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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님
온라인 사인회
알려주세요~
페이스북 친구와 함께 나눠요^^
이번 책은 CBS 성서학당에서 강의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성서학당 하자 그럴 때 로마서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신앙 체계를 잡을 때 가장 도움이 된 책이니까. 그래서 로마서를 강의했는데, 그 강의할 때 제가 참 좋았어요. 반응도 괜찮았고. 또 제가 로마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문에도 썼는데, 제가 좋아하는 이 말씀 때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차지도 덥지도 않았다 그러셨잖아요. 신앙은 차갑기고 하고 뜨겁기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걸 'Cool Head, Warm Heart' 그러더라고요.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 이게 신앙의 완벽한 건데, 사람들이 머리가 차가우면 가슴도 차더라고요. 가슴이 뜨겁고 머리도 뜨거우면 광신이 되고. 그래서 이게 균형을 잡는 게 참 어려워요. 신앙도 냉철한 쪽으로 이성적인 사람이 있고 그냥 감정적인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의 조화가 이루면 좋겠다 싶어요. 그런데 그 전형적인 모델이 나는 로마서라고 생각했어요. 바울은 매우 이지적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속의 열정은 활화산보다 뜨겁거든. 그래서 바울을 좋아했죠. 로마서가 내 나름대로 신앙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됐고. 그래서 로마서에 대한 애착이 많죠.
앞서 말했지만, 우선 머리부터 차가워지더라고요. ‘아, 믿음이 이런 거구나!’ 또 ‘구원 얻는 도리가 이런 거구나’ 깨닫는 건 참 기쁜 일이에요. 그런데 로마서를 쓴 바울에게는 그런 깨달음뿐 아니라 그 다음에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뜨거움이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이 뭐냐”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로마서에 그 정의가 다 있다고 봐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봤지만, 로마서 16장 짧은 성경 하나에서 (믿음에 대한) 전체를 다 받을 수 있을 만큼 로마서는 중요한 책이지요.
아 그럼요. 당연하죠.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하나님나라에 대한 시각(視覺)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로마서의 바울의 고백은 아니지만, 다른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진다고요(빌 3:8). 그게 믿음이거든요. 그런 믿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니까 세상의 보이는 것에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죠. 그러다보니까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도 나왔고, 또 어느 걸 먼저 해야 되고 나중에 해야 될 건가 하는 순서도 생기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먼저고, 그런 게 다 믿음이잖아요. 구체적으로 한 절 한 절 다 표현할 순 없어도 바울의 삶이 그랬잖아요. 믿음 때문에 나온 행동들이 있어요. 그런 거 흉내 내는 거 재미있죠.
첫째는 나를 믿을 수 없어서에요. 나는 내 삶에 자신이 없어요. 나는 무지(無知)해요. 성수대교 무너지던 날, 그 새벽에 차 몰고 성수대교 지나갔었거든. 7시 5분엔가 무너졌는데 4시 반에 새벽기도 인도한다고 그 길로 갔지요. 그게 나는 충격이에요. 앞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 무너질 다리로 차 몰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요. 내가 무지무능하다는 건 내가 알거든. 그렇다면 누군가 전지전능한 분을 기대야 내가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나 전지전능한 건 아니잖아. 그랬을 때 당연히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고 그분이 하나님이시니까, 그분을 믿고 사는 게 내게 좋은 거다, 하는 거죠. 성수대교 사건 이후에 내게 달라진 행동이 하나 있어요. 내 어머니가 지금 94세이신데, 내가 무녀독남 외아들이거든요. 나갈 때마다 이렇게 인사하고 다녔어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성수대교 무너진 다음날부터는 한 번도 인사를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 저 가요.” 그러고 나갔어요. 갔다 와서는 “다녀왔어요” 하고 끊어서 말해요. 왜 예수 믿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책임지고 할 수 있다면 예수 안 믿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는 다녀오겠다는 말 그 하나도 책임 못 지겠더라고. 그래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그 생각을 했고. 그리고 내가 비행기를 많이 탔는데, 내가 조종실 문 두드려본 적이 없어요. “내가 자동차 운전 한 30년 했는데 뭐 비행기나 (자동차나) 비슷하겠지, 당신(조종사) 피곤해 보이는데 내가 대신 (조종)하지.” 그러지 않거든. 내가 그랬다면 미친 거고 만일 조종사가 같이 미쳐서 “그러겠느냐”고 조종간 맡기면 다 죽는 건데? 나는, 비행기는 조종사가 운전해야 안전하다는 걸 믿는 게 아니고, 그걸 뭐 믿는다고 그래요? 그냥 아는 거지! 하나 더 발전해서, 하나님과 세상은 하나님이 조종해야 안전하다, 생각해요.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요? 나를 못 믿으니까! 엉뚱한 사람들은 자기를 믿더라고. 배짱도 좋지.
