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마가공동체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을 자신들의 이상적 경제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가운데 이겨나갔고, 그들만의 경제관을 통해 내부의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결국 전쟁의 포화가 자욱한 경제적 수탈의 현장에서도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도록 독려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했던 것이다.
성서의 복음서는 기독교에 있어 핵심적인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 교훈을 전해준다.이 자체가 기독교인들이 존중하고 따라야 할 신앙적 모범으로 간준된다. 간혹 이러한 내용들이 그야말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스크린의 영화처럼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삶'이라는 부분이 본인에게 접속되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삶에 관한 가장 지배적인 틀은 경제적 측면을 포함한다. 성서의 세계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경제적 틀에 관한 이해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고대 세계에로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앙의 길과 이성의 길신으로부터 이질화된 인간이 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신적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 회복
은신적 본질로서의 진리가 다시금 주어지든가, 아니면 어두운 내면에서 의식 속으로 부상
하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전자의 길을 그는 신앙의 길(auctoritas)이라 했고, 후자를 따르는 길을 이성의 길 혹은 철학의 길이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길을 하나의 길로 본다.
한국의 무속신앙과 불교를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어차피 우리의 삶 속에서 도외시 할 수 없는 부분이 무속과 불교의 영향이라면, 피하는 것보다는 부딪히는 것이 가장 강한 전략으로 신조를 삼고 있는 나이기에, 무속과 불교를 탐구해 들어갔다. 아직은 부끄러울 정도의 지식이지만 대학에서 교양으로 불교와 무속을 강의할 정도는 되었다고 인정받을 만한 모양이었다. 모교에서 '한국 전통문화와 기독교'라는 강좌를 열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성서 안에 있는 복음의 거대 담론은 - 거대 담론이기는 하지만 결코 성서의 다양한 미시담론에 행당하는 목소리들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 성서에 나타난 다양한 많은 미시담론들은 서서의 통일성에 해당하는 거대담론을 지향하고, 그 거대 담론에 의해서 다양한 담론들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충일해지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대 담론은 억압이나 폭력의 목소리가 아니라 구원의 생명의 목소리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을 한 몸에 지니신 분이시다.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종말론적 복음과 JPIC의 비젼을 가지고서 mission Dei에 참여할 때, 이것은 거대 담론이기는 하나 모더니즘이 거대담론과는 다른 것이다.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바로 그 새로운 거대 담론을 가지고 포스트모던 세계를 항햐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가 '인자'라는 선포는 기독론적 선포이다. 기독론은 본질적으로역사적 예수에 대한 교회의 반응인데, 초대 교회는 역사를 하나님의 종말론적 활동으로 이해하고 '기독론적 용어'로 그러한 이해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그렇다면, '인자' 기독론에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수 이해와 역사 이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월적 '인자'의 도래에 대한 희망은 한가로운 종교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이끌린 사변의 놀이거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절망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이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하여 좌절하지 아니하고 미래에 거는 희망의 언어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지배자들의 박해 속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자'의 도래로 이루어질 새로운 대안 세계를 이야기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불의한 세력을 거부할 뿐만아니라, 암울한 역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만남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를 체험하고, 그 체험을 '인자'의 도래에 대한 그들의 희망과 결합시켰다.
이 책은 시내산 계약본문인 출애굽기 19:1-20:22과 24:1-11을 거시적인 면에서 또한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주석하고 분석하므로 성서가 말하려고 하는 계약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동시에, 자료비평이나 양식비평으로 분해된 본문을 "본문 그 자체"로 읽어서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내연과 외연의 역사해석의 틀은 부흥운동으로 내연화된 복음주의 신앙과 신사참배 거부 투쟁 사이의 외연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있다. 부흥운동을 통해 내연화된 복음주의 신앙은 신사참배 거부를 통해 그들의 성서적 신앙과 종말론 신앙으로 천황제의 유사종교적 특성을 간파해 내었고 그들의 내용상 허구성과 정책적 비일관성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의 값진 승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내연과 외연의 틀은 결국 그 신앙 내연을 통할 때 비진리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신앙 자체로서 내연화한 에너지가 그 체제에 가장 큰 위협과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는 신앙 현상학을 구체화하였다. 신사참배 거부 투쟁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영성이 비현실적 비역사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복음주의 신앙이 저항과 순교라는 강인한 에너지로 외연될 수 있었던 것은 실재론에 근거한 신앙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부흥운동과 신사참배 거부투쟁 사이의 관계를 통하여 기독교는 다른 어떤 외적인 활동이나 외적 이념과의 결합이 아닌 기독교 신앙의 내용 그 자체가 가장 큰 역사 변혁의 에너지임을 밝히게 되었고 기독교는 신앙만으로도 역사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로 입증하였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사도신경에 있어서 "음부에 내려 가사"란 항목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내용이며 해석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A.D. 750년 공인된 사도시녕에 들어간 것은 교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즈음 국내에서도 웬만큼 성장한 교회는 국제화에 발맞추어 영어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영어 예배를 드릴때마다 신앙고백을 하면서 사도신경 가운데 "음부에 내려가사"란 항목은 영어 본에는 있는데 한글 역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없기 때문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왜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는 이 항목이 빠졌을까? 살펴보려고 해도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역사적 자료가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사도신경에서 이 항목을 빨리 복원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구절을 삭제하게 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분명히 밝혀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여겨 이 문제에 대한 작은 해답을찾아보려는 노력으로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를 다루어 보았다.
