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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거짓말이 있느냐’고 묻기보다는 ‘교회 안에 거짓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인 윤리적 거짓말보다 더 심각한 거짓말을 다루었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것 같은 윤리적인 거짓말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저는 우리가 믿고 있는 바, 행하고 있는 바와 관련된 거짓말,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말이 더 심각하게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쓰는 통용어들이 문제라고 보았지요. 그런데 제목이 좀 강렬하지요? 표지도 강렬한 것 같고요.(웃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었는데, 하나는 구원과 믿음에 관한 부분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부분, 세 번째는 교회에 관한 부분입니다. 구원과 믿음에 관한 부분에서는 예를 들어 ‘예수 믿으면 복 받아요’, ‘믿고 기도하면 응답 받아요’와 같은 말을 다루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설교단에서도 설파되고 있는 말인데,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예를 들어 ‘저 사람 믿음은 좋은데 성격은 왜 저래?’라든가, ‘제가 아직 덜 죽어서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같은 말들이 과연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쓰이는 것이냐, 아니면 왜곡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를 다루었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지상의 교회는 어차피 완전하지 않아’, ‘나는 평신도니까’(거꾸로 말해서 ‘주님의 종’만이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같은 것들을 다뤘습니다.
질문한 대로 기독교는 진리를 다루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진리’라는 내용을 ‘문화’라는 외피를 입혀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하는 문화 속에 변하지 않는 기독교의 진리를 집어넣는 것, 그리고 살아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문화가 얼마나 우리의 심성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모르면, 때때로 기독교의 진리를 문화 속에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것이 오히려 진리 속에 들어오는 일들이 벌어지지요. 이런 일들이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 역사 속에서 일어났어요. 한국 교회의 경우엔 기독교의 역사가 짧은 데다가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종교적 심성,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샤머니즘 중심의 종교적 심성과 현대 자본주의의 강력한 유인, 이런 것들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살아내기보다는 진리를 살아낸다는 이름하에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 심성과 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가게 되어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예수 믿으면 복 받아요’입니다. 이게 아주 본질적인 것 같아요. 복 받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복이라는 게 문제죠. 그 복의 내용을 선명하게 아는 게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를 들자면 ‘지상의 교회는 어차피 완전하지 않아’입니다. 맞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섬기는 지상의 교회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건 전혀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완벽한 건 어차피 없습니다. 그러면 지상의 교회가 어떻게 진정성 있는 교회가 될 것인지를 생각하야지요. 그러지 않고 이런 말 뒤에 숨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사실은 이 모든 거짓말들이 솟아나게 만드는 일종의 토양, 나쁜 토양을 형성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는 ‘지상 교회는 어차피 완전하지 않아’라는 거짓말이 심각한 거짓말이 아닐까 싶어요.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다 이루셨다고 정말 믿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나머지 일들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 이미 임한 것을 살아내며 앞으로 임할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고, 예수님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고,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정말로 믿었어요. 그래서 교회가 그렇게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사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놀라운 삶을 산 이유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정말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놓쳐버리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반쪽이 되거나 아니면 껍데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가 제대로 살아나면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말 제대로 알고 살아낼 수 있어요. 저는 교회가 이러한 본질적인 모습에서 자꾸 벗어나는 것이 안타까웠고요. 부족하지만 이런 교회를 세워야 할 영광스러운 책임과 특권이 있다고 믿어서 교회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교회가 하나님나라는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교회’는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정말로 믿은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정말로 믿었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에 속해 있다고 정말로 믿었거든요. 그러면 세상 살기가 힘들고, 부담스럽죠. 예수 믿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게 너무 복된 것이죠. 어려운데도 너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정말 진리인 것이지요. 운동을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다 알지만, 운동하기 싫어합니다. 운동을 하는 어려움을 겪어내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음식을 아무거나 먹으면 편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좋은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생활은 좀 힘듭니다. 가려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그렇게 하면 삶이 건강해지고, 정말 사는 것 같고,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힘든 것을 덜 힘들게 해주려고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사실은 성도들을 더 불행하고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 공동체를 경험해본 것이 교회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제가 보고 경험한 교회들은 굉장히 형식적이었고, 살아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교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교회 내의 청년 문화, 교회 밖이었지만 대학 다닐 때 대학 내에서 모여 교제하던 그룹이라든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느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었는데요, 간사로 생활했던 5년 동안 학생들과 만들었던 공동체의 경험은, 어릴 때 예수를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사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젊은 날에 공동체를 경험한 것은 제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은 ‘그건 청년 때나 경험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저는 청년 때 경험했던 그 공동체가, 청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 때문이었다고 믿었거든요. 그렇다면 이 복음이,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사람이 모여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리고 성경에서는 절대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지 않아요. 서로 다른 사람들, 정말 같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었거든요. 부족했지만 제 어릴 적, 제 젊을 적 공동체의 경험이 저에게 이 꿈을 꾸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고, 그것을 뒷받침해준 것은 성경에서 발견한 공동체들이었지요.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철저하게 비판해야 하고, 비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일어난 경우가 많거든요. 사회학적으로도 검토해보고, 신학적으로도 검토해보고, 현상적으로도 검토해보고, 제도적으로도 검토해보고, 이런 것들이 필요한데, 저는 그런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비판자들은 그 비판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안을 염두에 두지 않고 비판하는 것, 또는 대안을 실험하거나 살아내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쓴 이 책은 단순한 비판서는 아닙니다. 교회 안에 이러이러한 거짓말이 있고, 성경에서 원래 말하고 있는 것이 이러하므로 이렇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저는 비판서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비판만 하는 것, 대안 없이, 대안을 살아내지도 실험하지도 않는 비판은, 사실 잘 안 읽어요. 왜냐하면 그것을 일종의 탁상공론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훑어보고서 ‘이런 각도는 유용하겠다’ 정도만을 배우지,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비판하기는 쉽거든요.
저도 거짓말을 하죠. 세상에서 저희 집사람이 제일 예쁘다거나, 제 딸이 제일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애교 있는 거짓말이죠. 사실은 진심인데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성도들 또는 누군가를 만나서 ‘우리 밥 한 번 먹자’ 할 때, 정말 밥을 먹고 싶어서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밥을 먹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결국은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현대 사회, 현대 목회의 복잡성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핑계대기는 하지만요. 요즘은 밥 먹자는 이야기를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거짓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요.
이 책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두와 말미에도 썼지만 저는 이 책이 한국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데 사용되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침투해 있는 거짓말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이 먼저 고쳐나가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주 온유하게 권면해 그것을 바로잡는 데 사용되면 좋겠어요. 불필요한 논쟁이나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이 책이 쓰인 목적이 아닙니다.
좀 성급하긴 한데요, 사실 이 책에 실린 거짓말은 제가 자라오면서 고민했던 것들이에요. 제 자신이 먼저 고민했던 거짓말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내고 나니까 제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싸웠던 거짓말들 말고도 한국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거짓말이 대거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필요하다면 그런 것들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이 책을 낼 때까지는 없었는데)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짓말을 걸러내고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참말로 바꿔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사람들에게 사인해 선물할 때, 이렇게 씁니다. “교회 안에 참말을 유포시킵시다.” 뭐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려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대안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이 책의 말미에 쓴 것처럼, 교회 안의 거짓말들이 교회 안의 참말로 바뀌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 안의 거짓말 - 영적 성장을 위해 바로 잡아야 할 12가지 오해[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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