들을 위대하다고 말해왔지만, 인격의 크기로 말하면 링컨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링컨이야말로 온 인류가 자랑할 만한 인물인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고, 풍부한 사랑을 가진 성자였다. 그러기에 그의 이름은 오고가는 세대를 통해 수천 년 동안 길이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링컨은 온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에 대한 책만 해도 지금까지 5천 종류가 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 링컨의 위대한 점은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훌륭한 인격에 있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도 그런 그의 인격을 배울 수 있기 바란다.

오병학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1865

자기 일생을 노예 해방에 바쳤던 에이브러햄 링컨.
그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특별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링컨은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나 미합중국의 존경받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애통해하며 기도했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그가 있었다. 이런 그에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더없이 부어주셨다. 그래서 그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자신에게 맡겨주신 국민들을 지극히 사랑했다.
링컨은 나라 일로 바쁘고 힘든 중에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까지도 외면하지 않았다. 다섯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아들을 모두 잃은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손수 편지를 써서 위로했을 정도였다. 이런 그였기에 그는 미국의 대통령일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온 세계에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규장 신앙위인 북스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주세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강력한 믿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성령의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여
열심히 학문을 공부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어 철저히 지키기도 했습니다.
전도하고 설교하며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결국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것은
아무 조건 없이 그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학문과 규칙이
더욱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장 4,5절)


“난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공중에 날아가는 화살처럼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고 마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래도 나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런 일을 나는 성경에서 배웠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한 권의 성경을 어떤 값으로 치러야 할까.
오, 하나님이여! 이제부터 영원히 나를 성경으로 만들어진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 본문 중에서


오직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어두움을 밝힌 복음의 전도자


하나님께서는 대체로 영적으로 어둡고 어려운 시기가 되면 그때마다 당신의 사람을 보내어 그 시대를 구원하곤 하셨다. 존 웨슬리가 태어났던 18세기의 영국도 그러한 시대였다. 그 당시는 교회와 사회가 함께 타락하여 사람들이 영적인 소경의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등불을 밝게 비추어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존 웨슬리는 당대 그 사회, 그 지역에만 영향력을 끼친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전 인류에게 구원의 길과 빛이 되어주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복음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는 나의 교구요 일터이다!”
존 웨슬리는 1703년 6월 28일, 엡워스에서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훌륭한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존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나님은 덕망 있는 부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하시면서, 또 여러 사건을 겪게 하시면서 존 웨슬리를 ‘감리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로 만들어가셨다.
엡워스 교회 목사관에 불이 나서 죽을 뻔했을 때 당시 여섯 살이었던 그는 자신을 ‘불길에서 꺼낸 타다 만 나무 막대기’라고 평가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드렸다. 그 후로 모라비아 선교회의 진젠도르프, 스펜젠버그, 볼러를 통해 진정한 믿음에 눈을 떴다. 또 동료인 휘트필드와 동생인 찰스 웨슬리 등과 함께 감리회의 기초를 다지고 영국 전역에 복음의 불을 밝혀나갔다.
그도 역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심도 하고 번민도 하며 방황도 하고 실패도 했다. 그러나 그는 1738년에 올더스게이트에서 친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반세기 가까운 동안에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전도자가 되어 마침내 이 땅에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성공회가 존 웨슬리의 입을 막으려 모든 교회의 문을 걸어닫았을 때, 그는 예수님처럼 길거리에서, 언덕에서, 무덤에서 설교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전 세계에 복음의 불길을 지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외침이 타락한 영국을 깨우고 잠든 인류를 깨웠다.
이 책에 담긴 존 웨슬리의 삶을 통해 여러분도 존 웨슬리를 불태웠던 그 불길과 만나기를 바란다.

오병학


존 웨슬리
산업혁명과 종교적 타락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오직 믿음과 성결한 생활, 종교적인 체험을 주장한 감리교의 창시자이다. 존 웨슬리는 1703년 영국 엡워스에서 성공회 사제인 사무엘 웨슬리와 수잔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큰 화재가 일어나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길 가운데서 끌어낸 타다 만 나무 막대기라고 생각했다. 그 후 한 번 더 죽을 고비를 겪었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연단이라 느끼고 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다. 1720년 옥스퍼드의 그리스도교회 대학에 입학했고, 1728년에는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동생인 찰스 웨슬리와 함께 선교사로서 미국 조지아 주에 가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기를 통해 존 웨슬리는 회개를 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었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갔다. 모라비아인들의 신앙을 통해 새로운 신앙에 눈을 뜨고 큰 영향을 받았으며, 올더스게이트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회심을 한 후, 새로운 신앙운동을 벌여나갔다.
존 웨슬리는 1791년에 하늘나라로 갈 때까지 영국 전역뿐 아니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을 여행하며 설교하고 감리교회를 세워나갔다. “전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고 외친 그의 열정과 믿음과 열심은 아직도 우리에게 큰 교훈과 도전을 주고 있다.

오병학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크리스천문학협회 회원이며 푸른성서연구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4년간 극동방송국에서 설교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규장 신앙위인 북스〉, 〈동화만화 시리즈〉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어거스틴의 참회록》 등이 있다.
시리즈 소개 | 세트 | 세트낱권구성
오병학 / 규장
가격: 7,000원→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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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규장 신앙위인북스 세트(전4권)
저자오병학
출판사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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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구성상품설명 참조
발행일2014-05-08
목차 또는 책소개상품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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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 CD, DVD, VCD, VIDEO Tape 등 박스 포장을 제거했거나 바코드가 손상된 경우
· 장착 또는 운영체제 등을 설치했을 경우
스포츠 · 사용 흔적이 있는 경우
가구/인테리어 · 주문 제작의 경우 실측 후 제작 중일 경우
식품 · 발송과 동시에 상품의 훼손이 진행되는 경우
악기/음향영상기기 · 사용 흔적이나 설치를 한 경우
· 부품이 망실되었거나 임의로 탈착시켰을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