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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1학년일 때 독특한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 읽기를 강조하는 선교단체인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에서 8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간사로서 가르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헌신했는데 특별히 이스라엘에 헌신한 아내를 만나 이스라엘 선교사가 되었지요. 이스라엘에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해야 하니까 학교에 적을 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곳을 찾다가 히브리대학 의과대학의 석사와 박사과정에 등록해 10년 동안 이스라엘에 체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원래부터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에서 사역해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공부한 경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제가 의학 공부를 먼저 하러 유학 갔다가 나중에 선교사가 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먼저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특별히 이스라엘에 헌신한 선교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사실은 성경이 탄생한 배경지이고 성경에는 이스라엘 이야기가 수천 번도 넘게 나옵니다. 또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많이 가지만 선교지로서의 이스라엘은 생소한 개념인 것 같아요. 복음이 시작된 땅이지만 오늘은 어느 곳보다 황량한 복음의 불모지입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 땅이 다시 복음 안에서 회복되어야만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이 선교적인 종말론의 관점 아닙니까? 이스라엘에 대한 구속사적이고 선교학적인 중요성을 아내를 통해 제게 열어주셔서 선교사로 가게 되었고, 저는 이스라엘에 가자마자 제가 가지고 있는 침술, 한의학 같은 재능을 살려서 사역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선 한의학과 침술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거든요. 그들 자체적으로 대학에 한의학과가 몇 개 있지만, 유대인 한의사보다 한의학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온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제가 간 지 몇 주 후부터 환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침 꽂아놓고 관계전도를 할 수 있는 길을 많이 열어주셨죠.
일단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 만난 곳이 일반 교회가 아니라 일대일 성경공부와 제자양육과 세계선교 같은 것에 헌신된 선교단체였고, 집을 떠나 합숙하면서 8년 동안 보냈던 시간들이 저의 신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모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선교지도 아니고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 또 중요한 것이었지요. 이스라엘이 바로 성경의 메인 무대가 된 현장이잖아요. 도시 이름과 밟는 길과 지명이 다 성경에 나오는 곳이란 말이에요. 거기에서 하나님이 많은 책들을 보게 하셨는데 그런 것이 제게 단지 지식적인 차원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일주일간 성지순례를 간다고 하면 은혜롭지만 거기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정말 치열한 광야생활이거든요. 거기서 생존하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생존을 위해 말씀을 보고 책들을 본 것이 지금까지 나왔던 제 책 같은 것들로 열매를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저자로서 독자 서평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비롯해 20여 권을 썼는데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참 두려움 반이자 기대 반인 것 같아요. 지금도 이 책을 내면서 두려운 마음이 조금 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까 싶은 것이죠. 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든, 기본적으로 제 책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성경을 좀 더 가깝고 친근하게, 그리고 더 깊이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쓸 수 있는 주제를 다룬다기보다 저만 쓸 수 있는 걸 쓰겠다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는데요, 서평 가운데 “이 책은 주석보다 깊이 있고 소설보다 재미있다”는 말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제 책이 신학교 안에서는 목회자를 위한 추천도서로 올라와 있고 온라인서점에선 초등학생 추천도서로 올라 있는 거예요. 정말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죠.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평이함과 또 목회자나 신학생도 볼 수 있는 전문성, 이 두 가지를 같이 갖춘 책이라는 겁니다. 같이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거든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루시려 했던 것, 다시 말해 책을 쓸 때 제가 소망했던 일들을 이루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런 서평은 하나님 주신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사실 이 책에서 그 부분, 즉 히브리어에 대해 많이 할애했습니다. 또 그 부분이 독자에게 설득되지 않으면 그 이후는 사실 설명하기 힘든 것이거든요. 제가 특히 예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을 가지고 이 책을 쓰면서 먼저 히브리서를 설명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계시듯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여 있고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히브리어를 강조하면서 특히 신약을 먼저 다룬 이유는, 신약성경이 당시 세계 공용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그걸 기록한 저자는 전부 헬레니즘(Hellenism)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방인)이 아니고 유대 땅에서 태어난, 즉 헤브라이즘(Hebraism)에 뼛속 깊이 물들었던 유대인이라는 것이죠. 예수님도 말씀을 가르치실 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최종으로 번역돼 있는 이 한글성경 가운데에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책 서문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現)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했는데요, 어떤 책을 백 번 읽으면 깨달음을 이룬다는 이 말은 사서삼경에는 적용되더라도 성경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성경 말씀, 특히 난해구절들은 히브리어 안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이디엄(idiom), 관용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씀들이 헬라어로 직역이 되고 몇 단계를 거쳐 우리에게 왔단 말예요. 그러니까 히브리어 관용구와 관련된 많은 말씀들이 난해구절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누구나 궁금해 하는 난해구절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히브리어를 알아야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지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가 신학교에서만 공부하고 목회자들만 아는 판도라 상자가 아니고, 모든 크리스천이 함께 공유할 때 우리에게 친숙한 복음서의 말씀을 모두 쉽게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먼저 히브리어에 대해 설명하고, 나아가 히브리어에 관심을 가지도록 동기부여를 한 것이죠.
