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앞을 서성이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 신학이 극소수 사람들만의 담론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신학의 공적 역할과 책임감을 인정한다면, 기독교 신학은 영화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을 포함하여 다루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이 삶은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과 항상 함께 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사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담아내고 녹여낸 영화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말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란 그저 세속 문화의 대표적인 예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영화관 앞에서 다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영화관 안에 들어가 보자. 예수의 생애를 다루는 영화가 진짜 영화이고, 성경의 인물을 다루는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수많은 영화들이,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그 가슴 벅찬 감격과 슬픔, 눈물과 웃음이 우리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가 보자.

>>영화관에서 본 풍경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라. 탁 트인 해변, 잔잔한 배경의 화면에 피아노가 있는 해변에서 뛰노는 아이와 엄마(「피아노」),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애잔한 눈빛에 어리는 가위손을 가진 한 남자(「가위손」), 피투성이가 되도록 속죄의 행위를 치르는 권투 선수의 얼굴(「성난 황소」)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미션」)과 함께 스쳐지나가지 않는가?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영화는 몇 년, 아니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이 영화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서 ‘좋았다’는 말 한 마디로 끝내기엔 그 영화들의 메시지들이 너무도 무겁다. 우리네 인생이 결코 가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어떤가? 그 영화들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가? 피아노 하나에 담긴 지배를 넘어선 자유와 사랑의 관계를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말하는 영화는 경시하진 않았는가? 화면을 가득 채운 핏빛 광기에 몸서리치면서 그것이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거부하기만 할 뿐, 그 피투성이 주인공의 외침을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질병의 문제와 시간의 문제, 제도의 문제와 공동체성의 문제는 정작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주제였지 않은가!

영화관 안에서 우리는 눈을 뗄 수 없다. 아니 결코 눈을 떼서는 안 된다. 바울이 밤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본 것이 복음이 서쪽을 향해 가게 만든 계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교회를 병들게 하는 누룩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장이기 때문이다.