-머리글에서
칼빈은 자신의 시대에 국환된 신학자와 목회자의 범주를 뛰어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혁교회 교육신학의 기초 원리와 교육 지침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위대한 기독교 교욱사상 체계를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칼빈은 현대 기독교 교육의 방법론을 강조하는 입장과 기독교 교육 원칙론만 고집하는 입장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동시에 장점을 수용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기독교 교육원리와 방법론을 제시하여 준다.
그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종교개혁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교육적인 기능이 절대적임을 강조하였으며, 교회가 교육의 장으로서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였다.
칼빈은 이처럼 교욱적인 안목으로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와 교회를 바라보았던 위대한 교욱신학자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교리의 총체인
<신앙 교육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 저서를 현대적 언어로 보완하고, 현대 사회에 나타나는 교육적 이슈들을 다루기 위해 현대 사회에 일어나는 다양한 제문제를 보충하고, 현대적 교수- 학습법에 따라 교리교육을 실시한다면 현재 혼란 가운데 있는 개혁주의 기독교 교육과 교육목회에 있어서 새로운 교육신학의 지평을 열어주고 신앙교육 교재로 사용될 수 있는 충분한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본문 중에서-
누가는 경제적 표현들 속에 신학을 숨겨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은 경제적 표현들에 깃든 영성을 찾아야만 합니다. 누가복음서가 이렇게 경제용어들을 통해 자신의 신학적 메시지를 함의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의 입장을 "경제신학(Theology of Economics)"이라는 말로 함축하여 부르기를 제안합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서 서사세계에서 표현되는 경제진술들을 단지 경제적으로만 이해하는 한계를 방지할 것이며, 경제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영성을 보여주며,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임을 주지시킬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이 때 사이공간은 복음의 소통을 위한 인간적 '교두보'(interspace)이다. 기독교의 내부를 들여다볼 때, 교회의 현실은 복음을 자기 울타리 안에 가두고 구원의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고만 있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베풀어 돌아오지 않을 초대장만 남발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의 한쪽 귀퉁이를 헐고, 세계와 만나는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타자문화와 만나는 사이공간으로 삼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대화, 도움, 배움, 축제에 참여하고, 그러한 사이공간을 확장하는 선교적 노력이 요청된다.
- 본문 중에서
최근 유전공학이라든가 컴퓨터기술과 같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한면서 기술은 그 자체에 의해, 또는 이용자들의 이용목적에 따라서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현대기술의 총아인 컴퓨터는 인간의 정신적 노동을 대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공간적 확대와 시간적 단축을 가져왔다.
또한 우리들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 있다.
반면 컴퓨터는 인간 소외, 부의 불평등 심화, 건강 침해, 이용자들의 잘못된 이용 행태에
따른 인간 존엄성의 침해 등과 윤리적 문제들을 우리들에게 아울러 던져 주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 할 때마다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찬사를 보내고 열광한다. 그리고 기술은 무한히 발전하고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심지어 기술을 신의 자리에까지 올려 놓기도 한다.