이 책에는 제 마음이 있잖아요. 감동과 깨달음이 있고. 책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그것을 같이 깨닫고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로마서를 통해 받은 감동이 책 속에 있으니까 읽다가 “맞아” 하고 감동을 같이 느끼세요. 초등학교 때 소리굽쇠 쳐봤잖아요. 2개 갖다놓고 하나를 치면 그대로 진동이 옮겨가지요. 책도 그런 거 같아요. 《페이스북, 믿음의 책: 로마서 이야기》 쓸 때 내 소리굽쇠 진동이 있거든요. 그걸 독자가 똑같이 느끼는, 진동이 옮겨지는 그것이 최고거든요.
설교는 일방적인 이야기잖아요. 내가 선포하고, 기껏해야 교인 눈빛 보고 고개 끄덕이는 거 보고 아멘 하는 거 듣고. 그런데 페이스북 하면 댓글이 달리잖아요. 무얼 느꼈다는 건 보통이고 자기 의견을 쓰기도 하고, 그래서 반대로 제가 공급받는 것도 있어요. 사실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그런 걸 보면 당황스러워요. 일방적으로 받던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하지만 그런 게 나한테 도움이 돼요. 사실 내 나이에 그런 데 글을 쓴다는 건 돈키호테 같은 생각이지요. 게다가 SNS는 짧은 말로 자기 소식 안부 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설교문을 올리잖아요. 페이스북으로는 장문(長文)이라고요. 그런데 내가 참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그걸 읽어준다는 거예요. 감동이지요. 내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던 거 같아요. ‘젊은이들은 심각한 말은 안 읽을 것이다. 길면 안 볼 거다’ 하던 생각이 바뀌었어요. 보통은 설교보다는 조금 짧은 글을 올리지만 주일에는 설교문을 다 올릴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 읽어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긴 글을 안 읽어”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옛날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요즘 젊은 것들은 다…” 그러는데, 요즘 ‘젊은 것’들도 쓸 만해요. 신기한 게, 어떻게 내 나이의 사람이 내 수준으로 쓰는데 그걸 공감할까? 참 놀랐어요. 제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둘 운영하거든요. 본래 페이지는 5천명 제한이 있어서 개인페이지란 걸 따로 해요. 개인페이지는 친구 수에 제한이 없어요. 거기에 재미있는 기능이 있더라고요. 남자 몇 명, 여자 몇 명, 연령과 지역이 다 나와요. 대부분이 20,30대거든요. 10대도 있고. 내 나이 또래는 당연히 얼마 없는데, 제가 60이 넘었거든요. 20대와 60대가 소통한다는 게 얼마나 놀라워요? 우리는 상식적으로 20대는 요즘 60대하고 안 통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게 제가 SNS 하면서 발견한 특징이에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특징에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 기획할 때부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딱딱 끊어지니까. 제가 페이스북에 글을 쓸 때 그렇게 번호를 매기잖아요. 그러면 글이 길어지지 않아요. 정리가 돼야 하기 때문에 간결하게 끊을 수 있어서 좋아요. 독자가 책을 읽다가 “아, 이거 좋은데! 나와 생각이 같아” 했을 때나 어디를 짚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 “나는 몇 번이 좋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문단에 번호를 매기니까 그런 유익이 있어요. 군더더기가 안 붙으니까 가능한 한 읽기 쉽고 간결하게 되는 것이죠. 성경에도 구절이 있잖아요.
말장난 같은데, 나는 이제 놀 거예요. 사람들은 일하는 것만 훌륭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안 하는 것도 훌륭한 거예요. 끝낼 줄도 알아야지. 제가 목회적으로 보면, 인간적으로 실패한 건 아니잖아요. 제 나이 되고 교회가 조금 커지면 상승기류를 타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착각해요. 자기가 없으면 (교회가) 안 되는 줄 알아요. 일을 안 하고 있으면 (교회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건 다 착각이라고요. 후배들도 있고…. 나는 그게 겸손한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야지!’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려고 그래요. 그동안 목사 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좋은 교인 노릇 한번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정말로! 최근에 아들들에게 이렇게 유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그렇게 할 거예요. “아버지 죽으면 (묘비명으로) 목사라고 쓰지 말아라. 성도 김동호라고 써.” 저는 성도(聖都) 하고 싶어요. 목사는 목사 일만 너무 하려고 그래요. 그만큼 했으면 됐지요. 사역? 많이 했어요. 그냥 좋은 교인 노릇하면서, 은혜 받으러 다니고 싶어요.
페이스북, 믿음의 책: 로마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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