주후 1세기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빨리 오시길 기다리는데 금세 안 오시는 겁니다. 자기들이 살아 있을 때 주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제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 원칙이 있었어요. 히브리어로 기록하기보다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위해 헬라어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 원칙이 바로 그보다 한 300년 전쯤에 쓰인, 즉 주전 약 3세기경에 70여 명의 유대학자들이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한 70인 역이었습니다. 그 성경이 철저하게 고수한 원칙이 직역이었습니다. 의역을 하다보면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거든요. 히브리어로 쓴 구약을 헬라어로 직역했기 때문에 유대인 저자들이 신약을 쓸 때도 직역을 원칙으로 한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 유행하는 말로 말하면, 오늘날 성경해석학자들에겐 ‘단언컨대’ 최고의 축복인 거예요. 우리가 역으로 추적해 그 안에 깔려 있는 언더 텍스트(under text)로서의 히브리어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게 질문하실 때 인용한 “싹수 이즈 옐로우”(Ssaksoo is yellow)라는 표현을 미국 사람이 보면 문자야 영어이지만 영어가 아닌 것이죠. 하지만 그들이 한국어에 이런 말이 있는가 역추적해 연구하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 것처럼 성경의 많은 난해 구절도 직역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히브리어 관용구와 연결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번역자는 반역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말로 이런 말장난(word play)이 되지만 영어로도 Translator is Traitor라고 똑같이 워드 플레이가 됩니다. 번역자는 이렇게 항상 번역과 반역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는 사람인데, 특히 성경 번역에서 정말 어려운 것이 이 관용구에요. 우리가 영어를 공부할 때도 숙어는 외우지 않습니까? 직역하면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 눈이 성하면”이라는 말의 번역입니다. “Your eyes are good.” 이것이 시력이 좋다는 말도 아닐 테고, 과연 여기서 눈이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로는 ‘아인 톱’인데 눈이 좋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직역한 것이지요. 그런데 히브리어로 눈이 좋다는 이 말은 물건에 대한 어떤 탐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가지고 있는 것을 풍성하게 잘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물질에 관대하고 인색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눈을 가졌다라고 말하면 물질을 움켜쥐고 인색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표현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문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영적인 안목이라고, 다시 말해 영안이나 뉴에이지적인 내적인 눈(inner eye)과 관련 있는 말이 아니냐고 잘못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그건 번역이 아닌 것이지요. 히브리어 관용구인데. 그런 점에서 이 말이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이 말씀에 대해 어떤 성도가 이런 말을 하신 걸 들었어요. 목사님이 설교할 때 이 말씀으로 다그치면 다 기가 죽는다는 것이죠. 이 말씀 앞에 설 때 어느 누가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천국 커트라인이 수능 만점 수준 같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런 말씀이 아니거든요. 이 말씀에서 ‘의’가 두 번 나오는데, 두 가지가 각각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 제가 겪은 실제 상황이었는데요,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간식으로 당근을 가지고 온 거예요. 그러면서 “당근 드실래요?” 그랬어요. 그러자 저는 “당근이지”라고 말한 거예요. 우린 그 뜻을 알죠. 앞의 당근은 carrot이고 뒤의 당근은 of course입니다. 그런 것처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하나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정해놓고 추구했던 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의는 그들이 행위로서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건 너희들이 만든 자기 의이고 하나의 커트라인이지 하나님의 의 하고는 아무 상관없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죠.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겉으로 보이는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에 비유한다면 마치 주일 헌금 많이 한다고 천국 갈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 뜻에 맞는 행위의 열매를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더 차원 높은, 바리새인보다 더 완벽하게, 행위로서의 의를 벗어나는 더 깊은 의미의 의가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 의를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날 통독 바람이 불고 있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실 아름다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파악하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숲을 멀리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나무를 붙잡는 것입니다. 통독은 전체 숲을 빠르게 조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자칫 주마간산 식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말씀은 정말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보배 같은 말씀이라 반드시 풀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체 문맥을 이해하는 데 패스워드가 되는 중요한 말씀이거든요. 이런 것들은 통독의 개념에서는 절대 풀릴 수가 없죠. 그런 것들은 마치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듯이 따로 붙들고 씨름하는 영적 혈투가 필요합니다. 난해 구절이 풀리면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율법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도 온전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전케 하러 오셨는데 우리는 삶에서 율법을 다 폐했죠. 613개의 구약 율법은 다 모르고, 주기도문은 암송해도 십계명은 암송을 못하죠. 율법과 은혜는 신앙생활에서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인데, 그래서 이 책에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고 완전케 하러 왔다"는 이 말씀을 대표적인 난해구절로 소개했습니다. 통독의 개념과 함께 이런 개개의 나무와 같은 난해구절을 풀면 그전부터 해왔던 통독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열린다 성경>을 쓸 때부터 독자를 목회자나 전문가로 한정짓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 성경에 관심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목회자든 평신도든 대학생이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다 볼 수 있는 책을 쓰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이 책을 쓸 때도, 책 뒤에 있는 참고도서를 보면 아실 수 있는데, 굉장히 전문적인 책들을 참고했어요. 주로 신학생을 위한 원서들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는 그런 것들을 잘 요리해서 일반인도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 규장에서 이 책을 잘 만들어주셨어요. 4컷짜리 만화도 넣어주시고 독자로 하여금 어렵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하도록 잘 편집했습니다. 표지도 친근하게 보여 마음에 들고요. 이 책은 누구나 다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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