기술은 통제할 수 없는 하나의 힘이라는 이러한 기술주의는 사실
인간의 오만에서 온 것이다. 성서는 이러한 기술주의에 강력히 도전할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이 세계의 관리를 위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의 복리를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기술은 하나님의 이러한 관리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적절히 통제돼야 한다.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복음 전도를 통한 인간 영혼의 구원과 인간의 마음과 생활을 개혁하는 성결운동이었으며, 나아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박애운동이었다. 특히 웨슬리의 복음적인 박애운동이었다. 특히 웨슬리의 복음적인 박애운동은 당시 영국 인구의 80%정도를 차지했던 가난한 서민들에게 그리스도의복음과 따뜻한 사랑과 용기를 주었으며, 그들의 마음과 생활방식을 개혁했으며, 그리고 산업혁명을 발생한 다양한 사회적인 질병들을 치유하므로민족전체를 성화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구어 내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기독교 생활윤리를 소홀히 하는 기복신앙과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의 원칙 아래 치닫는 교회 성장주의와 기독교의 실천과 세속사회를 외면하는 듯한 경향이 짙은 '오직 믿음'의 신령주의의 길을 가면서 기독교의 본질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 시대에, 18세기 영국 사회를 개혁하고 구원한 웨슬리의 사회선교운동을 배우는 것은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서문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수직적 관계를 중요시하며 또한 사람과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로 강조한다. 여기에서 사회 안의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나가야 할 지 알 수 있는데 요즈음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치우쳐 있어서 사회 안의 교회가 아니라 사회와 동떨어진 섬 같은, 사회 밖의 교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에서의 접근만을 주장하고, 사회참여적 차원인 사회복지적 접근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사람만 경건하게 살게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의와 평등이 사회 전체에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 참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 이웃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복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주셨다. 곡식을 수확할 때에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을 위해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 것, 일꾼의 임금을 제 때에 지불할 것, 법정에서 세력 있는 자라고 편을 들지 말것 등이 예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글은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이 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는 소박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기독교의 신학과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는 것은 기독교의 정수를 파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로 신학에서 논의되던 이 개념을 역사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이제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죄에 관해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초기 신자들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역사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 죄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하나의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논문 주제로 고민하던 박사과정 시절, 한 선배와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습게 시작했던 대화가 공부는 지적 유회를 위한 방편인지 혹은 삶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인지의 심각한 주제로 넘어갔고 결국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닐까 하는 소극적인 해답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이 대화가 지금껏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왜 논문을 써야 하는지, 주제는 뭘 잡아야 할 지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공부는 삶의 문제를 푸는 방편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제껏 제 삶의 큰 축이었던 기독교를 빼놓고 제 삶을, 더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기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세상이 기독교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배 밑에 잠든 선지자 요나를 깨워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선원들의 음성이 들려오기도 한다. 때문에 한 시대의 목회자로서 두렵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을 열매(카르포스)의 개념으로 읽고자 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도전에 대한 저자 자신의 작은 답변이기도 하다.
성서 읽기의 관점은 일정 부분 역사적 상황과 관련된다. 16세기의 고단했던 개혁자들은 '믿음의 신학'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격언처럼 지나치게 강조된 '믿음의 신학'은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행함의 신학'을 강조하게 한다.
마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행함'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강조는 저자로 하여금 마태복음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과 관련된 책들을 수집하는 즐거움을 얻게 했다. 그리고 마태에 대한 관심의 결과, 마태의 신학은 행함의 신학이며, 그 행함의 신학은 마태공동체의 생존의 몸부림 속에 탄생된 '열매신학'임을 발견하게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
바울신학은 상황을 전제로 한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 상황의 학문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가 교회나 개인에게 갱신의 힘을 불어 넣어준 책이라면 상호성을 전제로 한 수사학적 로마서 읽기가 이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갱신의 힘을 불어 넣어주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머리글에서
한국교회는 선교 제1세기를 보내고 제2세기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지 여러 해가 지났다. 12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오늘의 한국교회는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유례없는 양적인 성장과 부흥을 이루었지만 약점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1950년 이후 여러 교단으로 분열되었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교단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있다. 지난 세월 동안 각 교단에 속해 있는 신학대학은 자신의 교단 신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표방하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를 교단으로 하는 신학대학에서는 그들의 신학을 만들기 위해서 기독교와 사회문제를 중심 주제로 설정하고 1960년대부터 꾸준히 작업을 하였다. 그것은 사회신학의 일종이었다.
또 기독교대한감리회를 교단으로 하는 신학대학에서는 기독교와 타종교 문제를 중심으로 1950년대부터 자신들의 신학을 수립해 왔다. 이들은 여러 비판의 소리를 듣고 있지만 오늘 자신들의 신학을 종교신학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를 교단으로 하는 신학대학에서는 좌나 우가 아닌 중도신학을 자신의 신학이라고 표방하였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중간노선을 표방한 것이었다. 각 교단마다 신학의 색깔과 경향을 달리하는 다양한 신학적 노선이 한국교회 저변에 깔려 있고 지금도 저마다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 및 뿌리를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